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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장미

by 답설재 2016. 6. 3.






장 미






꽃을 가꾸는 건 좋은 일이고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 봄


  기억하고 싶은 순간, 기억하고 싶은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 순간, 그런 날들은 시간을 따라 가차 없이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 여름


  그러던 어느 날, 장미 두어 송이가 보였고,

  그건 기억하고 싶어 하게 된 그 시간에도 거기에 있었고

  그게 여태 남아 있어

  그 기억들을 되살려주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제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 가을


  그 두어 송이는 가을에도 남아 있어서

  그게 그렇게 있어주는 동안에는 많이 쓸쓸하지는 않았습니다.



  # 겨울


  마침내 겨울이 왔고……

  헤아릴 수 없는 겨울들이 메모해 둘 겨를도 없이 지나가는 동안

  한두 송이 장미는 기억이 되어

  시들지도 않고 피어 있었습니다.



  # 장미네 집


  세월은 그렇게 가는 것 같다고,

  그걸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기찻길 옆 '장미네 집' 누군가가 꽃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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