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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어느 과학자의 삶

by 답설재 2014. 10. 19.

 

 

 

 

'130억 광년 떨어진 은하계'랍니다.1이론물리학자인 '내 친구' 김 교수에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김 교수님! 130억 광년이라니? 그게 진짜입니까? 도무지 느낌이 오지 않아서 그럽니다."

 

질문을 하자면 우선 내용을 좀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 속의 abc가 뭘 뜻하는지 그걸 알면 좋겠는데, 사진 아래에 이렇게만 소개되었습니다.

 

 

130억 광년 밖 은하계

나사(미 항공우주국)는 허블우주망원경이 관측한 거대 은하 집단 아델 2744 이미지를 16일 공개했다. 우리 은하로부터 약 13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델 2744는 허블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은하집단 중 가장 먼 것 중 하나이다.

                                                                                                                                                                      나사·EPA 연합뉴스

 

 

그 신문 인터넷판을 찾아봤더니 "이른바 '중력렌즈' 현상으로 인해 뒤쪽 은하가 앞쪽 은하보다 더 크고 밝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는 설명만 더 붙어 있었습니다. 이거야 원……

어쩔 수 없어서 그 상태에서 다음과 같은 예상 질문을 마련했습니다.

 

* 1광년은 '정말로'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입니까? 확실합니까?

* 그렇다면 130억 광년은 어느 정도의 거리입니까? 그게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거리입니까?

* 과학자들은 무슨 수로 그걸 알아냅니까? 그냥 한번 웃자고 그러는 것입니까?

 

 

 

그렇지만 1광년이 정말로 빛이 1년간 가는 거리인지 아닌지 묻는 것은…… 좀 난처합니다. 이미 물어봤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래도 믿기지 않아서, 잘못 본 것 아닌가 싶어서, 사전(辭典)에서 내가 가장 여러 번 찾아본 단어가 '광년(光年)'입니다.

 

다음으로, 130억 광년이니 뭐니 하는 것은, 우주의 크기에 대한 질문과 같아서 그 질문도 난처하기는 한가지입니다. 지난번에 별이 천억 개씩인 천억 개의 갤럭시? 아니 클러스트? 어쨌든 그걸 이야기할 때, 우리 몸의 세포에 비유한 것 같은데, 그러면서 그 세포들 하나하나는 '우리 몸 전체'(우주에 비유할 수 있는)가 이렇게 살아가는 걸 모르는 것과 같다고 했던가, 어쨌든 그런 설명을 한 것 같은데, 그걸 이번에 또 묻는 것과 같지 않은가 싶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왜 똑같은 질문을 자꾸 하지?'

 

아직 한 가지 질문은 남았습니다. "그냥 한번 웃자고 130억 광년이니 뭐니 하는 것입니까?"

그는 또 잔잔한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그럴 때의 그의 미소는 '은하철도 999'의 그 아이들 같은, 혹은 광활한 우주에서 이 별 저 별 찾아다니는 방랑자의 미소가 그렇지 않을까 싶은 미소입니다.

 

"우주에는 별이 천억 개도 넘겠지요?"

"그럼요! 게다가 지금도 무수히 늘어나고 있다니까요. 허허허……"

 

 

 

버트런드 러셀이 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라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그어놓은, 과학자들의 행복에 관한 부분을 다시 찾아봤습니다.2 김 교수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내용입니다. 예술가들이나 작가들 중에는 어처구니없다고 할 내용이 있긴 하지만, 그건 당연히 러셀에게 가서 따져야 할 것입니다.

 

가장 탁월한 과학자들의 다수는 감정적으로 단순하며 자신의 일에서 깊은 만족을 얻기 때문에 식사나 결혼 생활에서조차 즐거움을 찾는다. 예술가들과 작가들은 불행한 결혼 생활이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반면, 과학자들은 전통적인 가정의 행복을 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중은 어떤 그림이나 시를 이해하지 못할 때 그것이 나쁜 그림이고 나쁜 시라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성이론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다고 (타당하게도) 결론 내린다. 결과적으로 아인슈타인이 존경을 받는 반면 최고의 화가들은 다락방에서 굶주리며, 아인슈타인이 행복한 반면 화가들은 불행하다.

 

과학자들은 동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좋게 생각해주는 까닭에 동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 친구 김 교수의 가족은 미국에 있습니다. 부인은 세상을 떠났으므로 가족이라고 하면 여동생과 딸 가족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노년에 혼자 이곳 어머니의 나라에 와서 지내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가리켜 "내 친구" "내 친구" 하지만 그는 나보다 훨씬 연장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도저히 "친구"라고 부를 수가 없는데, 아마도 그는 나를 친구로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먼저, 아니 나 혼자 이렇게 "내 친구" "내 친구"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에 대한 나의 도리일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는 스마트폰으로 책은 많이 읽지만, 결코 이런 블로그 같은 건 들여다보거나 하지 않으니 내가 "내 친구, 내 친구" 해도 문제가 될 일은 없습니다.

 

 

 

일전에 만나서 저녁식사를 함께할 때였습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16일인데, 가족들이 올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내자고 해서 한 달 가까이 미국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무척 심란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해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인천에서 LA까지 10시간, 그곳에서 다시 동부, 어디라더라? 거기까지 6시간, 또 그곳에서 별장이 있는 곳까지 몇 시간, 중간에 좀 쉬겠지만 그렇게 여행한답니다. 나 같으면 못갈 것 같은데, 그래서 내 딸이 있는 런던도 못가는데―히드라 공항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퍼져버려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까 봐― 그분이 그 연세에 그런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필리핀에 가서 스쿠버다이빙이라는 걸 하고 와서는 물속에서 미생물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늘 자신의 체력을 자랑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심란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이번 여행 전에 다시 한번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먼 여행을 위해 유명한 족발집을 찾아가 영양을 비축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두었습니다.

 

"그냥 한번 웃자고 130억 광년이니 뭐니 하는 것입니까?"

그 질문은 그가 다녀오면 연말이나 언제 하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그가 잘 다녀오기만 하면, 그동안 내가 새로 발견해 둔 어느 멋진 식당에 가서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그런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행복할 뿐입니다. 내 친구 김 교수는 내가 그런 시간을 마련하기를 기다릴 때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까짓 130억 광년이고 뭐고, 다른 모든 것은 아무래도 다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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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일보, 2014.10.17. 13면.
2. 버트런드 러셀, 최혁순 옮김,『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뮨예출판사, 2013(3판2쇄), 48~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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