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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변명(辨明)

by 답설재 2016. 9. 4.






변명(辨明)











  # 1


  열차가 지나가는 동안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입니다.

  지붕으로 올라간 것은 호박 덩굴입니다. 호박꽃도 보였습니다.

  누가 "더 멋있는 꽃을 심지 않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내가 나서서 그렇지 않다는 걸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저 지붕에는 저 호박꽃이 낫다는 걸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득이 되지 않으면(가령 그대가 줄장미나 능소화가 낫다고 하면), 어디 그런 꽃이 어울릴 만한 다른 집을 찾아보라고 하고 싶은 것입니다.



  # 2


  사람들을 더러 만납니다.

  특별한 일 없이 밥이나 먹게 되고, '대체로' 이쪽에서 사게 됩니다.

  식사란 것은, 좀 난처한 얘기지만, '대체로' 아쉬운 쪽에서 사는 것이고(나로서는 '대체로' 우리의 그 인연이 고마워서 내가 사는 것이지만 당연히 아쉬운 사람이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입니다), 지금은 아무런 권한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은 나에게 그들이 아쉬워 할 것은 전혀 없으므로 (우리의 그 인연을 그쪽보다 '더' 혹은 '혼자' 고마워 하는) 이쪽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사무실 근처 전철역으로 오기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1

  그가 그곳으로 오면 25,000원짜리 점심을 사야 합니다.

  그게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서 무슨 핑계를 대어 약속 장소를 바꾸자는 연락을 했고, 사무실에서 좀 더 떨어진 저쪽 전철역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 전철역 근처의 15,000원짜리 식사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3년만에 만나면서 내가 평소에 먹는 6,000원짜리 한식부페도 괜찮겠는지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더러 그걸로 대접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더러는 '이르려면 뭐 하려고 불렀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음식물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 이하로 하자는 법 취지를 두고 식사는 50,000원은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다들 듣고 있을텐데 나는 그게 딴 세상 얘기 같습니다. 이건 다만 밥값 얘기입니다.

  미안합니다. 여기 저기 다 미안합니다.







  1. 그의 재주에 어울리는 일을 소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오지랖이 좀 넓은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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