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1162 그 떡집 모처럼 만날 사람에게 들고 갈 만한 것을 생각하며 걸어가다가 그 떡집을 발견했습니다. 자주 다니는 길인데 그 떡집을 처음 봤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이게 웬 떡인가!' ^^ 그 떡집 아주머니에게 이것저것 내가 먹고 싶은 종류를 가리키며 즐거웠습니다. 돈도 몇 푼 들지 않고 마치 책을 고를 때처럼 사치를 부린 것입니다. 선물용 스티로폼 박스가 좀 작았습니다. 계산해 달라고 했더니 연분홍 보자기에 싸고 네 귀를 맞추어 잡아매었습니다. 이제 끝났는가 싶었는데 잡아맨 것이 꽃처럼 보이도록 매만졌습니다. 재바르고 정성스럽게 매만지는 그 아주머니의 손놀림을 바라보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떡 보자기를 받아 든 사람이 "뭘 이런 걸 다 가져오셨느냐?"고 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만든 맛있는 떡이라는데 내 마음대로, 내가.. 2016. 8. 2. 입술 곱게 칠한 것들 엄마에게 안긴 아기 볼 때마다 키가 더 자란 중1 남학생, 유명해지기 전에 미리 사인 하나 좀 부탁한다고 했더니 그 직종과 자신의 적성을 신나게 해설하는 녀석 입술을 너무 빨갛게 칠해서 아무래도 어색하지만 밉지는 않은 중1 여학생 (그 아이가 내 마음에 드는 화장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대학 미술실에서 본 수채화 속 노을 한 번밖에 읽지 못한, 영영 찾지 못할 그 시詩 쓸 곳이 생각나지 않는 주머니 속의 돈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블루 라벨의 술 한 병 읽지 못한, 책장 속의 소설 그 커피숍 빈자리 먼 산마루의 아침 안개 열차가 강변을 달릴 때 멀어져 간 구름 젊은 날들 나를 만나기 전 아내의 일들 나이가 이렇게 들기 전의 그날들 내 기억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들 ………… 2016. 7. 28. "화장실파" "화장실파派" Ⅰ 누가 술집 화장실에서 종업원과 성 관계를 가졌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뉴스는 민망했습니다. 그만 좀 하고 나중에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왜 그랬는지" 알려주고 "모두들 조심하라"고 해도 좋을 것 같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하나도 궁금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 .. 2016. 7. 17. 2016년 7월! 7월! 2016년 7월……. 또 한 해의 가을, 겨울이 오고 있다. 「4계」1열두 곡을 단숨에 듣는 것 같다. '휙!' '휙!' 지나가버린다. 심각한 일이지만 몸도 마음도 모른 체한다. 태연하다. 더는 매일 밤 〈뉴스아워〉를 시청하지 않을 것이다. 더는 정치나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논쟁에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초연이다. 나는 중동 문제, 지구온난화, 증대하는 불평등에 여전히 관심이 깊지만, 이런 것은 이제 내 몫이 아니다. 이런 것은 미래에 속한 일이다. 올리버 색스는 죽음 가까이 가서 이렇게 썼다.2 앨빈 토플러도 저승으로 갔다.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 .. 2016. 6. 30. 한 영혼을 만나기 위한 준비 Ⅰ 극락이나 천당, 지옥 같은 게 있다는 말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어쩌면 모두들 악착 같이 살면 다 피곤해지니까 마음이 약한 혹은 순한 사람이라도 좀 느슨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어낸, 확인할 길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더러 저승 생각을 하며 지냅니다. 죽은 후에도 영혼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고,1 실제로도 있을 것 같고, 반갑든 아니든 가서 만나야 할 영혼이 있을 것 같고, 어떤 영혼은 내가 도착하면 한번 따져보고 싶은 게 있다며 수십 년을 벼르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그때 왜 그렇게 박대(薄待)했니?" 아, 이런! 만나자마자 그렇게 나올 것 같은 영혼은 하필 그 누렁이의 영혼입니다. Ⅱ 늦게 취학하여 읍내 중학교에 들어갔을 땐 '이.. 2016. 6. 19. 아파트 주차장 Ⅰ 그곳은 늘 좋은 곳이었다. 그 느낌이 절실한 건 저녁에 들어올 때였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까?' '누구를 만나고 어떤 연락을 받게 될까?' 아침의 그 기대감 옆으로는 해야 할 일이나 그런 만남에 대한 불안감이 어른거리기 일쑤였다. Ⅱ 저녁에 들어올 때는 그런 부담감, 불안감이 기대감과 함께 해소되어서인지 차를 세운 다음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는 그 잠깐이 정말 좋았다. 적막감이 일렁이는 그곳에 도착하면 '돌아왔구나…….' 싶은 안도감과 함께 나른한 몸을 감싸는 아늑함,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움 같은 것들이 와르르 다가오곤 했다. 그런 분위기로 반겨주는 것 같아서 고맙고, 듣던 음악을 마음 놓고 다 듣거나 잠시 눈을 감고 앉아 있게 되는 그 여유도 고마운 것이었다. Ⅲ 이사를 해서 주차장.. 2016. 6. 6. 장미 장 미 꽃을 가꾸는 건 좋은 일이고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 봄 기억하고 싶은 순간, 기억하고 싶은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 순간, 그런 날들은 시간을 따라 가차 없이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 여름 그러던 어느 날, 장미 두어 송이가 보였고, 그건 기억하고 싶어 하게 된 그 시간에도 거기에 .. 2016. 6. 3. 언덕 위의 집 '어떤 가족이 살고 있을까?' 이것이 향수(鄕愁)라면 이런 향수를 느끼게 하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6. 5. 27. 창가의 대화 창가의 대화 2016.5.20. 사람들은 저 곳으로 한두 가지 화면과 단어들을 갖고 옵니다. 그것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선물입니다. 그렇게 와서 오래 머물기도 하고 이내 돌아가기도 합니다. 잊을 수 없는 한두 마디를 떠올려줄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 그들과 만나고 있는 줄을 모.. 2016. 5. 21. 역에서 역에서 Ⅰ 언제 어떻게 해서 이 산마루 고갯길에 와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걸 왜 들고 있었나 싶은 자루가 나도 모르게 땅에 떨어졌고, 순간 그 속의 가루가 죄다 쏟아져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산산이 날아가버렸습니다. 바람이 불었을 것입니다. 그만 내려가야 합니다. 세월이 갔기 .. 2016. 5. 17. 의문(疑問) 그는, 사막에서 눈을 하늘에 둔 채 꼼짝 않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몇 년 간을 똑바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신(神)들은 그의 지혜와 돌 같은 숙명을 질투했다. 내밀어진 그의 두 손에다 제비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어느 날, 먼 나라들의 부름에 답하여 제비들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욕망과 의지와 명예와 고뇌를 눌러 왔던 그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바위 위에서 꽃이 피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다. 돌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돌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우리가 여러 얼굴들에게서 구하는 그 비밀스러움과 그 광희는 또한 돌에 의해서도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영속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영속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얼굴들의 비밀스러움은 시들어 사라지고, 우리.. 2016. 5. 14. 오늘 오 늘 역에 나와서 괜히 망설였습니다. 저 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 '아니, 내가 왜 이러지?' 창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책이나 읽으며 왔습니다. 좀 제대로 읽었습니다. 들뜨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2016. 5. 12. 이전 1 ··· 59 60 61 62 63 64 65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