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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82

‘오리아빠’와 풍물패 ‘노름마치’ 오리아빠는 오남 친구입니다. 생각납니까? 학교신문『양지소식』39호(2008년 가을) 표지사진. 운동회 날 2학년 남자애들이 점심시간을 알리는 바구니를 터뜨리고 한 꼴 넣은 우리 축구선수들처럼 두 팔을 높이 쳐들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모습. 그게 오리아빠 작품입니다. 오리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멀쩡한 아들을 두고 ‘오리아빠’란 닉네임을 쓰고 있고 -하기야 그 오리장사가 ‘아들농사’에 직결되니까 그게 그거일 것 같기는 합니다. 그 아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 그의 블로그 이름도 ‘오리아빠의 사진이야기’입니다. 사진 수준은 전문성 문제니까 알 바 아니지만, 그 블로그를 들여다보면 철철 열정이 넘칩니다. 그러다보니 허구한 날 오리 팔 생각을 접고 카메라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외국에까지 나가 돌아.. 2009. 6. 7.
스승의 날 Ⅱ (살아 있을 때라도 사랑해주자) "여보! 이제는 기나긴 34일보다 더 힘들지도 모를 이별 연습을 해야겠지? …(중략)… 아버님 묘소가 있는 고령군 기산면 선산으로 갈 생각이야. 전동차 안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두개골과 한 줌의 뼈 조각밖에 남지 않아 집안 어른들이 화장을 권유했지만 당신에게 같은 아픔을 두 번 겪게 할 수는 없잖아."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장례식에 즈음하여, 한 남성이 애끓는 심정을 나타낸 독백의 일부이다.1 지하철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그저 '대구에서는 또 지하철 사고가 났구나.' 체념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그러다가 수많은 사람이 불에 타죽은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는 것을 보면서 '아, 이건 전쟁에 못지않은 참사구나' 하였고, 그들이 죽음을 앞둔 순간에 핸드폰으로 사랑하는 가.. 2009. 5. 15.
스승의 날 1 (훈화) 스승의 날입니다. 무슨 위원회인가 하는 곳에서 우리 교사들의 자동차 트렁크 좀 보자고 오는 거나 아닌가 싶기도 했고, 다른 어떤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교장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며칠 전, 호기롭게, 이 골짜기의 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나도 그냥 있지 않겠다고 했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참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다행히 아침나절에 어느 교사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은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좀 쑥스러워하며 소개합니다). 교장선생님. 오늘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고 저의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성남의 모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하신 선생님이 구리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실 때 전 그 옆에 있는 부양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신출내기 교사였습니다. 이웃학.. 2009. 5. 15.
학교자율화 단상 Ⅱ 우리나라 교육행정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가령 학교에 산불조심 관련 공문을 주고받지 않으면 온나라에 산불이 훨씬 더 많이 날 것이라는 듯합니다. 교통사고가 걱정이면 교통사고를 예방하라는 공문을 보내면 되고, 학교폭력이 걱정되면 학교폭력 자진 신고 및 피해 신고 관련 공문을 .. 2009. 4. 21.
학교폭력예방 현수막에 관한 낭만주의적 해석 “학교폭력 예방하여 건전한 학교문화 이룩하자” 어느 학교 앞을 지나다가 본 현수막의 표어입니다. 공연히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걸 보고 ‘그래, 이젠 폭력을 하지 않아야지’ 할 아이는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지난겨울엔 이런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러더니 지난 초봄에는 또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마디면 하라면, 좀 미안한 말이지만 차라리 그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불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불은 세상을 망쳐요!” 지난해 11월초부터 올 2월말까지 4개월간 우리 학교 교문에 내걸었던 불조심 현수막의 표어입니다. 4․4조가 아니어서 어색합니까? 표어는 지난해 2학년 4반이었던 허태훈이의.. 2009. 4. 3.
어느 독자 Ⅱ - 지금 교실에 계신 선생님께 - 시업식입니다. 아울러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인사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운동장에는 작은 떨림이 있습니다. 짐짓 무표정하게 새로 만난 아이들 곁을 지나쳤습니다. "별로 멋있어 보이지 않는데?" 그 또래 평균치보다 약간 작은 녀석이 아예 내놓고 이야기합니다. 못들은 체하고 지나칩니다. '만만치 않은데. 저 아이와는 올 일 년 특별한 만남이 되겠는 걸.' 아이들은 새로 오신 선생님들의 인사말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담임이 된 저를 탐색하느라 흘끔거리는데 시간을 소비합니다(누가 이렇게 쳐다봐 주겠습니까). 더러는 만족하는 것 같기도 하고(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애써 무관해하는 것 같은 표정도 엿보입니다(이미 정해진 담임,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4학년쯤 되면 알 법도 하겠지요). 추운데.. 2009. 3. 19.
