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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파트 주차장

by 답설재 2016. 6. 6.

 

 

 

 

 

 

 

  그곳은 늘 좋은 곳이었다. 그 느낌이 절실한 건 저녁에 들어올 때였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까?'

  '누구를 만나고 어떤 연락을 받게 될까?'

  아침의 그 기대감 옆으로는 해야 할 일이나 그런 만남에 대한 불안감이 어른거리기 일쑤였다.

 

 

 

 

  저녁에 들어올 때는 그런 부담감, 불안감이 기대감과 함께 해소되어서인지 차를 세운 다음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는 그 잠깐이 정말 좋았다.

  적막감이 일렁이는 그곳에 도착하면 '돌아왔구나…….' 싶은 안도감과 함께 나른한 몸을 감싸는 아늑함,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움 같은 것들이 와르르 다가오곤 했다.

 

  그런 분위기로 반겨주는 것 같아서 고맙고, 듣던 음악을 마음 놓고 다 듣거나 잠시 눈을 감고 앉아 있게 되는 그 여유도 고마운 것이었다.

 

 

 

 

  이사를 해서 주차장이 바뀌어도 그 특유의 분위기에 뚜렷한 차이가 없는 건 좀 기이하지만, 직장이 바뀌어서 그곳에서 마지막 퇴근을 한 날, 유달리 조용한 주차장에 이르러 그 섭섭함이 폭발하던 느낌은 세월이 가도 그대로 남아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아, 이렇게 해서…… 마침내 나는 돌아왔구나…….'

 

  그러니까, 그렇게 드나들었으니, 4개 시·도의 여러 학교, 어느 교육지원청, 교육부 등을 전전한 41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날의 아파트 주차장이 어떤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을지 살펴봤을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굳이 누구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 되었다.

  다만 그날 저녁 나는 눈물을 찔끔거리거나 하지는 않았고, 늘 그렇게 하여 의식(儀式)처럼 익숙하게 된 생각을 되풀이하면서 거기에 무언가를 덧붙이긴 했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 그곳이 내게는 특별할 수밖에 없고, 이젠 그곳을 함께 드나드는 내 자동차가 나를 위한 마지막 '당번(當番)'처럼 남아 있는데 자동차 정비소 기사는 더러 놀라운 말을 하게 되었다.

  "이 차를 더 타시려면 꼭 바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해서 "이 차를 더 타시려면"이라는 전제(前提)의 의미를 한참만에 파악했고―그럴 수밖에. 지금은 주말에 겨우 한두 번만 차를 타고 있으니까 탈도 덜 나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나 뇌, 치아, 눈, 뼈와 관절, 피부… 몸의 일부가 고장 났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처럼―'어디 아직 꽤 쓸 만한 곳이 남아 있기나 할까?'―놀라움과 섭섭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공직(公職)에 있을 때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기도 한다. 인사를 해야 할 대상이 두 가지가 된 것이다.

 

  덧붙이면 내 자동차는 드디어 보험회사 추정 시가(時價)가 500만 원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나의 추정가는 얼마일까?'― 이곳 저곳 탈이 나는 곳이 늘어나서 우리가 끝내 그만 헤어져야만 한다면 드디어 내 곁에는 마치 '덜렁' 주차장만 남을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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