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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다시 태어나거든……"

by 답설재 2016. 11. 26.

 

 

 

 

 

1

 

2014년 10월, 그러니까 꼭 2년 전 가을에 찍은 사진입니다.

뚜렷하게 아름다운 여성이 보이지 않습니까? 제 아내입니다!!!

 

 

2

 

저 사진이 다시 눈에 띈 순간 가슴이 써늘했습니다.

'어제의 축제 같은데 어떻게 벌써 저렇게 초췌해졌지?'

 

그보다 먼저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아, 저때만 해도 젊은 티가 났었구나!'

꼭 2년 전의 저 시간이 그리워졌습니다. 다시 2년 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3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나는 싫어합니다. 그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지켜보며 앉아 있는 것조차도 곤혹스럽니다. "앉아 있다"고 하는 건 늘 아내와 함께 텔레비전 앞에 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여성이 야릇한 미소를 짓거나 단호한 표정으로 "아니요!" 하는 건 어쨌든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도 "아니요!"의 그 평범한 대상 속에 편안한 마음으로 소속되어 있는 것 같은 안도감 같은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여성들이 저렇게 흔히 지금의 남편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아니요!" 하고 대답하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대답하겠지만 이건 건성으로 하는 대답이고 내 남편은 내가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듯한 표정으로, "절대로!" 하고 얼마쯤 즐거운 미소를 머금는 걸 눈치채지 못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거의 의무적으로 대학수학능력고사를 치르듯 이 질문에 진실로써 대답해야 저승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않다면 나는 그따위 질문이 없는 '다른 저승'으로 가고 싶습니다.

비록 텔레비전 안에서지만 이 질문을 주고받는 장면을 볼 때마다 아내와 함께한 오십 년 가까운 그 세월이, 한겨울 들판을 휩쓸고 지나가는 회오리바람이 되어 가슴속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4

 

TV 화면에서라도, 제발 그런 질문 좀 들리지 않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안 되겠지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내 대답은 이런 것입니다.

"내 아내가 나를 선택할 리도 없지만 다음에는 실수하지 말고 ―이번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가 조른다고 해서 넘어가지 말고― 정말로 좋은 사람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이 대답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본인의 눈을 바라보며 직접 이야기해 주세요."

하고 요청하면? 그런 가혹한 경우도 없진 않겠지요.

 

"다시 태어나거든…… 다시 태어나거든……."

 

 

5

 

다음은 지난 2014년 가을에 저 사진을 두고 쓴 글입니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지만, 저렇게 화장을 하고 한복을 입은 아내를 보니까 얼굴 윤곽을 아주 과장되게 표현한 가부끼의 배우가 생각나서 좀 우스웠고 약간 낯설고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그 낯설고 당혹스러운 느낌 때문이었는지, 동시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걱정스러움(곱게 화장을 하고 공개적으로 나타난 나의 여인!)과 자랑스러움도 느꼈습니다. 자랑스러움이란 아무래도 저 중에서는 내 아내가 제일 이쁘구나 싶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내가 "그렇지 않다, 내 아내는 좀 못났다"고 해봐야 곧이들을 사람도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얘기를 공공연하게 써서 미안하고 쑥스럽습니다. 오죽하면 "팔불출"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건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그렇게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면서 평소보다 더 구체적으로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내에게 남다르게 대해준 것이 있습니까?"

"…………"

 

그렇지만 "아내여! 미안하다"고 하면 "난데없이 왜 그러느냐"고 할 것 같아서 공연을 마치고 나서 만났을 때 그런 마음은 감추고 식사를 하고 들어가자고 했더니, 집에 가자고, 그냥 집에 가서 '집밥'을 먹자고 했습니다. 미안해서 그런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이게(이 나날이) 축제인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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