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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여기서 멈춥니다"

by 답설재 2017. 1. 3.






"여기서 멈춥니다"







우리나라 최초 동시문학 전문지

《오늘의 동시문학》 50호(종간호)








여기서 멈춥니다


                                                                                            박두순(주간, 동시인)

 

 

  추위가 엄한 계절이 왔습니다. 어쩌다 <오늘의 동시문학>도 엄한 계절을 맞아, 걸음을 멈춥니다. 이 자리에 섭니다.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오늘의 동시문학> 깃발을 여기서 내리고, 쉽니다. 50호 기념호 잔칫상이 기쁨이어야 하는데, 발행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움으로 가득합니다.


  2003년 봄에 창간호를 내고, 즐겁게 걸어왔습니다. 어느새 13년이 되었습니다. 창간호를 부산하게 준비하며 어리버리해 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세월 참 빠르기도 합니다. 제 나이도 70이 다 되어가니까요.


  돌이켜보면 보람된 나날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읽을거리를 실을까, 그 생각으로 늘 머리가 젖어 있었습니다. 작품과 비평이 균형을 잘 이룬 책을 내려는 강박관념 속에 지내 왔습니다. 이런 걱정의 덕분이었을까요, 그 동안 독자 여러분의 큰 사랑을 받고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문예지 발간 환경은 크게 열악해졌습니다. 이미 문을 닫은 일반시 문예지도 여럿 있습니다. 거의 모든 문예지들이 발간비 등으로 허덕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오늘의 동시문학>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더 버틸 힘이 미약합니다. 발행비도 발행비려니와 이래저래 저의 힘도 많이 빠졌습니다.


  <오늘의 동시문학>은 창간호에서 동시문학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놓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나름 발걸음을 했습니다. 얼마나 걸어 나왔을까요? 징검돌 몇 개나 놓았을까요? 평가는 뒤로 미뤄 놓습니다. 다만 기대 하나를 묻어둡니다. 언젠가 누가 이 책을 다시 이어서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입니다.


  패장은 말이 없어야 하는데, 너무 길었지요? 그 동안 원고를 주신 동시인을 비롯한 모든 필진과 역대 편집위원,「오늘의 동시문학상⌟과 <오늘의 동시문학>을 후원해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살아있는 날까지 기억하겠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과 독자 여러분, 여기서 멈춤을 헤아려 주시겠지요?







  내 친구 박두순 시인이 《오늘의 동시문학》을 그만 내겠다고 해버렸습니다.

  생각만 하면 섭섭합니다.


  그는 수십 년 전, 내가 신춘문예 최종심에 이름을 '올린'(=낙방한) 그 눈 내리던 날 오전, 우리가 함께 지내던 그 소도시의 한적한 네거리에서 만나 "이젠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딱 한 번 응모했고, 딱 한 번 떨어진 건데 그만두느냐고 한 사람입니다. 최종심에 오른 것만 해도 대단한 것 아니냐고 했었습니다.1


  14년간 50호나 내놓고 그만두겠다고 한 것도 그 선언과 다르지 않은 점이 있지만 그 얘긴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들어와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자유문학상'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간단한 한정식을 대접했습니다. 전화로 떡국이 좋겠다고 했지만 떡국 파는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종간(終刊)이라니…… 원, 세상에…….'


  '동시 같은 건 필요 없다!'

  '동시는 그만 써도 된다!'

  '동시가 영 필요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다른 장르에 비해 시시하다.'

  '요즘 세상에 동시는 무슨 얼어죽을……'

  '아직까지, 그래, 동시나 쓰고 앉아 있었단 말인가?'

  '동시는 있는데, 돈이 없지? 맞지?'2(그만한 돈도 없나? 나도 없긴 하지만……)

  '……'








  1. 나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써봤자 삼류 작가가 될 것입니다. 그러려니 일류 독자가 되겠습니다.' [본문으로]
  2. '책 한 번 내는데 500만원도 들지 않는다면서...... 그렇게도 어쩔 수 없고, 별 수 없는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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