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정원의 빗질 자국

by 답설재 2017. 2. 27.

그는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뒷모습이 정물화처럼 고요했다. 내가 발코니로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이것 좀 봐."
웬걸, 그가 보고 있던 것은 바다가 아니라 탁자 위 재떨이였다. 누구의 솜씨일까. 재떨이를 가득 채운 모래 표면에 앙증맞은 조개 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어서 그 위에 재를 떨려면 약간의 뻔뻔함이 필요할 것 같았다.

 

 

 

2015 . 10 . 5 .

 

 

 

 

단편소설 「2월 29일」(김미월 단편소설 『현대문학』 2017년 1월호, 50~70쪽 중 59쪽)을 읽다가 일본 어느 절 정원에서 본 빗질 자국이 떠올랐습니다.

'빗질 자국'?

'손질 자국'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제작(!)한 빗질 자국(혹은 손질 자국)이었습니다.

 

싸리비로 쓸어놓은 마당은, 그때는 그게 아름다움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습은 어렴풋한 기억의 갈피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 '자국'은 그 빗질에 대한 향수의 흔적……

그 흔적을 보여주려고 한 것……

그 아름다움을 설명한 것……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라는 걸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바란 것, 바라는 것(2017년 3월 6일)  (0) 2017.03.06
2017년 2월 27일  (0) 2017.03.02
준서 할머님의 이 답글……  (0) 2017.02.23
그대와 나  (0) 2017.02.19
내가 사는 곳  (0) 2017.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