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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건너편의 빈자리

by 답설재 2016. 8. 18.






건너편의 빈자리










  



  점심시간이 되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할 이른 시각의 식당가, 좀 뻔뻔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더니 저렇게 이번에는 건너편 자리에 와서 앉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쁘게 지내는 사람들과 모처럼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사무실에 들렸다가 나가기는 어중간하고, 그렇다고 집에서 바로 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어정쩡한 시각의 전철을 타고 약속한 역에 내렸더니, 새로 생긴 역이라고 해도 그렇지, 찻집 하나 없는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아침나절이고 뭐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걸음을 옮길 만한 곳은 길 건너 마트뿐이었습니다. 거기로 들어갔더니 커피를 파는 곳이 있긴 했는데 이번에는 마땅한 좌석도 없는 매장이었습니다.

  커피는 물론이고 좌석도 있는 커피숍이 좋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뜨거워서 자칫하면 뒤집어엎을 뻔한 커피를 들고 식당가로 올라갔습니다.


  저쪽 귀퉁이에서 일찌감치 김밥을 먹는 '외로운' 아주머니 한 명, 조용조용 묻고 답하기를 하는, '외롭지는 않은' 아주머니 두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음식을 사 먹지도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여 실례를 하는 입장에서는 구석진 자리에 앉는 것이 마음이 편하긴 하겠지만 힘들여 정리 정돈하는 종업원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구석진 자리에 앉는 사람이 오히려 더 밉지 않을까 싶어서 어정쩡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책을 펼쳤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인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처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앉아 있으면 곧 만나기로 한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었지, 그런 곳에서 그렇게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혼자 앉아 있었던 적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건너편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고, 창문 너머로 분주히 오가는 자동차의 행렬도 낯설었습니다.

  퇴임하자마자 바로 사무실에 나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일흔이 넘었지만, 내일이라도 책이나 한 권 들고나가 그런 곳을 찾아다니게 될 수도 있는 일인데 이건 예삿일이 아니구나 싶었고, 그러자 세상은 돌연 낯선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노인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그런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스스로에게 그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하며 그 시간을 애써 견뎠습니다.

  자칫하면(잘하면) 오랫동안 이렇게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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