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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신기한 스마트폰맨

by 답설재 2014. 3. 27.

 

 

 

 

 

신기한 스마트폰맨

 

 

 

 

 

전철역 주변의 지난겨울 어느 아침

 

 

 

 

  2011년 겨울에 이곳으로 전철이 지나가게 되자 이런저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선 초등학교 동기생인 친구가 어느 대학교 앞에서 원룸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이제 집에서 전철을 타고 다닌다며 하루아침에 다 빠져나가는 바람에 사업을 접고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했지만, 차츰 잠깐씩만 생각하다가 곧 다 잊어버리고 그 전철을 잘도 타고 다녔습니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지하주차장에 둔 자동차도 잊고 지내기가 일쑤인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전철에서는 재미있는 일이나 구경거리가 많습니다. 하다못해 선반에 써붙인 글귀를 보면 "다 보신 신문은 가지고 나가서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전철을 타고 가며 신문을 보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렇게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출입구 위의 전광판에도 그런 글귀가 떠오릅니다. "신문을 펼쳐서 보면 옆사람에게 실례가 되니까 반으로 접어서 보십시오!"

  신문 이야기는 전철 안 방송에도 나옵니다. "DMB, MP3는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신문은 반으로 접어서 보십시오." 오늘 아침에도 그 방송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일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초·중등학교 선생님들처럼 너무 분주해서 그렇겠지만, 차라리 이렇게 써붙이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 보는 일을 권장하지 않을 경우>

  ― "제발 스마트폰을 웬만큼만 봅시다!"

  ― "그렇게 들여다보다가 자칫하면 스마트폰에 중독되고 말겠습니다!"

 

  <스마트폰 보는 일을 권장하고 싶은 경우>

  ― "스마트폰을 많이 보고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 됩시다!"

  ― "스마트폰 애용하여 큰 인물이 됩시다!"

  ― "옆사람과 떠들지 마시고 각자 스마트폰이라도 들여다봅시다!"

 

  시간이 없어서 다른 얘기로 넘어가기는 그렇고 스마트폰 이야기만 하기로 하면,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그걸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면 거의 한결 같아서, 흡사 누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하소연을 했거나, 모두들 웬만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자고 굳은 결의를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2012년 초봄, 그러니까 자동차를 두고 전철역으로 나가기 시작했을 때의 어느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직 꽤 쌀쌀해서 스팀이 있는 '맞이방'에 들어가 전철을 기다리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나까지 열 명의 승객 중 여덟 명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그때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왜 이러고 있지?'

  '아침에 어디에 무슨 큰 변고가 생겨서 그 뉴스를 검색하고 있나?'

  '전동차가 들어오는 시각이 갑자기 달라졌거나 무슨 사정이 있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나?'

 

  그렇지만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그 참 희한한 사람들이구나…… 아니지, 내가 희한한 사람인가?'

 

 

 

 

 

 

  지난해 봄 어느 날 점심시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의 옆좌석에는 젊은 남성 두 명이 앉았는데, 두 사람 다 앉자마자 말없이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싸웠구나! …… 점심까지 함께 먹는 처지에 웬만하면 서로 사과하고 식사를 하는 게 나을 텐데……'

 

 그들은 점심이 나오자 각자 말없이 먹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먼저 다 먹은 사람이 혼자 일어서지는 않고 다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고, 상대방도 식사를 끝내자마자 다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가자"고 했고(아마도 "가자", 그 한 마디가 그들이 그날 나눈 유일한 대화가 분명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일어서서 나갔습니다.

 

  내가 우리 일행에게 그들 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미소를 지으며 "우리도 다 봤지만, 싸운 건 아닐 것"이라도 했습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지?'

 

 

 

 

 

 

  일전에는 전철 안에서 참 기이한 젊은이들을 봤습니다. 자리에 앉은 내 앞에 두 명의 젊은이들이 나란히 서서 두른두른 이야기를 하며 갔는데, 무심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게임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 내용은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친구들의 근황에 관한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게임을 하면서 어떻게 저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가 있지?'

  게다가 그들은, 보통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처럼 때로 웃음을 짓기도 하고, 간혹 상대방을 흘깃거리기조차 했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런 일, 이런 모습들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편은 아닙니다. 뭐랄까, 걸핏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식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건 미래학자나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혹은 방송통신위원장, 사회학자 등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일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고 모두들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그저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니까 저런 모습들도 또 다르게 변화해 나갈 것 아닌가?' 정도로 생각하고 싶고, 차라리 '이다음엔 또 어떤 장면을 보게 되려나?' 그게 더 궁금한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를 들여다볼 때, 허구한 날 종이책을 들고다니는 자신이 오히려 답답하고 한심하게 보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고 부끄럽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늘은 전철에서 좀 색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맞은편 일곱 개의 좌석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더니 그 중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네 명으로 남학생 한 명, 아가씨(직장인?) 두 명, 대학교재를 무릎에 얹어놓은 여자 대학생 한 명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중년 여성 한 명은 처음부터 잠이 들었는지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두 명인데, 그 두 명이 책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른쪽 끝의 한 명은 중절모를 쓴 노인이었고, 왼쪽에서 두 번째의 다른 한 명은 중년 여성이었는데 그 여성은 매우 지적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많이 들여다보는 현상을 걱정하지 않은 자신에 대해 '그 봐! 공연한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 아닌가!'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어폰도 쓰지 않고 자랑스럽게 무슨 연속극을 시청하는 나이 지긋한 사내, 요즘 유행하는 트롯트를 컬러링(color ring, 통화연결음)으로 해놓고 전화가 와도 도무지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아니면 전화를 받기보다는 그 노래(컬러링) 감상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싶은 노인, 무슨 몇 억짜리 자가용을 탄 부자처럼 그 스마트폰이 자랑스러워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끝없이 전화를 해대는 노파, 하루종일 전화만 하며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은 아가씨들도 곧 어떤 변화를 보이지 않을까 싶어져서 그렇게 눈쌀을 찌푸릴 것까지는 없을 것 같아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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