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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65

산 바라보기 ♬ 둘째 딸이 주말에 열차를 타고 다녀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내외가 시골에 산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습니다. 모처럼 열차를 탔으므로 한가로이 차창 너머로 전개되는, 그것도 이 겨울 눈 덮인 산을 관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자들 별장처럼 이곳보다 더 멀리 떨어진 시골에 허름한 집이라도 한 채 마련했으면 좋겠지만, 다 틀린 일이니까 내 처지엔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여기가 '딱'이야." 이중환이 『택리지擇里志』(李重煥 著 / 李翼成 譯, 『擇里志』乙酉文化社, 1981, 7版)에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복거총론(卜居總論)'의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대저 살 터를 잡는 데에는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다음 생리(生利)가 좋아야 하며, 다음 인심(人心.. 2013. 1. 30.
동해·일본해 동해·일본해 ♣ '지도쟁이' 안동립 선생이, 어느 국가기관의 홈페이지에 이런 지도가 탑재되어 있더라면서 흥분된 어조로 증거가 되는 몇 가지의 자료를 캡쳐해 보냈습니다. 며칠 기다렸다가 '지금도 그대로 탑재되어 있는지' 물었더니 무슨 변명을 해놓았더라고 했습니다. 삭제했다는 .. 2013. 1. 24.
감사感謝 감 사 지난해 12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자동차와 건물, 그 위로 뿌연 하늘이 내려와 있는 네거리, 네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이곳에 이 꽃이 있어 주니까 '아, 여기도 좋은 곳이구나!' 싶어져서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사도 제대로 하.. 2013. 1. 17.
설탕과 소금 Ⅰ "설탕! 그 달콤한, 그리고 치명적 유혹!"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소금! 그 짭질한, 그리고 치명적 유혹!"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Ⅱ 소금의 양을 줄여야 한다는 기사느 여러 번 봤습니다. 음식맛이 별로여도 짭조름하면 일단 맛있는 걸로 착각하기 쉽답니다. 그래서 주방에서는 소금을 많이 넣기 마련인데, 그것은 소금값이 싸기 때문이어서 많이 넣어봤자 손해날 것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니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도 한때는 음식이 나오면 일단 소금이나 간장부터 좀 넣고 맛을 보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어디서든 일단 만들어주는 대로 먹어보고 간을 맞추든지 그냥 먹든지 결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설탕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소금보다 설탕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더 .. 2013. 1. 15.
그리운 눈 올해는 눈이 많이도 내립니다. 눈 온 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불면 죽을까봐 나다니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길이 미끄러운 건 기본이고, 몸이 시원찮은 사람은 영 끝장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그래서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습니다. 옛날에 못 살 때는 눈이 오면 들어앉아 있으면 그만이었지만, '잘 사는 나라'가 된 후로는 아무리 눈이 많이 오고 세찬 바람이 불어도 갈 데는 가고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잘 사는 나라'가 된 후로는 눈이 많이 내리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 휴일에 내리는 눈을 내다보고 있으면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그럴 때는 걸핏하면 예전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시(詩)가 생각납니다. …… 겨울밤입니다. 시골 초가집에 눈이.. 2013. 1. 6.
2013년 새해 인사 花 蛇 鹿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鹿香 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石油 먹은 듯…… 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 같이 고운 입술……스며라, 배암! 『徐廷柱詩選』(民音社 세계시인선 ⑫, 1974.. 2013. 1. 1.
노인암살단 Ⅰ 가령 아침나절의 상봉역에 가보면, 아무래도 늙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등산복'(아웃도어룩?)을 입고 모여 있습니다. 경춘선 열차가 들어오면 우루루 올라가 자리를 잡기 때문에 이후의 역에서 타는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서 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먹고살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게 된 것이 사실이구나.' '그렇긴 하지만 아직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라에서는 이런 걸 알고 있나?' '이런 현상을 그냥두어도 괜찮은 걸까?' Ⅱ 50대는 노인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겠지요? 그럼 60대는 어떻습니까? 60대도 요즘은 아직 노인축에 들지 못한다는 말은 '정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젊은이들로.. 2012. 12. 30.
소설 속에서 나온 크리스마스카드 가브리엘 루아가 소설『내 생애의 아이들』을 썼습니다. 그 소설에 어떤 삽화가 있는 건 아닌데도, 그 속의 선생님은 아름답게 떠오릅니다. 읽은 지 오래되어 다 잊은 것 같은데도 그 선생님은 눈송이처럼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느낌만은 그대로입니다. 그 소설 속의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커다란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었다며 핸드폰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그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이걸 암기해야 하는데……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뿐입니다. 마음뿐인 일들 투성이로 살아갑니다. 나 자신 그런 시절의 상처를 이제 간신히 치유한 상태였고 겨우 청소년기의 몽상에서 벗어나 아직 성년의 삶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이른 아침 교실에 서서 내 어린 학생들이 세상의 새벽인 양 신선한 들판 위.. 2012. 12. 24.
재미있는 세상 알제리의 인근 영화관에서는 때때로 마름모꼴의 박하 과자를 파는데, 거기엔 사랑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붉게 새겨져 있다. 즉, ⑴ 질문들 : 「언제 나와 결혼할 거예요?」, 「나를 사랑해요?」 그리고 ⑵ 대답들 : 「미치도록」, 「내년 봄에」. 그 방법을 마려한 뒤에 사람들은 그것을 이웃 젊은이에게 일러 주고, 그러면 그 사람은 똑같은 식으로 응해 오거나 아니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벨꾸르에선 이런 식으로 결혼들이 성립되어 왔고, 단순히 마름모꼴의 박하 과자를 교환함으로써 한평생을 서약해 왔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로, 이 지역 사람들의 어린애 같은 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알베르 까뮈, 철학에세이 「알지에에서 보낸 여름」 중에서1 이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 까뮈는, 알제리의 .. 2012. 12. 10.
「내 마음속의 통일」 연평도 포격 2주년 ◈ "연평도 포격 2년… NLL 군사지도가 바뀌었다" "北, 헬기 70여대 전진 배치하는 등 군사력 대폭 강화" "공기부양정 기지 건설로 백령도까지 17분밖에 안 걸려" "軍, 北 해안포 타격 미사일·감시용 비행선 도입 또 연기" "연평도 도발 주범 김격식, 대장 복귀" "K-자주포, 2.. 2012. 11. 22.
참 애매한 표현 '애매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넘어가도 아무 일 없고, 대체로 그게 애매하다고 여기지도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 좀 까칠한 사람이다. 까칠하니까 그런 것 그냥 넘겨버리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려야 할 것, 아니면 본래 그런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붙잡고 한참 동안 이리저리 생각해보며 지낸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산티아고 지도는 지도라기보다는 관광안내서에 가까웠다. 안내서에는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알아야 할 호텔과 골프장, 버스정류장, 박물관과 쇼핑센터 따위의 위치 등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버스정류장 말고는 내게 도움될 것이 없었다. 기다란 칠레 전도에는 산티아고, 탈카Talka,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발디비아Valdivia 같은 도시와 그 도시를 이어주는 복잡한 도.. 2012. 11. 20.
El Condor pasa El condor pasa 'El Condor pasa'…… 상봉 전철역에서, 저 악사가, 혼자서, 정말로 중앙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어느 곳, 아니면 바로 그 마추피추 골짜기에서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모습으로, 께나와 두어 가지 악기를 더해서 잉카의 '슬픔'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 넋을 잃고 턱하니 앉.. 2012.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