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1164 문장보기 문장보기 Ⅰ 책이나 신문을 보며 그 책이나 신문을 읽기보다는 펜을 들고 교정을 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실소한 적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걸핏하면 어느 부분을 블로그에 실을까, 살피며 그러고 있으니 '오십보백보'이긴 합니다. Ⅱ 벤야민의 친구 숄렘은 벤야민이 당시의 작가들 중에서 .. 2015. 5. 13. 사라져 가는 것들 Ⅰ 카네이션을 달고 다니는 모습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있는 분이 "엄마 날"에 "파트타임 들어간다"고 써보낸 걸 보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그냥 어머니 날로 두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걸…… 어머니들이라도 하루 대접 좀 받을 수 있을 텐데……' 구태여 '어버이 날'로 바꿀 때의 그 쑥스러움도 새삼스레 떠올랐습니다. 누군가 "어머니 날만 정해 놓으면, 아버지들은 어떻게 하나? 남자들만 손해를 보라는 말이냐?"고 대어들었던 것일까요?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래, 이제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어버려 속이 시원합니까?" 하고 좀 따져보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습니다'. Ⅱ 전철을 타고 오는 동안 다 살펴봐도 카네이션을 단 노인은 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그분은 나처럼 저승꽃이.. 2015. 5. 8. 처음 본 봄처럼… 봄이 말도 없이 가버려서 흡사 이별 인사를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겨울옷을 입고 있습니다. 사실은 아침저녁으로는 싸늘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정리도 하지 않고 가버린 봄, 그렇지만 그 봄을 원망해 봤자 별 수도 없습니다. 아파트 정원의 새잎은 딱 하루만 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눈여겨보며 지나다녔습니다. 그건, 사람으로 치면 무정한 것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어디서 저 모습을 다시 보겠습니까? 목련도 그렇습니다. 말도 없이 피어서, 그 화려함을 널리 알리면 무슨 난처한 일이라도 생기는지 금세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꽃잎들이 처참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줄 이미 알았던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저 집 초인종을 울려서 "목련이 흐드러졌습니다. 지금 좀 내다보셔야 하겠습니다." 할 .. 2015. 5. 7. "선생님, 죽지 말아요!" "선생님, 죽지 말아요!" 향기(香氣)와 향수(鄕愁) : 아이들이 커피 찌꺼기로 방향제를 만드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철역으로 들어가다가 저 아이들 냄새가 풍겨서 곁으로 다가가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Ⅰ 어느 해안도시에서 지금 비행기(아니면 기차, 아니면 배, 배도 아니면 .. 2015. 4. 12. 버트런드 러셀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Ⅱ Ⅰ 경험담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에 대하여 ‘까짓것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걸 왜 협조해주지 않을까? 의아해 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버트런드 러셀이 쓴 『런던통신』이라는 책을 읽고서부터입니다. 그가 그 두꺼운 책 중의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라는 글에서 밝히기를, 지겨운 사람이 되는 갖가지 방법들과 그것을 피하는 방법들을 정리해 일곱 권으로 된 학술논문을 쓸까 생각 중이며, 그 일곱 가지 부류 중, ▶ 계속되는 변명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 지나친 근심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 스포츠 이야기로 지겹게 하는 사람에 관한 연구는 "아직 미완성"이라고 했는데, 딴에는 삶의 지혜의 한 가지로 변명을 일삼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걱정도 팔자"라거나 "군대 가서.. 2015. 4. 9. 내 친구 김정욱 교수의 외도 김 교수는 자랑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 아파트에서 만나 1년이 넘도록 그가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줄도 몰랐고 그냥 30여 년간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를 하다가 온 사람, 뭐 그 정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고등과학원 초대, 2대 원장을 지냈고, 학술원 회원이고……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은데도 아직도 필리핀에 가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바닷속 생물을 촬영해 오고…… 우주나 뭐 그런 것에 대해 물으면 나를 초등학생 취급해서 대충 들어도 잘 알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그 김 교수가 오늘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한꺼번에 두 가지 자랑을 했습니다. 1. UWCWKim.com 여기 들어가 보면, 필리핀 가서 찍어온 바닷속 생물 사진이 수천 장 들어 있다. 