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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래, 알았어. 고마워!'

by 답설재 2017. 1. 23.

2021.1.31. 덧붙임.

 

 

 

1

 

루소는 사실상 이렇게 선언했다. "사랑이라는 강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열정 같은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의 격렬함을 보고 사랑이 오래 지속될 징후로 간주하고 너무 달콤한 느낌에 짓눌린 마음 덕분에 사랑이, 굳이 말하자면, 미래까지 넘치고 사랑이 지속되는 한 그런 마음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오히려 감정을 소진시키는 것은 바로 그 열렬함이다. 그것은 젊음과 더불어 마모되고 아름다움과 더불어 지워지며 빙하기에 들면 그 불꽃은 꺼져버린다. 이 세상이 존재한 이래로 백발이 성성한 두 연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일은 결코 본 적이 없다."1

 

미즈바야시 아키라의 '사랑의 연대기' 《멜로디》에서 이 글을 보며 언짢고 안타까웠습니다.

언짢았던 것은 사랑의 열정에 대한 루소의 평가이고, 안타까웠던 것은 경험으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시간의 파괴성' 때문이었습니다.

두 가지에 대해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줄 역량이 없습니다.

 

 

2

 

가슴이 '괜히'(!) 울렁거릴 때가 있습니다.

'마침내 나에게 이런 좋은 일도!' 싶은 통보를 받았거나(아주 드물게, 평생 두어 번?), '아, 큰일이군!' 싶었을 때(그런 통보보다는 자주), 혹은 가슴 속에 걱정스러운 일을 두고 일상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해!' 같은 예감을 가질 때의 그 충격 같은 것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도 그 울렁거림을 느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야 할 때 테엽이 저절로 느슨해지고 풀려 엉뚱한 움직임을 보이거나 무슨 소리를 내는 고장난 장난감처럼…….

그럴 때는 이명도 더 심해집니다.

피가 온몸을 순환하는 자율적인 활동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여 피를 순환시키고 있다는 것을, 내 몸이 나에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자율신경이 하는 일인데도 구태여 그걸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 알았어. 고마워! 그렇지만 아직 끝나진 않았다면 일단 조용해지면 좋겠어………….'2

 

 

3

 

남들이 보면 별 것 아닙니다. 나를 그렇게 바라볼 그 '남'(아직 그걸 전혀 의식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일도 또다른 '남'이 보면 별 것 아닌 일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그만두는 일은 정해진 것입니다. 그 순간, 참담한 시간의 길이가 아득하게 느껴질 사람은, 한 명? 두 명일 사람도 있을까요? 없을 사람도 있겠지요?

 

그 순간의 충격이, 루소가 설명한 것과 전혀 다르다면, 사실은 사람은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며 차츰 망가져가는 것이긴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가는 만큼 그 충격도 기억과 함께 스러져가야 할 것입니다. 그걸 '시간의 파괴성'이라고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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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즈바야시 아키라, 이재룡 옮김 『멜로디 : 사랑의 연대기』현대문학, 2016, 213~214.
2. '선생님 몸 안에 있는 그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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