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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64

우리만의 별실을 요구하는 이유 우린 우리만 있을 별실을 요구하는데, 그건 우리가 잘나서, 우리가 흘린 명언을 행여 누가 엿듣고 훔쳐 갈까봐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중 반은 가는귀가 먹어서 그렇다. 그 사실을 공표라도 하듯 자리에 앉으면 엄지로 보청기를 귀에 꽂는 친구도 있지만, 아직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머리숱이 줄어들고 안경을 쓴다. 우리의 전립선은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있어서, 층계 끝 화장실 수통은 과부하게 시달린다. 그래도 우린 대체로 쾌활한 편이며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이야기는 익숙한 흐름을 따른다. …… ―줄리언 반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다산책방 2016) 134. "이야기는 익숙한 흐름을 따른다"? 우리는 만나는 그 순간을 더욱 즐거워한다.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 2016. 12. 6.
미안한 날들 지난 2월 29일 오전, 작고 정겨운 나의 서가 앞에서 미안한 날들 12월입니다. 하릴없이 달력을 쳐다보게 되는 나날입니다. 쓸쓸하지만 않아도 괜찮을 날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나의 생일이어서 내가 당신에게 미안한 날, 당신의 생일이어서 당신에게 내가 미안한 날, 그런 우리의 생일처럼 .. 2016. 12. 2.
"다시 태어나거든……" 1 2014년 10월, 그러니까 꼭 2년 전 가을에 찍은 사진입니다. 뚜렷하게 아름다운 여성이 보이지 않습니까? 제 아내입니다!!! 2 저 사진이 다시 눈에 띈 순간 가슴이 써늘했습니다. '어제의 축제 같은데 어떻게 벌써 저렇게 초췌해졌지?' 그보다 먼저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아, 저때만 해도 젊은 티가 났었구나!' 꼭 2년 전의 저 시간이 그리워졌습니다. 다시 2년 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3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나는 싫어합니다. 그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지켜보며 앉아 있는 것조차도 곤혹스럽니다. "앉아 있다"고 하는 건 늘 아내와 함께 텔레비전 앞에 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여성이 야릇한 미소를 짓거나 .. 2016. 11. 26.
길가에 서서 길가에 서서 몸이 무거워서, 멈춰 섭니다. 주머니에는 별 것 없습니다. 확인해 볼 것도 없는 것들입니다. 다만, 몸이 무겁습니다. 지난여름보다 더한 무게입니다. 몸무게도 늘지 않았고, 드는 물건을 줄이고 아무것도 들지 않고 다니려고 하는데도 점점 무거워집니다. 언짢은 곳은 가슴속.. 2016. 11. 22.
조언과 동정 조언과 동정 1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죽음에 관해 얘기한 후, 내 친구 R은 경찰에게 산탄총을 압수당했고 나는 여러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 편지들에는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믿음에 나 자신을 열어 보이고 교회에 가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등등을 통해 두려움.. 2016. 11. 17.
돌아가는 길에 만난 아내 1 평생 강의를 하며 지내지 않았겠습니까? 선생이었으니까요. 교육부 근무도 오래 했으니까 그동안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만 해도 거짓말 보태지 않고 수백 번은 했습니다. 그 이력으로 학위도 없으면서 어느 SKY 대학 박사과정 강의도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퇴임한지도 오래되어 강의할 데가 없어졌는데 그 '후유증'(?)으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인지 아침저녁으로 아내를 '앉혀놓고'(? 앉으라고 해서 앉은 건 아니지만)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이 표현이 적절할지……. 어쨌든 이젠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이야기를 할 대상이 그 한 명 외에는 전혀 없게 된 것입니다. 2 말하자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청중은 딱 그 한 명뿐인데, 내 강의에 이렇게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2016. 11. 10.
개에게 책 읽어주는 남자 개에게 책 읽어주는 남자 『철학자와 늑대』를 읽을 때, 밑줄 그어 놓은 부분입니다. 물건 같으면 아까워서 남 빌려주지 않고 혼자 써야 할 만큼 소중한 내용입니다. 이런 것은 정녕 물건보다 소중한 것인데 이제 나는 개와 함께할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아서 그만 공개하고 말기로 했.. 2016. 11. 6.
감국화(甘菊花) 감국화(甘菊花) 보내주신 감국화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오해를 하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저 벌 나비처럼 감국(甘菊)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저는 도저히 이걸 우려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써 붙여서 되돌려 보내는 것도 마땅하지 않을 것입니다. '.. 2016. 11. 3.
나의 설악산 나의 설악산 * 텔레비전의 설악산 * 올 가을의 설악산 * 가을마다 사상 유례없이 찬란한 설악산 * 미안한 설악산 * 부끄러운 설악산 * 꿈속의 설악산 * 섭섭한 설악산 * 해마다 가는 설악산 * 가을, 밤마다 다녀오는 설악산 * 마음의 설악산 * 언제나 가는 설악산 * 2015년까지의 수많은 설악산 .. 2016. 10. 31.
"플라워 샵" 같은 동(棟) 같은 줄(라인 line)에 사는 젊은 여성이 허겁지겁 엘리베이터로 뒤따라 들어온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애 S의 어머니. 나는 이 라인에 사는 사람들을 대충 다 안다. "늦으셨네요?" 나는 이게 탈이다. 소문도 없이 이사를 와서 소문도 없이 이사를 갈 때까지 허구한 날 서로 빤히 쳐다보기만 하면서도 마음 편하게 지내는 사람들뿐인데 나는 그게 안 된다. 아이들은 내가 평생을 바치고 그 대가로 봉급을 받아 생활한 대상이니까 나는 당연히 그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해야 하고, 또 젊은 여성들은 그 애들을 낳아준 고마운 이들이고 젊은 남성들은 그 여성들의 남편이니까, 더구나 늙은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따지고 보면 나와 별 차이가 없이 함께 늙어가는 그만그만한 연배니까 내가 먼저 인사한다. 아내는 그런 .. 2016. 10. 29.
'아~따 참……' (DAUM 한국어 사전) 아따 1.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못마땅하거나 정도가 심하여 빈정거릴 때 내는 말 2.어떤 것을 어렵지 않거나 하찮게 여길 때 내는 말 예문 4건 * 용준이는 “아따, 이놈 봐라.” 하며 보리알만 한 수퉁니를 한 마리 잡아 화로에 넣었다.(→수퉁니) * 아따, 그거 별것도 아니네.(→아따) * 아따, 이 녀석 말 한번 잘하는구나.(→아따) * 아따, 그놈 술 한번 잘 마시네.(→아따).......................... (NAVER 국어 사전) 아따 1[감탄사] 1. 무엇이 몹시 심하거나 하여 못마땅해서 빈정거릴 때 가볍게 내는 소리. 2. 어떤 것을 어렵지 아니하게 여기거나 하찮게 여길 때 내는 소리. 아따 2[어미] [옛말] -았다. 아따 지식iN 오픈국어 전라도 말.. 2016. 10. 12.
울음 울음 가을 저녁입니다. 세상을 거덜낼 것처럼 나대는 사람이 없진 않지만 여기는 풀벌레 소리뿐입니다. 쓸쓸하긴 합니다. 저것들은 저러다가 숨이 넘어가는 것 아닌가 싶도록 울어댈 때도 있습니다. '저렇게까지……' '뭘 그렇게…… 그런다고 무슨 수가 날까……' 그러다가 고쳐 생각합.. 2016.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