이런 것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이 주소 가르쳐.. 2015. 4. 1. 2015년, 불안하고 초조했던 날들의 꿈 2015.1.1(목). 새벽. 아직도 학교 그리고 계획 이야기 멋진 양수용 책상 앞에 교감인듯 한 이가 서 있다. 연간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그에게 수정에 필요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나는 교사 신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권위가 좀 있는 입장이어서 그도 내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계획서는 일반적, 전통적인 모양새와 달리 표 안에 다시 사진과 도표들도 들어 있었는데, 그건 내가 그렇게 조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것들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고 내용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또 살펴보겠다고 하자, 그는 "예, 예, 알았습니다―." 하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태도로 보아 "당신이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실없.. 2015. 4. 1. 한 개의 시계, 여러 개의 시계 Ⅰ 시계가 하나뿐일 때는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가졌습니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세상에는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 시각이 표준시각이 아닌 '가짜 시각'일 것이 뻔한데도 시계를 바라볼 때마다 '아, 벌써 11시 35분이 넘어가는구나!' 하며 거의 분 단위까지 그 시계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계가 흔해져서 이 방에도 시계, 저 방에도 시계…… 방방이 시계를 걸어두게 되었고, 화장실에도 전화와 시계 등의 기능을 갖춘 무슨 기기가 붙게 되었으며, 컴퓨터 화면도 늘 시각을 표시해 주는데도 이 컴퓨터 옆에까지 시계를 두었고, 서장, 진열장 안에도 탁상용 시계를 넣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구석에 쌓아둔 책 더미 위에도 시계를 얹어 두게 되었습니다.. 2015. 3. 29. 대실망- '미리 목을 졸라 숨을 끊어 주는 은혜'도 없는 세상 버트런드 러셀은 '인류에 해를 끼친 관념들'이라는 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간의 불행은 아마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인간과 무관한 환경이 가하는 불행이고, 둘째는 다른 인간들이 가하는 불행이다. 환경이 가져다주는 불행? 바로 '천재지변' '쓰나미' '화산'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고, 인간들이 인간들에게 가하는 불행에 대해서는 '그래, 맞아! 불합리하거나 이기적인 인간 때문에 속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했는데, 글을 읽어가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싶었고, 드디어 '세상의 한 단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갈 뻔했구나!' 할 정도였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에 대한 '대실망(大失望)', 혹은 새로 생긴 좀 익살스러운 용어로는 세상에 대한 '급 실망(急失望.. 2015. 3. 19. 미안한 전화 미안한 전화 최병룡, 《어린 시절》(부분, 논현동 '취영루' 소장) Ⅰ J는 내 제자입니다. 오십이 넘었을 중년 여성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지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러 오십 대의 중년 여성을 그려보긴 하지만 보통은 저 옛날 그 달동네 6학년 교실에 앉아 있던, 그때 그 .. 2015. 3. 10. 쑥스러운 태극기 쑥스러운 태극기 Ⅰ 삼일절 아침, 태극기를 달았습니다. 이번에는 관리사무소에서 태극기를 달자는 방송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동안 태극기를 다는 집이 너무 적었습니다. 지난해 한글날만 해도 창문으로 내다보기에는 태극기를 단 집이 단 두 집뿐이었습니다. 관리사무소의 그 방송.. 2015. 3. 3. 감기 걸려 목이 아픈 날 "감기 걸렸다며?" "응." "먼지가 많아서 조심해야 해." "응?" "조심해야 한다고―." "응." "밥도 많이 먹고―." "응." "밖에는 먼지가 많으니까……" "응?" "바람 속에 먼지가 많은 날이니까 답답해도 집에 있어야 한대." "응." "병원 가야지?" "응." "의사 선생님이 약 먹으라고 하거든 잘 먹어야 해?" "응." "많이 보고 싶어. 응?" "응." "그럼, 끊을게―." "응." 전철역에서 환승을 하러 걸어가며 전화를 했습니다. "응?" "응" 하는 것만 듣고 끝났지만, 이 삶에도 경이로움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경이로웠습니다. 2015. 2. 26. 이전 1 ··· 64 65 66 67 68 69 70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