‘학교장 인사’를 위한 걱정 3월에는 갖가지 교육행사가 줄줄이 들어 있습니다. 내일(2일, 월요일)만 해도 시업식에 입학식이 이어집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잘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행사라면 으레 교장이 단상에 올라가 인사를 해야 ‘제격’이라는 인식이 깊습니다. 교장이 없으면 행사를 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달랑 학교장 훈화 또는 학교장 인사만으로 구성되기도 하니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런 교육활동도 얼른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생중심 교육활동’으로 바뀌어가야 할 것입니다. 시업식은 아이들이 한 학년씩 진급하여 첫 수업을 시작하는 날을 기념하는 행사지요. 그렇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어야 합니까? “얘들아, 새해가 밝은지 어제 같은데 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됐구나. 곧 봄이 무르익겠지? 세월은 참 무상한.. 2009. 3. 1.
미스테리한「○○코팅」 잘난 체하기란 참 쉽습니다. 자칫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가령 매월 불우이웃을 돕는 회비를 내고 있는 걸 걸핏하면 내세웠습니다. 지난번에는 신문에 실린 제 글을 보고 “훌륭한 글을 쓰시는 분이니까 장애인을 돕는 우리 단체의 물품을 좀 사 달라.”는 전화를 한 여성에게 ‘그렇지 않아도 회비를 내고 있는데 걸핏하면 도와달라는 전화나 하느냐?’고 짜증을 내면서 아주 혼을 내주고 한 개에 오천 원짜리 비누 한 박스를 샀습니다. ‘그놈 참 기왕 사주려면…….’ 그랬겠지요. 우리 학교에는 매달 70만원씩 학교발전기금을 내는 분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급식비 내기가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라고 했답니다. 학교발전기금은 교장이 징수나 지출에 관여하지 말고 관리 책.. 2009. 2. 10.
양지 학부모 명예교사들 우리 학교에는 안전생활도우미, 교통안전도우미, 체육활동도우미, 체험학습도우미, 독서지도도우미 등 여러 가지 학부모회가 있습니다. 당연히 학교운영위원회도 있고, 컵․걸 스카우트 지원단, 청소년적십자(RCY) 지원단도 있고, 학교교육과정위원회에도 학년별로 한 명씩 학부모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 유치원 학부모회를 빼놓을 뻔했습니다. 아홉 가지도 넘어서 뉴스가 될 만도 하지만 벌써 해가 바뀌었으니까 2008학년도에는 신문에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07년에는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교장이 저처럼 여러 가지 학부모단체를 운영하다가 대서특필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단체들이 회비를 거두었고 그 회비가 교장과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몰래 회비를 거두는 분은 저하고 원수지간이 됩니다.” 연초에 그.. 2009. 1. 2.
엉망진창 학예회 우리 학교 병설유치원에서는 어제 오후 미래관에서『제2회 양지꿈나무들의 작은축제』를 열었습니다. 프로그램만 봤을 때는 대단할 것 같았습니다.「신명나는 사물놀이」「야, 우리 엄마다!」「노래극」「새론네와 여럿이」「고양이들의 음악여행」「회장네와 총무네」「핸드벨」「검정고무신」「손짓사랑」「탈춤놀이」「동시감상」「가족이 함께해요」「천사들의 합창」「리듬합주」. 그러나 실제로 가보았더니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연습인지 공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첫 프로그램「신명나는 사물놀이」는 한참동안 쿵쾅거리기만 해서 아직 연습인가 했는데, 그 쿵쾅거림에도 순서와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제 끝나는가 생각하면 또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자꾸자꾸 이어졌습니다. 그 무대 위에도 지루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2008. 12. 20.
드디어 나를 가르치게 된「그 애」 요즘 몇 달째 이른바 '컨디션'이 엉망입니다. 이러다가 영 가는 건 아닌가, 그런 초라한 느낌일 때도 있습니다. 달이 지나도록 병원에 가봤자 별 수 없어서 한의원에 갔더니 한의원답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면역력이 고갈되어 병이 나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만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힘든데도 두 달 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부산의 초등학교 교장들이 다 모였는데, 여러 분이 다가와 언제 어떤 인연이 있었다는 걸 밝히며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 교육과정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 지침을 만들 때 저를 만난 분도 있었고, 우리나라 교과서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교과서(사회, 4-1)를 만들 때 함께한 분도 있었고 - 말 그대.. 2008. 12. 18.
용산역에서 만난 여인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여성을 봤습니다. 지난 10월 31일 저녁, 익산 전라북도교원연수원을 다녀오는 길의 용산역에서였습니다. 그곳 서경주 선생이 전화로 강의 요청을 해주었습니다. 그분은 명함 대신에 원광대학교에 근무하는 부군의 작품을 영인(影印)한 그림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 그림의 가을색이 아름다워서 탁자 위에 끼워두었습니다. 만추(晩秋)의 가을꽃과 붉은 열매 저 위 여백에는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김용택,「가을」)로 시작되는 시 한 편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였겠지요. 여정이 정겨웠고, 그 느낌이 돌아오는 역에까지 이어졌습니다. 개찰구를 나오려고 줄을 서 있는데, 길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할아버지~!" 아이는 할아버지가 어서 나오기를 애.. 2008.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