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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구둣방 아저씨

by 답설재 2016. 12. 22.

 

 

 

 

1.5평은 될까 싶은 저 구둣방은 대로변에 있었습니다. 관청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해서 난감했는데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저곳, 학교 담장에 붙어 있어도 좋다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저 구둣방이 이사한 곳은 학교 담장과 순댓국, 족발집이 많은 전통시장 사이의 골목길입니다. 구두를 자주 닦는 사람이 있을까, 공연히 걱정스러웠습니다. 오며 가며 봐도 그럴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나조차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둣방 아저씨는 '꼽추'입니다. "꼽추 아저씨"라고 드러내 놓고 부르지는 않고 마음속으로만 '꼽추구나' 하는 것은 '꼽추'는 아무래도 '척추장애인(脊椎障碍人)'을 좀 얕잡아 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하고 동갑일지도 모릅니다. 몇 번 보면서 그렇게 짐작했습니다.

 

그는 호박떡과 찹쌀 시루떡을 좋아합니다. 다른 떡은 모르겠습니다.

붕어빵(잉어빵)도 좋아하지만 계란빵은 더 좋아합니다.

오뎅(어묵)도 좋아합니다. "오뎅 BAR"의 "오사카 오뎅" "나가사끼 오뎅" "이자까야 오뎅" 같은 것도 좋아할지는 모르겠고, 그냥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천 원에 두 개짜리를 일회용 컵에 국물과 함께 넣어서 주는 그 어묵을 좋아합니다.

잊을 뻔했습니다. 감귤 농사가 풍년인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서 3000원 받는 감귤도 좋아합니다.

 

또 뭘 좋아할까요……. 궁금하시면 지나는 길에 넌지시 물어보십시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니까요. 정면에 "구두백화점"이라고 써붙인 곳, 구두에 관한 한 어떤 일도 처리해 주겠다는 "구두백화점"…….

 

저곳으로 옮긴 지 보름이 되었는데도 단돈 십 만원도 못 벌었다고 했습니다.

까짓 거 그 꼽추 아저씨 '벌거나 말거나'지만 집에 있는 가족(아마도 '아내')에게 "라면이라도 끓여먹어라고 해야 하는데……." 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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