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조언과 동정

by 답설재 2016. 11. 17.






조언과 동정









   1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죽음에 관해 얘기한 후, 내 친구 R은 경찰에게 산탄총을 압수당했고1 나는 여러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 편지들에는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믿음에 나 자신을 열어 보이고 교회에 가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등등을 통해 두려움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조언이 담겨 있었다. 피스타치오가 담긴 신학이라는 그릇,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딱히 가르치려 든 건 아니었지만(감정을 주체 못 하는 사람들도, 또 근엄한 사람들도 있었다), 내심 자신들이 제시한 해법이 내겐 듣도 보도 못한 것일 거라고 암시하는 양 다가왔다. 내가 열대우림의 부족민이기라도 하다는 듯.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내 부족 나름의 전통 제식과 신념 체계가 있었으리라.)


  죽음을 재미있게 이야기한, 정말로 재미있는 책에서 본 글입니다.2



   2


  줄리언 번스의 저 글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좀 있습니다.


  이명(耳鳴)이 심하다는 글을 썼을 때 그건 쉽게 고칠 수 있고, 다 마음이 문제인데 당신은 그 마음에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며 다가온, 동남아 어느 나라의 한국인 '심령술사'.

  이명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또 썼더니 안쓰럽고 안타깝다면서 "그냥두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들, 아예 좀 만나자고 한 사람, 강남의 누구를 찾아가보라고 한 사람.

  '이것 봐라' 싶어서 다시 한 번 더 썼더니 자신이 한의학을 제법 안다는 걸 암시하면서 내게 그 이명을 "친구처럼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라"고 처방해준 한의사까지 아예 '사이비' 취급한 사람…….


  이런 저런 복잡한 심사를 쓴 글(심사가 복잡하지 않은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어린애라 하더라도)을 보고 믿음을 가지라고, 그러지 말고 차라리 좀 만나자고, 좋은 수가 있다고 한 전도사, 그리고 그 어여쁜 얼굴 그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두루 다정다감한 것이 분명한 아주머니…….


  기이한 것은 나를 이 구렁텅이에서 꺼내고 싶어한 그분들은, 그 전도사와 다정한 아주머니만 하더라도 공통적으로 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이 블로그의 '친구'3 명단에는 남아 있지만 이제 좀처럼 찾아오진 않습니다. 싸우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싸웠기 때문입니다.



   3


  사실은 그들과 '헤어진' 걸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하필 그 어여쁜 전도사와 아주머니를 떠올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예쁘면 뭐 하겠습니까?


  '파스칼의 내기'를 생각해서 후회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이 정말로 나를 구원해주면 다행이고 신이 없다 해도 밑져봤자 본전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나를 구원해 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약아빠진 내기는 싫습니다.


  그냥 좋다고 그러는 사람들에게 괜히 그랬다 싶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 나이에 싸우다시피 하고 실제로 싸워서 멀어지다니……. 그냥 모른 척하고 참고 있으면 저절로 기세가 꺾였을 텐데……


  그렇지만 당시에는 매번 '정말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아, 이런 인간이 또 나타났네!' 싶었습니다.

  줄리언 번스의 표현대로라면 내가 "열대우림의 부족민"이라 해도 나에게는 "내 부족 나름의 전통 제식과 신념 체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해서 자신의 신을 나에게 강요하는 그런 도도한 자세를 갖게 되었는지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4


  그들은 "사람은 죽어서 화장장으로 나가기 전에는 죽는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나의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니고(그러므로 나의 생각, 나의 생명도 나의 것이 아니고), "믿음을 가지면" 그까짓 지병은 문제도 아니어서 자신과 함께 행복하게, 영원히 살아갈 수 있으므로 내가 먼저 죽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식이었습니다(가만 있어 봐봐. 지금 내가 무슨 얘길 하는 거지?').

  그때 나는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생각 좀 해보십시오. 지금 나는 '생물학적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죽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 쇼스타코비치가 그랬답니다.4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습관화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예기치 못한 때에 엄습해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에 친해져야 하며, 그 한 가지 방법은 글로 쓰는 것이다. 난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하는 게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좀 더 빨리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어리석은 실수를 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다."



  5


  이러다가 내가 죽으면 그들은 당장 "그 봐!" 할 것 같아서 끔찍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죽지 않을 것도 아니고, 내가 죽은 후에 '아하, 재수가 없어서 굴러온 복을 걷어찼구나! 결국은 죽었구나!' 하고 동정을 하지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언이나 동정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야…….


  두어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키도 작고 얼굴도 보잘 것 없고 게다가 '의느님들'의 기술이 이렇게 발달한 나라에서 얼굴의 저승꽃을 그대로 둔, 그것도 칠십 대의 나에게 왜 그렇게 성화를 대느냐는 것인데,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한때 유행어 그대로 "나 장동건이야!" 할 수 있는 사내라면 상대방도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것 봐라? 이런 주제라면 이쪽에서 하자는 대로 나긋나긋 따라오겠지?' 그렇게 여기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쨌든 이제 싸우고 어떻게 하고 그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겠다는 이유야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굳이 한 마디만 하면, 그런 이들의 그 근성을 내가 간섭하고 고쳐주려고 하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고(그들은 오히려 내가 깨닫게 해주어야 하는데 워낙 성질이 지랄 같아서 펄펄 뛰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게다가 그런 사람은 끊임없이 나타날 텐데 그걸 무슨 수로 감당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1. R은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줄리언 번스에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미친 놈인 건 마찬가지이고 언제나 '당장 저질러' 유형이어서 가령 입에 권총을 집어넣는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를 전해들은 템스 벨리 경찰이 와서 12구경 산탄총을 압수해 갔다는 것이었다(아래 주 2에서 소개하는 책 46쪽). [본문으로]
  2. 줄리언 반스 Julian Barnes『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NOTHING TO BE FRIGHTENED OF』다산책방, 2016, 51. [본문으로]
  3. 지병으로 곧 죽지 싶어서 친구 신청은 단 한 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곧 죽지 싶은 사람이 무슨 친구를 새로 만들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쪽에서 친구를 하자고 신청해오는 건 웬만하면(사업상 친구맺기도 아니고 자신의 블로그에서도 제법 여러 편의 글을 보여주고 있어서 어떤 사람인지 알 수만 있다면) 거의 다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곧 죽을 사람'이라는 걸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거절하는 것은 웃기지 않겠습니까? 이쪽에서 먼저 이 못된 성질을 그대로 나타내어 절교 선언을 하는 일도 하지 않얐습니다. 저쪽에서 친구 신청을 해놓고 저쪽에서 먼저 슬며시 절교선언(친구 끊어버리기)하는 꼴은 한 번 봤습니다. [본문으로]
  4. 위의 책 50쪽. [본문으로]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태어나거든……"  (0) 2016.11.26
길가에 서서  (0) 2016.11.22
돌아가는 길에 만난 아내  (0) 2016.11.10
개에게 책 읽어주는 남자  (0) 2016.11.06
감국화(甘菊花)  (0) 2016.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