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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어느 독자 Ⅱ - 지금 교실에 계신 선생님께 -

by 답설재 2009. 3. 19.

 

 

 

시업식입니다. 아울러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인사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운동장에는 작은 떨림이 있습니다. 짐짓 무표정하게 새로 만난 아이들 곁을 지나쳤습니다. "별로 멋있어 보이지 않는데?" 그 또래 평균치보다 약간 작은 녀석이 아예 내놓고 이야기합니다. 못들은 체하고 지나칩니다. '만만치 않은데. 저 아이와는 올 일 년 특별한 만남이 되겠는 걸.' 아이들은 새로 오신 선생님들의 인사말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담임이 된 저를 탐색하느라 흘끔거리는데 시간을 소비합니다(누가 이렇게 쳐다봐 주겠습니까). 더러는 만족하는 것 같기도 하고(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애써 무관해하는 것 같은 표정도 엿보입니다(이미 정해진 담임,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4학년쯤 되면 알 법도 하겠지요). 추운데 빨리 교실에 들어갔으면 하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얇은 셔츠를 입은 저하고 같은 생각입니다). 봄방학 중에 새로 담임을 배정받고 전혀 모르는 아이들과 그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사귄 적이 없으니 딱히 쓸 말이 없었습니다. 내가 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너희들과 1년을 어떻게 지내겠다는 그런 이야기를 도저히 쓸 수 없어서 한 쪽을 쓰는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당사자인 선생님들의 동의 없이 내려오는 이런 지시적 사안은 그 순수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껄끄럽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작년 형과 누나들이 나도 몰랐던 사랑의 하트를 내 몸에서 발견했었다고, 그것은 너희들을 사랑하라는 표시일 것이니 나중에 찾아보라고, 사랑이 넘쳐 하트가 더 커지는 불상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어떻든 네가 무척 궁금하다고요. 부모님들께는 성적 지상주의보다 가치 있는 그 무언가를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고 싶다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장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제가 몰랐던 사랑의 하트는 정수리 부분에서 시작된 탈모가 만들어 놓은 기이한 모양입니다. 작년 우리 반 아이가 핸드폰으로 찍어 알려 주었을 때 대범하게 웃어 넘겼지만 '심는 가발'이라는 광고 문구에 가끔 눈길을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 이 학교의 전통대로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환영회 자리이지요. 그야말로 술 한 잔도 하지 않은 건전한(!) 자리였습니다. 작년에는 3월 첫날에 ‘우리의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하면서 손을 잡고 원을 그렸던 것도 참으로 어색했는데, 오늘은 밥만 먹었는데도 더욱 어색했습니다. 한 시간을 간신히 넘긴 환영회 자리가 끝나고 작년 3학년, 6학년 선생님들은 일제고사 채점을 재점검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아마도 오늘 밤을 세워야할지 모른다면서 말입니다.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우리들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우리가 속한 집단은 저 위에서부터 겨우 이정도인가'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고는 실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되고 힘을 얻어야 될 시점이 되어서 또 다시 교장선생님의 격려가 필요했나 봅니다(참으로 염치없이).

 

지난해 8월 어느 날, ‘어느 독자’라는 제목으로 소개해드린 그 선생님께서 지난 3월 2일 늦은 밤에 보내주신 댓글입니다. 댓글을 제 글인 양 소개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무슨 염체로 이렇게 ‘큰’ 댓글을 혼자 읽고 말겠습니까.

이번 댓글은「‘학교장 인사’를 위한 걱정」을 읽고 보내주셨는데 다시 읽어보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오는 27일은 ‘환경구성 점검일’로 되어 있습니다. 그걸 내가 ‘환경구성 완료(일단)’라고 고쳐놓았는데, 그날 교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 전 교사들을 대동(帶同)하고 온 교실을 다 돌아다니면서 “교실 앞쪽은 말끔하게 정리해야 한다”와 같은 사항에 대해 이것저것 지적해준다? 이런 건 교장이 아니라도 가능한 일 아닙니까? 담임선생님이라면 그걸 모르겠습니까? 지저분한 교실을 좋아하는 담임도 있을까요? 그래도 남이 보면 주인과 관점이 달라서 유념할 만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옆 교실 선생님께 우리 교실 좀 봐달라고 부탁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② 교감과 부장들을 대동하고 다니며 과 같이 한다.

③ 누굴 대동하든 일단 뒷짐을 지고 맨 앞에 서서 어슬렁어슬렁 다닌다.

④ 뭐 대단한 걸 적는 척하며 수첩에 메모하며 다닌다.

이 댓글을 쓰신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에 계시진 않지만, 올해엔 이 학교 교장인 나는 어떻게 하는지 쳐다보고 있을 것입니다.

‘환경구성 점검일’ 때문인지, 내일 오후의 ‘학부모 총회’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인지 요즘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퇴근이 늦다고 합니다. 교장으로서는 고맙고 미안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