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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 허접한 욕심

by 답설재 2015. 2. 10.

 

 

 

 

나이가 나보다 좀 적은 편인 지인이라면,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잘 있었는지 확인하고나면 매우 어색해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화제도 없고 해서 인사삼아 더러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운동도 좀 하십니까?"

 

"아직 죽지 않았네요?" 하고 인사하기는 난처해서 "더 살려면 이제라도 운동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 걸 그렇게 묻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기야 만나도 탈 날 일은 없지만 영영 만나지 않아도 하나도 궁금하지 않을 사이에는 그동안 궁금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할 수도 없고, 반대로 "아직까지 살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근한 척 하려고 해도 최근의 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내용을 묻고 답하며 그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나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런 질문에 대해 호기롭게 대답합니다. 평생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에 운동 얘기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서 난처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 늦게나마 운동이라는 걸 좀 하며 지내기 때문에 '너 잘 만났다!' 싶은 마음이 없지 않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살아오면서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마다 "아니요, 운동은 하지 않고 지냅니다." 하고 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곤혹스러움을 한꺼번에 다 해소하게 되었다는 듯한 호기로움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예, 좀 합니다. 뭐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무슨……"

"아, 예! 헬스장을 들락거립니다."

"아, 예~. 헬스장에서는 무슨 운동을 주로 합니까?"

 

그럴 때 나는 운동답지도 않은 운동을 하면서 '유산소운동'이니 '근력운동'이니 하고 그럴 듯한 용어를 사용하기도 싫지만, 대화의 진도가 그런 것까지에 이르게 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대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 예. 뭐 숨쉬기 운동을 기본으로 하고 그와 유사한 것들을 한 30분 정도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아, 뭐 그 정도라면 경쟁심이나 경계심을 가지지 않아도 좋겠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짓게 되고 대화의 진도가 더 나아가야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헬스장을 드나드는 것이 그리 즐겁지는 않습니다. 우선 공연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도시 사람들은 영양가 높은 걸 실컷 먹고 활동량은 모자라니까 일삼아 땀 뺀다고 헬스장 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헬스장 드나든다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이런 얘기는 꺼내기도 싫지만 헬스장에 들어가면 젊은이들이 공연히 힐끗거리며 늙은이를 미워하는 것 아닌가 싶어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그만하면 좀 살았을 텐데 얼마나 더 살려고 저럴까?' 그래서인지 그 헬스장에는 요즘 늙은이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좀 외롭기도 해서 물어봤더니 노인들은 낮에 다 다녀간다고 하던데 아마 젊은이들 눈치 때문에 한가한 시간에 후딱 다녀가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헬스장이 싫은 이유는 생각보다는 꽤 여러 가지지만, 나의 경우라면, 공중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동안 꽤 여러 명의 회원들에게 잔소리를 한 것도 그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수건을 아무데나 팽개쳐 놓는 녀석은 쳐다볼 것도 없이 내가 집어 치우면 되지만, 팬티를 훌훌 터는 놈부터 시작해서 '내가 저런 인간과 이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어야 하나?' 싶어지는 놈팽이는 정말로 부지기수입니다.

 

 

 

문제는 나에게도 있습니다. 욕심, 아주 허접한 욕심.

헬스장에 들어가면 눈에 띄는 게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은 무얼 해도 힘차고 가벼워 보입니다. 그 모습을 힐끗거리다가 '나도 좀 더 무겁게 해볼까?' '두어 번만 더 해볼까?'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러 '약골'로 보이는 젊은이가 보이면 '이 사람아! 날 좀 봐!' 싶어져서 "우쌰! 우쌰!" 하게 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어째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고, 입술의 어느 부분이 꺼칠해지면 그건 분명히 몸살이 오고 있는 징조이고, '내가 왜 이러지?' 생각해보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는 걸 이미 몇 번 경험했기 때문에 욕심이란 돈 때문이든 아니든 참 비참한 것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는 15세에 일생을 학문에 바치겠다는 뜻을 세우게 되었고,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40세에 학문에 자신을 얻게 되어 마음이 동요되는 일이 없게 되었고, 50세에 학문에 몸을 바치는 것이 운명이고 천직임을 깨닫게 되었고, 60세에 나와 다른 의견을 들어도 순순히 수긍하게 될 만큼의 다양성을 인식하여 마음의 여유를 얻었고, 70세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인간으로서의 법도를 넘지 않을 만큼의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

(原文─爲政 四 : 子曰 『五十有五에 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호라』 表文台 역해 『論語』(현암사, 1972), 98~99쪽의 내용 중에서 발췌함).

요즘은 걸핏하면 공자님의 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님! 이거 정말이었습니까?"

"저는 어떻게 된 인간인지 15세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맞히지가 않습니다."

 

정말 그런가, 그럴 수 있는가 싶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살펴보면 모두들 저 말씀을 잘 실천하며 떳떳이 인용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자님, 공자님"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나는 왜 안 되는 것일까요? 학문은 고사하고, 그렇다 치고, 하다못해 헬스장에 가서까지 젊은이들 흉내나 내다가 몸살이나 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아니, 오늘은 왜 운동은 안 하세요?"

샤워만 하는 걸 용하게 알아챈 사람이 묻습니다. 부끄러워서, 몸살이 난 걸 감추고 싶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매일 하면 뽑힐까봐서요. ㅎㅎㅎ……"

"어디에?……"

"우리 시 대표 선수나 헬스장 트레이너로요. ㅎㅎㅎ……"

그러면 상대방도 웃습니다. 더 크게 웃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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