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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미소

by 답설재 2017. 3. 16.






미 소









  정치인들은 "당신은 나쁜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사람 앞에서도 어정쩡한 혹은 평상시 그대로의 미소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일까요?


  그런 어마어마한(혹은 뻔뻔한, 가식적인, 훈련된, 무의식적인……) 미소는 아니지만, 나도 여러 번 그런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정치인이 아닌 나의 그 미소는 아마도 대부분 비굴한 미소였을 것입니다.


  《인간의 그늘에서 : 제인 구달의 침팬지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그 '미소들'을 생각했습니다.



  서열이 높은 침팬지들에게 유난스럽게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침팬지들이 있다. 멜리사가 그중 하나이다. 멜리사는 어른 수컷이 그녀 근처를 지나칠 때면 항상 달려가 그의 등이나 머리에 손을 얹곤 했는데, 특히 어렸을 때는 더 그랬다. 만약 그 침팬지가 그녀 쪽으로 돌아보기라도 하면 입술을 집어넣어 복종의 표정까지 지어 보이곤 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아첨하는 다른 침팬지들 모두가 그렇겠지만, 멜리사는 단순히 서열이 높은 개체가 곁에 있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신체 접촉을 시도함으로써 위안을 삼으려고 하는 것 같다. 만약 영향력이 센 침팬지가 보답으로 그녀를 만져주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우리 주변에는 〈인간 멜리사〉도 많다. 이들은 특정인에게 유달리 친절하게 굴며 아주 자주 친절하게 미소를 보낸다. 대체로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미소는 무슨 의미인가? 인간의 미소가 어떻게 진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미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이들은 오래전에 같은 표정에서부터 유래되었음이 확실하다. 우리는 즐거울 때 웃지만, 약간 긴장되고 초조할 때에도 미소를 짓는다. 어떤 사람들은 인터뷰할 때 긴장되면 무슨 말을 듣던 간에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웃음은 아마도 침팬지가 복종의 뜻을 나타낼 때 혹은 놀랐을 때 이를 드러낸 표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371~373)1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대중이나 카메라 앞에서 짓는 미소를 연습해두고 의례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어떤 프로그램이 입력된 로봇처럼……. 그 어떤 경우에도!


  세월에 따라 쓸쓸해지는 건 그런 정치인이나 나나 다 마찬가지지면, 나의 삶도 비굴한 미소 말고 대중에게 그런 미소를 지으며 지낸, 잠깐이라도 그렇게 지낼 수 있었던, 말하자면 더 화려했더라면 훨씬 좋았을까? 이렇게 쓸쓸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며 지냅니다.








  1. 사진은 이 책 37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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