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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헛헛한 탐구(探究)

by 답설재 2016. 12. 28.






헛헛한 탐구(探究)









   1


  전철을 기다리며 일쑤 저렇게 휴대전화를 들여다봅니다. 괜히 이것저것 화면을 건드려보고 찍어놓은 허접한 사진들을 열어보기도 합니다.

  모두들 그렇게 하는 세상에 그냥 앉아 있으면 멍청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전철에 오르면 일반석으로 갈 용기는 없고 해서 정말 싫어하면서도 노약자·장애인·임산부·영유아 동반자석에 앉습니다.


  어떤 늙은이가 이미 '쓰레기'가 된 지식을 자신만 아는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나는 그 사람 대신 부끄러워하다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척 밖으로 나가 얼른 다음 칸으로 오릅니다. 통로로 옮겨가도 되지만 눈치가 보여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2


  일전에는 좀 늦게 귀가하다가 냄새가 많이 나는 사람과 함께 앉게 되었습니다. 그 '냄새나는 사람'은,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다른쪽 옆사람과 맞은편 사람들에게 자신이 모대학 교수라면서, 모른 척 책만 보고 앉아 있는 나를 1초마다 한 번씩 힐끗거리며 횡설수설 뭔가를 떠들어댔습니다.


  그때도 나는 그 사람 대신 부끄러워했고, 끝내 그 냄새와 수치심을 견딜 수가 없어서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 다음 칸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는 자리에 앉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살 것 같았습니다.


  인터넷 지식 중에는 이미 "쓰레기"가 된 것도 많습니다. 그따위를 가지고 아는 척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냄새나는 노인이 저만 아는 줄 알고 쓰레기를 가지고 와서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괴롭히는구나.'



   3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저렇게 스마트폰이라도 들여다보고 뭘 좀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인터넷 검색을 하는 행위에 이름을 붙여보았습니다.

  '탐구(探究)'!


  그렇게 명명하고 보니까 돌연 헛헛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예전에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던 그 방학책 "탐구생활"이 생각난 것입니다.


  더구나 그 이름이 "탐구생활"로 바뀌기 전에는 "겨울방학" "여름방학"이었던 것까지 생각나면서 한여름이 오고 한겨울이 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그 책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던, 분주하고 어렵고 복잡하지만 즐겁기도 했던 그때가 사정없이 그리워지기 시작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저렇게 앉아서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되는 '탐구'의 형편이 왠지 서글픈 느낌을 주었습니다.



   4


  그렇다고 나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멍청하게') 저렇게 열심인 누군가에게 "그러지 말고 우리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아무래도 '약간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냥 인터넷에 들어가 수많은 것들 중에서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살펴보면 안 되나? 하겠지만 마땅히 호기심을 가질 만한 것이 눈에 잘 띄지도 않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물론 관심을 가져야 할 일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새벽부터 하루종일 그것만 생각하고 살펴보고 할 것도 아니어서 오고가는 사람들도 살펴보고 이곳저곳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게 훨씬 좋습니다. 그러면 주머니에 든 물건을 꺼집어내듯 당장 칠십여 년의 세월에 있었던 일들을 눈앞에 늘어놓을 수 있게 되고, 그 일들을 이것저것 생각하기 시작하면 단숨에 A4 열 장 정도의 분량은 채우게 됩니다.


  이젠 생각하는 것이 취미가 된 것입니다. 또 이참에 헛헛한 느낌을 가지고도 따스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이 사정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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