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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미스테리한「○○코팅」

by 답설재 2009. 2. 10.

 

 

 

 

잘난 체하기란 참 쉽습니다. 자칫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가령 매월 불우이웃을 돕는 회비를 내고 있는 걸 걸핏하면 내세웠습니다. 지난번에는 신문에 실린 제 글을 보고 “훌륭한 글을 쓰시는 분이니까 장애인을 돕는 우리 단체의 물품을 좀 사 달라.”는 전화를 한 여성에게 ‘그렇지 않아도 회비를 내고 있는데 걸핏하면 도와달라는 전화나 하느냐?’고 짜증을 내면서 아주 혼을 내주고 한 개에 오천 원짜리 비누 한 박스를 샀습니다. ‘그놈 참 기왕 사주려면…….’ 그랬겠지요.

 

우리 학교에는 매달 70만원씩 학교발전기금을 내는 분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급식비 내기가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라고 했답니다. 학교발전기금은 교장이 징수나 지출에 관여하지 말고 관리 책임만 지라는 행정적 취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잘 모르고 지낸 것 같습니다. ‘이런 분이 있나?’ 당장 전화를 했습니다.

“저~ 양지초등학교 교장입니다. 사장님과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양지초등학교 교장이시라면 저희 사장님께 감사 말씀 하시려고 그러시지요?”

“예, 그렇습니다만…….”

“그러시다면 우리 사장님께서 자리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제가 충분히 말씀드릴게요.”

“많이 바쁘신 모양이지요?”

 

거기까지 얘기하는데 누가 분주하게 무슨 지시를 내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여성이 ‘그러시다면 우리 사장님께서 자리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라고 아주 내놓고 얘기했기 때문에 저도 내놓고 다시 말했습니다.

“사장님께서 방금 들어오신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 여성이 밝혔습니다.

“사장님은요? 그런 말씀 듣고 싶어하지 않는 분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잘 전해드릴게요.”

“그만큼 분주하신가요?”

“그럼요. 그리고 저희가 이번 달 성금은 다음 달로 넘기자고 하면 당장 ‘아이들이 굶고 있다! 더 열심히 하자.’고 그러셔요.”

 

저는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행정실장에게 부탁해놓은 감사패도 학부모총회 날 ‘미래관’에서 주긴 ‘틀렸고’, 제가 직접 들고 찾아간다 해도 그 회사 일을 방해하는 꼴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편으로 부치는 방법도 있고, 누가 잠깐 가서 “여기 이것 두고 갑니다.” 하고 ‘선 자리’에서 돌아오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사람에게 하듯 ‘미사여구’나 늘어놓아서는 안 될 대상이므로 우선 그 감사패에 뭐라고 쓰는 게 좋을지나 생각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분도 있구나.’ 싶어서 인터넷에서 ‘○○코팅’이란 회사를 찾아보았습니다. 남양주 오남읍 양지리의 ‘○○코팅’은 보이지 않고 엉뚱한 도시의 ‘○○코팅’이 두 군데 나와서 ‘홈페이지도 없나?’ 하고 나오려는데, 이런 기사가 보였습니다.

 

 

2008 경향하우징페어

 

도포시스템 전문업체 ○○코팅(○○특수칠)은 2.22~2.27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08경향하우징페어에서 세계 최초 4가지 조색 자동 스프레이 도포시스템 ‘카멜레온4’를 선보였다. ‘카멜레온4’는 유성․수성 페인트 모두로 조색이 가능하고, 유리와 금속에도 대리석 질감의 도포가 가능하다. 또한 4회에 걸쳐 도포하는 작업시간을 1회로 단축하였고, 색 농도와 양을 자유롭게 조절하여 10여 가지 이상의 패턴의 도포가 가능하며, 남은 페인트의 재사용이 가능해 원가절감에도 크게 기여한다.

 

 

코팅이라기에 학교에서 하는 코팅, 아이들 책받침 만들기 같은 건가 싶었다가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이런 글도 보였습니다.

 

 

"대리석이다. 대리석 아니다." 4가지 조색 자동 스프레이 도포시스템 카멜레온4

‘카멜레온4’는 ○○코팅에서 개발한 4가지 조색 자동 스프레이 도포시스템이다

 

 

카멜레온4는 수성 페인트로 작업이 가능한 소재에만 적용할 수 있었던 대리석 느낌의 조색을 유리, 금속 등 유성페인트로만 작업이 가능한 소재에도 적용할 수 있고 수성 페인트보다 월등한 질감을 낼 수 있다. 또한 1회 도포로 4가지 색상의 도포가 가능하고 색 농도와 양을 자유롭게 조절하여 10여 가지 이상의 패턴 도포가 가능하다. 남은 페인트의 재사용이 가능하여 원가 절감도 가능하다.

 

그 회사 이름, 주소, 전화번호, 홈페이지 같은 걸 다 밝히고 싶지만, 우리 학교 행정실장이 “그렇게 하면 법규위반이 될 것 같다”는 자문을 해주었기 때문에 답답하고 섭섭한 채로 이 글을 마칩니다.

그 사장님이 이 글을 볼 리가 없지만 그래도 인사를 합니다. “○○코팅 사장님, 고맙습니다. 우리 학교 학부모도 아니시라면서요? 사장님 같은 분도 계시는 이 세상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