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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우리만의 별실을 요구하는 이유

by 답설재 2016. 12. 6.

 

 

 

 

 

 

 

  우린 우리만 있을 별실을 요구하는데, 그건 우리가 잘나서, 우리가 흘린 명언을 행여 누가 엿듣고 훔쳐 갈까봐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중 반은 가는귀가 먹어서 그렇다. 그 사실을 공표라도 하듯 자리에 앉으면 엄지로 보청기를 귀에 꽂는 친구도 있지만, 아직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머리숱이 줄어들고 안경을 쓴다. 우리의 전립선은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있어서, 층계 끝 화장실 수통은 과부하게 시달린다. 그래도 우린 대체로 쾌활한 편이며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이야기는 익숙한 흐름을 따른다. ……

                            ―줄리언 반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다산책방 2016) 134.

 

 

  "이야기는 익숙한 흐름을 따른다"?

 

  우리는 만나는 그 순간을 더욱 즐거워한다.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즐거워하는 것이고, 바로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한다면 나 자신은 그렇다! 그 순간에는 내가 죽지 않은 사실이 즐겁다.

 

  우리는 허풍을 떤다. 마치 허풍을 떨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달려온 사람들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대단하지도 않은 내용의 허풍이다. 더구나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는다.

  나만은 절대로 그런 허풍을 떨지 않는다. 믿어도 좋다.

 

  우리는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이야기가 많은 것이 아니라 말이 많은 것이다. 이것도 서로 간에 말리는 사람이 없다. 선생 출신들이 모이니까 오죽하겠는가. 모임이 끝날 때까지 혼자서 지껄여보라면 그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참는다. 그렇게 참는 것은 나뿐이지 싶다.

 

  참 희한한 짓거리를 하고 다닌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해대는 경우도 있다. 아무도 통제를 하지 않는다. 이젠 동등한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잘못을 전혀 눈치챌 수조차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행태는 간단히 고쳐질 것도 아니지만 굳이 고쳐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다. 고쳐주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세상사에 대한 강력한(혹은 미미한) 의사표현이 가능한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사실은 심각한 것이 있다.

  더 친해지기도 어렵겠지만 더 멀어지기도 어려운 관계가 되었다.

  쓸쓸한 것도 심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쾌활해 보이는 것은 그런 척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쓸쓸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잊을 뻔한 것이 있다. 아무데서나 사진을 찍어댄다. 전에는 우리도 이런 뻔뻔한 짓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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