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62

2016 가을엽서 하늘이 높습니다. 연일 가을구름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밤은 더 깊습니다. 책을 들면 1분에 한두 번씩 눈이 감기는 것만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까무룩' 내처 가버려도 그만일 길을 매번 되돌아오긴 합니다. 이런 지 꽤 됐고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몸은 한가롭고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두렵진 않은데 초조합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2016. 9. 15.
'현강재'의 설악산 '현강재'강원도 고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의 블로그 이름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부총리겸교육부장관을 지낸 분이다. 김영삼 정부 때도 교육부장관을 지냈다. 나는 그 이전에 교육부에 들어가서 그분이 두 번째 장관을 지낼 때까지도 그곳에서 근무했다. 애들 말마따나 "죽도록" 일했다. 그렇지만 뭘 했느냐고 물을 때 대답할 말을 아직도 준비하지 못했다. 일기(日記)는커녕 메모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지쳐서 숨 좀 쉬고 준비한다는 게 이렇게 됐다.묻는 사람도 없긴 하다.일전에 '현강재'에 가서 "저 울산바위를 닮으셨는가, 그래서 그곳에 계시는가 생각했다"면서 블로그에 장기간 새 글이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지만 농사일 때문이겠지 한다는 댓글을 달았더니 이튿날 "가을의 문턱에서"라는 제목의 글이 실.. 2016. 9. 13.
이 물리학자의 세계 출처 : NASA Λ K 교수는 물리학자입니다. 그의 연구실이 있는 기관의 자료를 보면 "Professor Emeritus Neutrino Physics and Cosmology"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 사진의 저런 공간을 연구한다는 것이겠지요? 과학 관련 국제행사나 무슨 세미나가 열리는 날에는 만날 수가 없지만, 버스나 전철역에서 곧잘 만나게 되고 세상 얘기를 나누며 오고 갑니다. 잘난 척하지 않고, 전문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무엇이든 다 얘기해줍니다. 일전에는 상대성 원리를 일반 상대성 원리와 특수 상대성 원리로 나누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E=mc²》이라는 책을 읽어도 도무지 뭔 말인지 몰랐는데 그걸 15분 만에 공식 같은 건 동원하지 않고 설명했습니다. 들은 대로 이야기해보라면 못하겠지만, 들.. 2016. 9. 11.
자판기 앞에서의 추억에 대한 感謝 "가만있어 봐…… 어느 걸로 할까?" 오랫동안 그렇게 지냈습니다. 즐겁진 않아도 괜찮은 순간들은 많았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있어서는 안 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 그 시간이 종료된 걸 알았습니다. '하나 마셔볼까 말까?' 그 정도여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신다고 죽는 건 아니라면서까지 마실 일도 없는 것이어서 어느 새 별 관계가 없는 사이가 된 것인데 그게 섭섭해서, 별 게 다 섭섭해서 지날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런 절차 없이 어느 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끝날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차한 시간들이 기다린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더 빛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이 시간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웃기는 .. 2016. 9. 6.
변명(辨明) 변명(辨明) # 1 열차가 지나가는 동안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입니다. 지붕으로 올라간 것은 호박 덩굴입니다. 호박꽃도 보였습니다. 누가 "더 멋있는 꽃을 심지 않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내가 나서서 그렇지 않다는 걸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려.. 2016. 9. 4.
흐트러진 시계 바늘 명패가 보이지 않았다. '회복'이면 좋겠다. 다음은『現代文學』 7월호. 조해진 단편소설 「눈 속의 사람」 첫 대문이다. 30분 뒤에 출발하는 태백행 버스표 두 장을 사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데 이곳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막연히 여진을 기다렸던 7년 전의 겨울이 떠올랐다. 그때 내 시계엔 숫자와 눈금이 없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돌연!……. '아, 그래! 그런 꿈을 여러 차례 꾸었지!' 손목시계의 바늘들이 모두 빠지고 흐트러져서 그것들을 제자리에 꽂으려고 애쓰는 꿈. 대충 맞추었는가 싶어 하면 와르르 다시 무너지거나 제 시각을 가르치지 못하거나……. 아예 영 맞추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 그 꿈들을 잊고 지낸 것이다. 마음이 자꾸 흐트러지던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런 세월이 지나간 .. 2016. 9. 1.
