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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우체통

by 답설재 2016. 12. 20.






우체통









  언제까지라도 그대로 남아 있어 주었으면 싶은 것들 중에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공연한 짓이기도 하고 자칫하면 쓸쓸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것들도 그렇습니다. 쓸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 우체통만 해도 사라지고 나면 어떨지 몰라도 저게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벌써 쓸쓸해집니다.

  남아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해서 요즘 누가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가 했는데 언젠가 전문적인 설명을 들어봤더니 남겨둘 만한 이유가 있기는 했습니다. 성급하게, 그 설명이 계속되는 중인데도 '다행이구나!' 싶어 하느라고 설명을 제대로 듣지도 못했습니다. 나중에 그 생각이 나서 반성삼아 마음을 달랬습니다. '괜찮아. 하필 나한테 물어보고 정답을 말하지 못한다고 우체통들을 모조리 없애기야 할까……'


  우체통이 저렇게 보이는 것만 해도 따스해지는 사람은 그 이유가 고맙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저 우체통을 찾을 일이 없을 것 같은데도, 그래서 염치없어 하면서도, 바라볼 때마다 저렇게 좀 남아 있어 주었으면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어느 FM 방송 시그널 음악들도 그렇습니다. 그중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진 않지만 그 음악을 들은 지가 오래되어 마음에 들지 않은 채로 정이 든 것도 있기 때문에 지금 그대로 그냥 두었으면 싶어 하는 것입니다.

  혹 아주 힘들거나 어려운 마지막에도 다행히 라디오 방송만은 들을 수 있다면, 그런 시그널 음악들이 참 좋고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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