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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화장실파"

by 답설재 2016. 7. 17.






"화장실파"












  누가 술집 화장실에서 종업원과 성 관계를 가졌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뉴스는 민망했습니다. 그만 좀 하고 나중에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왜 그랬는지" 알려주고 "모두들 조심하라"고 해도 좋을 것 같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하나도 궁금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 몇 날 며칠 그것도 여러 명이 수십 분씩 노닥거립니다.


  또 그 얘기를 하는 걸 보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화장실파가 한 명 있는데……."

  '아! 이런…….'

  우리 집? 그래 봤자 달랑 두 명뿐이니까 당연히 내 이야기죠.

  '나 참 기가 막혀서…….'





  화장실에서는 늘 오래 걸립니다.

  그곳에서는 분절(分節)이 분명한 책들을 골라서 보긴 하지만, 매번 볼일과 함께 딱딱 떨어지게 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분을 좀 일찍 읽게 되면 나머지 시간이 아까워서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게 되므로 그런 날은 오래 걸리게 됩니다. 양이 좀 긴 부분을 읽을 경우에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볼일이 먼저 끝나겠지만 그렇다고 벌떡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나머지 부분을 다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펴보면 이미 읽은 내용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서 연결을 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며 맥을 놓고 앉아 있다가 나와보면 아내는 이미 외출을 하고 거실만 혼자 휑뎅그렁하게 남아 있습니다.





  일전에 어느 한적한 식당 화장실에서 내다본 풍경입니다. 저 창(窓)에 감탄했는데, 딱 한 명씩만 서 있을 수 있어 마음이 분주했고 그게 아쉬웠습니다.


  저런 경치를 내다볼 수 있는 화장실이라면, 서약서까지 쓰진 않겠지만 일단 나도 책을 읽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늘 누군가 그리워지는 봄, 이 여름, 잎에 물이 드는 가을, 눈 내리고 바람 부는 겨울……

  책보다는 저 밖이 더 좋다고 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내가 저 식당 주인(사장 혹은 회장)이라면 화장실 환경을 저 경치 감상에 적합하도록 가꾸는 일을 최우선으로, 강력하게 추진하겠습니다. 소변기, 양변기를 여럿 마련해서 책보다 경치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욱 들어앉아 있도록 해주겠습니다.

  그러면 너무 오래 볼일을 보는 '화장실파'가 늘어납니까?

  앙증맞은 액자 아래에 이렇게 써붙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소변까지 그리 오래 봅니까! 10분 제한 준수 철저!"







그 식당의 다른 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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