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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기어이 살아야겠다는 잡초

by 답설재 2014. 6. 22.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글은 본래 마음으로 쓰는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말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낙서만 봐도 복잡하거나 심란한 그 마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마음을 담은 글을 썼는데, 그걸 읽은 사람이 시큰둥하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장관님은 "잡초와 전쟁 중"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열 명도 넘는 장관을 만났지만 그분은 잘 계시는지 때때로 연락해 보고 싶은 분이고, 그만큼 그분의 나에 대한 애정도 그리 허술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 비대한 편인 장관님께서 밭에 나가 잡초와 씨름을 하면서 땀을 닦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고, '새벽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은 그분이 한낮을 피해 아침저녁으로 밭에 나가지만 그래 봤자 잠깐 만에 온몸이 흠뻑 젖을 것이어서 안타까운 느낌이 일기까지 했습니다.

 

마음은 그런데도 장관님의 글을 읽은 나는 잡초도 살아보려는, 살아남으려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이라서 웬만하면 그 생명을 인정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때 나는 심장병으로 두어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직후였습니다. 게다가 퇴임을 한 직후였고, 설상가상으로 인간으로부터의 멸시 혹은 배반 같은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무슨 날카로운 도구에 사정없이 베여 쩍 벌어진 발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갑자기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걸핏하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더 살아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그동안 세상에 대해 무얼 많이 잘못한 것일까?'

 

그러면서 시시한 것들, 작은 것들, 힘없는 것들, 멸시 받는 것들, 억울할 것 같은 것들, 늙고 병든 것 같은 것들, 그런 것들, 수많은 것들 중에 그런 것들을 찾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장관님은 내 댓글에 대해 시큰둥했습니다. 그 글을 읽은 다른 이들도 그렇게 그러지 말고 어떻고 하는 댓글을 달긴 했지만, 장관님의 그 답글은 분명히 나 들어라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많은 이가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는 잡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복하고 이를 앞 다투어 미화하는데, 나도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에는 경탄해 마지않으나 아직 이들 적(?)들을 낭만적으로 미화할 마음의 여유까지는 없습니다. 그 나이에 시골에 와서 겨우 잡초들과 '영원한 전쟁'을 선포하느냐고 탓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역시 그들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아, 이런……'

'아무래도 나는 뭔가 잘못 보고 있고, 잘못 생각하는 건가?'

 

 

 

 

어제 신문에서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에 관한 기사를 봤습니다(조선일보, 2014.6.21., B 4~5면. '이 조그만 싹도 살려고 애쓰는데... 자포자기했던 내가 부끄럽구나'), 냉혹한 인간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배신하지 않는 존재'인 식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희망을 가꾼다는 것으로, 식물의 탄생, 성장, 성숙, 죽음이 자신의 삶과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인간도 곧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저 식물들도 생명이 있는 존재로서 살려고 애쓰고 있구나" 생각하며 삶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는 독거노인의 이야기, "희망이란 절망의 다른 이름"이라며 자신의 몸을 팔다가 "내 안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여성의 이야기를 읽으며 보도블록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잡초, 그 시멘트 사이에서도 꽃을 피운 민들레를 내려다보고 서 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신문기사를 본 어제오늘 나는 비로소 장관님이 "전쟁 중"이라는 그 '잡초'와과 내 마음속의 잡초는 서로 다른 모습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경험으로써 하는 이야기는 일단 들어봐야 할 것입니다.

장관님의 "잡초와의 전쟁"은 단 1회전의 승리로 끝나는 것보다는 늘 '승전(勝戰)'을 거듭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 "기어이 살아남겠다"는 저 잡초의 결기도 꺾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라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어린시절부터 농사일만 하다가 오래전에 저승으로 간 우리 아버지가 이 잡초 이야기를 듣게 되면 당연히 장관님의 견해에 공감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팔면서 "희망이란 절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던 그 여성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싶은 것입니다.

 

 

 

흔쾌히 저 담배꽁초와 함께 있는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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