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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블로그 글쓰기

by 답설재 2017. 1. 30.

                                                                                               그리운 "도깨비"

 

 

 

1

 

설 연휴 나흘째입니다. 어제는 글을 하나 올려볼까 싶었는데 다른 이들이 조용해서 그만두었습니다.

'친구 맺기'를 하자고 해놓고 정작 찾아오지는 않는 두엇―'잘난 체하지 말고 내 블로그 좀 보라'는 의미로 친구 신청을 한 것이겠지요? "결코!" 잘난 건 아니지만 굳이 그런 블로그 찾아가고 싶지도 않은 '두엇'(!)―을 빼놓고는 아무도 새 글을 싣지 않는 설 연휴에 나 혼자 글을 싣는 것이 좀 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들 몇십 명이 최근 몇 달간 대부분 조용한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심기일전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활동을 그만두었다고 봐야 할 블로거가 더 많습니다.

 

 

2

 

블로그 글쓰기는 참 편안한 일입니다.

누가 어떤 주제로 쓰라고 부탁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글의 내용이나 소재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글의 길이도 자유자재입니다. 길게 쓰고 싶으면 길게 쓰고 짧게 쓰고 싶으면 짧게 쓰고, 아예 그걸 정하지 않고, 그런 의식조차 없이 써지는 대로 써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글을 오늘 중으로 써서 당신의 블로그에 싣도록 하라"는 기한조차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 블로그의 글들은 작가도 나, 편집자도 나, 출판업자도 나, 최고의 애독자도 나,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평론가도 나입니다.

 

유념해야 할 것을 찾으라면, 나름대로 정해서 1주일 혹은 한 달에 몇 차례 정도 글을 써서 싣는다는 처음의 그 다짐 같은 걸 어기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그 다짐 자체가 무너지기 쉽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잊을 뻔했습니다. 아무리 써봐야 원고료(혹은 인세)가 없는 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할 텐데, 십여 년 전에 앞으로 필요할 거라며 "무조건" 이 블로그를 만들어준 그 여 선생님께 "블로거가 뭡니까?" 하고 물었더니 "글쎄요, 일기 같은 건지……." 했었거든요? 책으로 출판되지 않는 일기에 원고료를 줄 데는 없지 않습니까? 또 "일기를 쓰는 건 좋은 일"이라고 해서 끝까지 쓸 사람이 드문 것도 사실입니다.

 

 

3

 

대다수 작가들은 창작 수명이 짧다. 그들은 찬사를 들으면 그걸 믿어버린다. 글쓰기의 최종 심판관은 딱 한 명, 작가 자신밖에 없다. 작가는 평론가, 편집자, 출판업자, 독자에게 휘둘리는 날엔 끝장이다.1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글에 의해서 이야기한다면 "대다수 블로그들은 그 수명이 짧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런 블로그들은 결국 그 블로그들의 딱 한 명의 심판관인 블로거 자신에게 휘둘리게 됨으로써 끝장을 보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글의 주제, 내용이나 소재, 길이, 기한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원고 청탁을 받아본 경우라면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자재'를 소홀히 취급하는 날에는 저 인용문에 나타난 것처럼 단 한 명의 가장 권위 있는 독자, 그 블로그를 가장 사랑하는 독자에게 휘둘려서 "끝장"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제 블로그의 '친구'들이 조용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안타깝고, 그런 생각을 하면 '이러다가 이 세상에서 블로그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싶은 위기감을 느끼면서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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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모멘트, 2015,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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