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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62

"건강하시죠?" "아, 예! 지난겨울보다는 더 쓸쓸해졌지만요……." 그런 인사를 처음 듣게 되었을 때는 그가 내 건강을 진정으로 혹은 깊이 염려해주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 물론 그런 이가 없다고 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건강하시죠?" 전화를 하면 흔히 그렇게 묻습니다. 새삼스럽게 들리긴 하지만 의례적으로 묻는 것입니다. 어떤 대답을 할지에 대한 계획이 순간적이지만 복잡하게 얽힙니다. 이 사람과 할 말이 많거나 간단하지 않다 싶으면 "예" 해버리면 그만입니다. 얼른 본론을 얘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할 말이 별로 없을 듯한 안부 전화(!)일 때도 "예!" 해버려서는 난처할 것입니다. 피차 그다음에 할 말을 특별히 마련해두지 않은 상태가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나는 "예. 그저 그렇습니다" 하거나 "예, 별로 좋진 않지만 그럭저럭 지냅니다" "예, 뭐 .. 2017. 4. 11.
식자우환(識字憂患) 식자우환(識字憂患) 2016.5.18. 가족과 연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입니다. 1 프랑스 시골의 가장 고질적인 신화 중 하나가, 멀쩡하게 건강했던 사람이 어느 날 산동네에서 내려갔다가 실수로 엄벙덤벙 진료소에 발을 들인다는 내용이다. 그런 후 몇 주 지나지 않아서 (.. 2017. 4. 9.
그대와 나 ⑶ 나에게 평생 쩔쩔맨 그대는, 내가 사람들 때문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날 "드디어 사람이 좋다"고 했다. 2017. 4. 4.
'시리우스' 혹은 늑대별 구식 스마트폰으로 찍은 이 사진에서 초승달 아래의 저 별을 본 분들이 더러 '별 같은' 이야기를 써주셔서 인상 깊었습니다.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954) 인터넷을 보니까 '시리우스'라는 별이고 빛의 속도로 8년을 가면 저 별에 도착한다고 해서 '참 우스운 얘기구나' 했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그것도 8년이라니! 사람을 좀 놀리고 싶은 건지 원……. 블로거 모모(MOMO)님이 소개해 주신 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1에서 저 별에 얽힌 가슴 시린 얘기를 보았습니다. 베란다에 무릎을 꿇고 앉은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작은 나무야, 늑대별(큰개자리에 속하는 별로 일명 시리우스라고도 한다. 겨울 하늘에 가장 .. 2017. 4. 1.
그대와 나 ⑵ 그대와 나 ⑵ 나는 실바람만 불어도 꺼지고 말 가녀린 촛불 같은, 소홀하게 만지면 바스러져 버릴 존재이고, 그대는 당연히 철판 같은 것으로 조립된 인조인간쯤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여긴 세월이 너무 오래여서 나는 그대의 생각 같은 건 물을 수도 없게 되었다. 2017.2.23. 2017. 3. 30.
미소 미 소 정치인들은 "당신은 나쁜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사람 앞에서도 어정쩡한 혹은 평상시 그대로의 미소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일까요? 그런 어마어마한(혹은 뻔뻔한, 가식적인, 훈련된, 무의식적인……) 미소는 아니지만, 나도 여러 번 그런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정치인.. 2017. 3. 16.
내가 바란 것, 바라는 것(2017년 3월 6일) 내가 바란 것, 바라는 것(2017년 3월 6일) 오늘 아침 식사 때만 잠시 아주 마음 놓아버리고 일탈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런 심사 때문에 기회만 되면 핑곗거리를 마련해서 먹지 말라는 식품, 자제하라는 식품을 야금야금 상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병원에서 내게 제공한 "○○질환.. 2017. 3. 6.
2017년 2월 27일 2017년 2월 27일 혼자 저렇게 뒹굴고 있었다. 내내 지켜보았다. 나의 관찰이 위로가 될 리 없을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순백색의 짝과 함께였었는데…….' 다시 내다보았을 때, 저것은, 노란색 털을 가진 새 짝을 보여주었다. 혼자인 척 나를 속이려고 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창 안쪽의 .. 2017. 3. 2.
정원의 빗질 자국 그는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뒷모습이 정물화처럼 고요했다. 내가 발코니로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이것 좀 봐." 웬걸, 그가 보고 있던 것은 바다가 아니라 탁자 위 재떨이였다. 누구의 솜씨일까. 재떨이를 가득 채운 모래 표면에 앙증맞은 조개 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어서 그 위에 재를 떨려면 약간의 뻔뻔함이 필요할 것 같았다. 단편소설 「2월 29일」(김미월 단편소설 『현대문학』 2017년 1월호, 50~70쪽 중 59쪽)을 읽다가 일본 어느 절 정원에서 본 빗질 자국이 떠올랐습니다. '빗질 자국'? '손질 자국'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제작(!)한 빗질 자국(혹은 손질 자국)이었습니다. 싸리비로 쓸어놓은 마당은, 그때는 그.. 2017. 2. 27.
준서 할머님의 이 답글…… 긴 댓글은 대체로 부담스럽습니다. 그걸 단번에 읽고 뜻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아무리 한가한 신세라 해도 댓글을 읽고 또 읽는 게 좀 그렇지 않은가 싶어서―웬만하면 그 댓글 길이 정도의 답글은 써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을 무겁게 해서입니다. 그렇지만 긴 답글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매번 긴 답변을 기대하거나 매번 긴 답글을 보게 되는 것도 난처한 일이긴 하지만……. 이 인간은 이렇게도 이렇습니다. '비공개' 댓글도 부담스럽습니다. 여러 번 어려움을 겪었고, 비공개 댓글로 찾아온 분 하고는 아직 단 한 번도 성공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서인지 누가 '비공개' 댓글을 남긴 걸 발견하는 순간 심지어 '또 걸려든 걸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이걸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2017. 2. 23.
그대와 나 그대와 나 그 손이 차가울 때 나는 본래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알고 지냈는데 뜨거워져 있다. 오십 년이 되어가니 이걸 안 것은 너무도 오랜만이다. 그렇다고 뜨거워지다니……. 차가워야 하는 건지, 뜨거워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되돌릴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 2017. 2. 19.
내가 사는 곳 북쪽 어디에는 진눈깨비가 내렸다고 했다. ― 허연(시), 「시월」(『현대문학』 2017년 1월호) 중에서. 그날 저녁, 내가 살펴본 블로그에서는 아무도 눈 내린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는 마침내 멀고 외로운 곳에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2017.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