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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준서 할머님의 이 답글……

by 답설재 2017. 2. 23.

 

 

 

 

 

긴 댓글은 대체로 부담스럽습니다. 그걸 단번에 읽고 뜻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아무리 한가한 신세라 해도 댓글을 읽고 또 읽는 게 좀 그렇지 않은가 싶어서―웬만하면 그 댓글 길이 정도의 답글은 써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을 무겁게 해서입니다.

 

그렇지만 긴 답글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매번 긴 답변을 기대하거나 매번 긴 답글을 보게 되는 것도 난처한 일이긴 하지만…….

이 인간은 이렇게도 이렇습니다.

 

'비공개' 댓글도 부담스럽습니다. 여러 번 어려움을 겪었고, 비공개 댓글로 찾아온 분 하고는 아직 단 한 번도 성공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서인지 누가 '비공개' 댓글을 남긴 걸 발견하는 순간 심지어 '또 걸려든 걸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이걸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오늘 보여주신 이 글이 최고라고 하면 어떠시겠습니까?
중간쯤 내려오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가" 문체 같다는 생각을 했고, 계절로는 봄을 맞이하고 인생으로서는 가을을 맞이한 한 여성의 아름다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느낌이 짙어서 그 작가의 문체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좋은 글을 보여주시는구나 싶은데,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을 주제넘다 하시면 어떻게 할까 걱정도 됩니다.
선생 출신이라 어쩔 수 없구나 하시면 좋겠습니다.

칠십을 훌쩍 넘겨버리니 봄여름가을겨울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색다릅니다.
제가 이런 감상을 가져서 어떻게 떠날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이것은 제 댓글이고, 아래는 답글이었습니다.

 

 

파란편지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생각하면, 만날 수 있었다면 학부형 관계였을 텐데도, 선생님께서 어떤 심중으로 교육에 대해 생각하는지 알기에 제 맘 속에는 저가 선생님께 공부를 배운 학생 같은 맘입니다.
"잘 했구나"란 한마디 칭찬이 아니고, 저가 은연중 느끼라고 해 주시는 글이라 참으로 감사한 맘입니다.
격려라 생각합니다. 격려란 것은 잘 해서가 아니고, 잘 해보라는 것이지요.

 

'계절로는 봄을 맞이하고 인생으로는 가을을 맞이한' 한 줄 말씀에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 시어머님, 에미야, 안 죽어 탈이다, 내가 몇 년을 살아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밤 되면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 다시 아침 먹고 경로당 가서 놀다가 다시 집으로 와 저녁 먹고 또 밤에 자고.... 하시는데, 저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뭔가 하루하루가 새로워지는 의식으로 살아갈 방편이 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색다른 것은 하늘이 주신 축복이라 싶습니다. 될 수만 있다면 하루하루가 색다름을 느끼시면서 가시는 날까지도 그리했으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저는 힘이 들긴 해도 옥상의 식물을 가꾸는 것의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합창이라도 각각의 개성이 다르고 그 전체 생기가 하루하루 달라서입니다.
밑천 딸린다는 어찌 보면 천박하게 보이는 쪽의 말을 또 어찌 보면 실상을 꾸밈없이 하는 것 같다 싶습니다.
염기 없는 음식물 찌꺼기를 흙에 묻고, 깻묵을 발효시킨 해는 방울토마토, 풋고추 열매가 반짝입니다. 판매하는 퇴비나 퇴비에 준하는 거름을 사서 주면 얼마간은 거름 효과가 있어도 그 효과가 얼마 가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밑천이 딸려서 그런 것이지요.

파란편지 선생님의 하루하루가 색다름은 그야말로 평생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교육부에서 전문적인 일을 해 오신 것의 퍼내고 퍼내어도 딸리지 않는 것에 기인된 것인데, 저는 너무도 좋은 것이라 봅니다.
살다 보면 우리들이 살아 이 세상을 즐길 수 있었다면 다음 생으로 이주하는 것도 흥미로울 수도 있다 싶습니다.

 

 

                                                                             원문 바로가기 ☞ http://blog.daum.net/asweetbasil/17950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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