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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편지쓰기

by 답설재 2014. 6. 15.

 

 

 

 

밤에 이 편지들을 씁니다. 저녁식사 후에 아내와 함께 TV를 보거나 하다가, 헬스장에 가서 하체(下體)가 굳어버리지 않도록 좀 부스대고 돌아오면 아내가 TV를 끄고, 그러면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내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 '언제까지 이 짓을 하나?'

더러 회의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친구 맺기'를 하자는 블로거들이 있을 때마다 '이런 좋은 것도 있구나!' 하고 무조건 그러자고 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골골하면서 얼마를 더 살겠나' 싶고 이래저래 부담스러워서 스스로 '친구 맺기'를 하자고 연락을 보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친구가 되자는 데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싶어서 '얼씨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중엔 장사꾼도 있고 정치꾼도 있고 세(勢)를 확장하는 데 목적을 둔 사업가도 있고, '걸려들면 안 되겠구나' 싶은 종교적, 아니 영적(靈的?)으로 '이상한 분위기'도 있고, 자신의 블로그에는 단 하나의 자료도 싣지 않은 채, 더구나 프로필도 얼굴 사진도 싣지 않은 맹탕인 채로 "친구하자!"는 요청을 해서 '뭘 믿고 친구를 하지? 이러면 귀신한테 홀린 거나 뭐가 다를까?' 싶은 경우도 있고, 심지어 사이버 상에서 답답하게 이러지 말고 오프라인으로도 연락하자고 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더니 청소년들처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연락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내가 정리의 단계로 들어가겠나?' 싶어서 어렵게, 겨우겨우 관계를 '청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이지 이 짓을 당장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우선 '댓글쓰기'를 없애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언제나 반가운, 더구나 가르침을 주는 몇몇 분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겨우겨우' '어렵게' '관계를 청산'했으므로 그 대상이 된 사람이 다시 찾아오기는 어렵겠지만, 혹 다시 온다고 해도 "정말 지긋지긋했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 그렇게 하면 나 자신도 '지긋지긋한 인간'이라는 걸 드러내게 되는 거니까 ― 러셀의 이 생각을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1

 

사람들에 대한 우호적인 관심은 애정의 한 형태이지만, 이것이 탐욕과 소유욕에 사로잡혀 늘 상대방의 강렬한 반응을 추구하는 형태여서는 안 된다. 이런 형태의 애정은 불행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실제로 그만둘 수도 있구나!'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친구 맺기까지 해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블로그가 폐쇄되는 경우입니다. 그런 분은 아주 열성적으로 날마다 자료를 싣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쩌다가 잊어버릴 만하면 자료를 싣는 사람은 오히려 '폐쇄' 같은 강력한 조치를 하지는 않아서 차라리 흐지부지 있는 듯 없는 듯하고, 허구한 날 '스크랩'인가 뭔가로 남의 글만 갖다 실어놓는 사람들도 그 일을 신이 나서 하는 것 같은데 ― 신이 나지도 않는데 그렇게 한다면 웃기는 일이겠지요 ― 아주 숨가쁘게 자료를 싣는 사람이 돌연 그만두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그만두기까지 했을까……' 싶고, 그렇게 하라면 누구라도,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이 일로 돈을 벌어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만두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현상은 "수많은 블로거들이 명멸(明滅)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맛집이나 향토특산물 소개 같은 일로 명성을 드높이려는 블로그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는 일상을 기록으로라도 남기지 않으면 다른 할일은 거의 없는, 정말로 신선놀음 같은 경우도 아니라면, 그렇게 열중하던 어느 날 회의감이 엄습하지 않을 리 없고, 그건 겪어봐야 실감할 수 있으므로 그야말로 '명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하나……' 싶어지는 것은, 세상의 변화 문제일 때도 있습니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직장에 다니거나 무슨 생업 문제가 걸린 것도 아니니까 이 짓이라도 더 해보자' 싶지만, 어느 날 웹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었고, 블로그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이제 블로그 운영 같은 건 그만두겠다"고 선언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특성을 몰라서 하는 걱정입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해줄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날 선풍처럼, 무지개처럼 떴다가 지는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쓰고 읽는 일을 즐길 사람은 거의 없고, 게다가 읽을 만한 사람들은 다 바쁘고, 100자 200자만해도 초조하고 지루하고 귀찮아서 문자 메시지로 살아가게 된 것만 봐도 호기심으로 시작한 이 따위 블로그 쯤 슬며시 치워버린 그런 사람이 빠르고 현명한 사람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은 미련한 사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이 짓을 하고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선, 끊임없이 찾아오는 독자들이 있습니다. 이 블로그의 글들은 대부분 '너무' 긴 것들입니다. 바쁜 세상에 정말이지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도 온다면,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라면 독후감을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그 책을 읽지 않겠다면 여기서라도 좀 읽고 가도록 써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두어 분의 독자 때문에 '제대로 쓰자' '할 수 있는 날까지 해보자'는 생각은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이 일이 아니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싶은 것입니다. 그건 정말로 큰일입니다. TV만 바라보거나 먼 산만 쳐다보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겨울밤은 얼마나 길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이상한 존재이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이렇게 PC 화면을 바라보며 이 키보드에 두 손을 올려놓고 앉아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시간은 '산책(散策)' 같은 것이고, 그렇다면 '블로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일기 같은 것"이라고 하던 그 대답은 매우 적절한 것 아닌가 싶어집니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어느 날, 지난번처럼 또 쓰러져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러면 이 블로그를 찾아와서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다가 "요양원으로 갔나?" "아니, 이번에는 진짜로 죽었나?" 그러겠지?'

 

이 일을 계속하게 되면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찾아와서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가는 그는, 내 영혼이 위안을 느끼게 해줄 조문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들은 사이버 세상에 좀 더 떠돌아다니다가 차츰 찾는 사람 수가 줄어들고 어느 날부터는 찾는 이가 전혀 없는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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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트런드 러셀, 최혁순 옮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았는가』(문예출판사, 2013),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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