알파고 인간의 모습 알파고 인간 Ⅰ 인간? 글쎄요. 그것도 인간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긴 하지만 일단 '인간'이라는 단어 앞에 무슨 수식어를 붙이면 괜찮을 것 같긴 합니다. 인조인간, 로봇 인간, 알파고 인간……. 그럼 우리 같은 '사람'을 가리킬 때는 "진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가짜 인간 .. 2016. 8. 30.
꾸꾸루꾸꾸…… 하룻밤 사이에 날씨가 급변해서일까요? 철 지난 바닷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겨울바람이 낭만을 실어오는 그런 바닷가 말고 밀물처럼 밀려왔던 한 해의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기약도 없이 사라져 간 초가을 해변. 리우도 생각났습니다. 가본 적 없는 그곳 거리. 올림픽 열기가 그대로일 리는 없겠지요? 조금은 남아 있나요? 아니면 1966년의 그 초가을 해변 마을처럼 눈물 글썽거려서 썰렁한가요? 그럼, 그런 열기가 없으면 하루도 못 견딜 것처럼 살아가는 정열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딜 수 있나요? 사람들은 말하네. 밤이 되면 그는 단지 울기만 한다고. 먹지도 않고, 그저 술잔을 기울이기만 한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그의 울음소리(哭)를 들으면 하늘까지도 전율한다고. 그녀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죽어가면서도 그.. 2016. 8. 26.
"봐, 백인 맞잖아!" 천사 Celestial 크리스 오필리(영국, 1968년생) 채색 석판, 스크린 인쇄, 39×29㎝   # 1. 검은 천사 예술의 전당 대영박물관전("Human Image 영원한 인간" 2015.12.11~2016.3.26)에서 본 그림.주제넘지만, 화가1가 이야기하고 싶은 걸 생각하면 괜히 미안해진다.검은 천사여서 세수를 시킨다 해도 사진으로는 별 수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좀 자세히 보려고 두 번 찍은 사진.  # 2. "검은 모세" 백인들이 몰려와 성경을 손에 쥐어주고 눈 감고 기도하라고 했다. 눈을 뜨고 나니 그들은 우리의 땅을 빼앗아 갔고 우리 손에는 성경만 남아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뼈 있는 농담이다. 콩고 출신의 소설가 알랭 마방쿠Alain Mabanckou가 2015년에 발표한 『작은 고.. 2016. 8. 25.
건너편의 빈자리 건너편의 빈자리 Ⅰ 점심시간이 되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할 이른 시각의 식당가, 좀 뻔뻔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더니 저렇게 이번에는 건너편 자리에 와서 앉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Ⅱ 바쁘게 지내는 사람들과 모처럼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사무실에 들렸다가 나가기는 어중.. 2016. 8. 18.
옛날의 별들 Kepler Watches Stellar Dancers in the Pleiades Cluster. Aug. 13, 2016(NASA) Perseid Meteor Shower 2016 from West Virginia. Aug. 12, 2016(NASA) ◈ 나의 세상은 아직 까마득하던 시절, 세상은 절대적으로 평화롭고 합리적인 곳이어서 무기를 들이대는 엉터리 집단은 곧 사라질 수밖에 없고, 남을 괴롭히면서까지 돈을 밝히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그릇됨을 깨닫게 되거나 곧 무거운 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던 시절, 그 여름밤, 마당 한가운데에 깔아놓은 멍석에 누워 올려다보던 그 '옛날의 별들'이 그리워집니다. NASA의 재주가 아무리 좋다 해도 그 시절의 그 밤하늘을 보여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신비로.. 2016. 8. 16.
물리학자의 立秋 Ⅰ 저 신록의 계절, 저때만 해도 괜찮았다. 괜찮았다기보다는 의욕에 차 있었다. 올해도 손자손녀를 보러 열 몇 시간 걸리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각오가 무색하게 여름이 오자마자 미국행을 포기해서 손자손녀 일행이 다녀가게 하더니, 수소폭탄 원리를 연구해서 생활 에너지로 쓰게 되면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고 이상기후 같은 것도 해결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그리 수월하지 않은 연구라는 둥 어떻다는 둥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까지 했다. Ⅱ 마침내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고 열대야가 계속되던 지난 주말에는 이런 여름이라면 지쳐서 견디기가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신은 마지막에 이르면 모르핀이나 놓아달라고 하지 결코 다른 치료는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 2016.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