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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양지 학부모 명예교사들

by 답설재 2009. 1. 2.

우리 학교에는 안전생활도우미, 교통안전도우미, 체육활동도우미, 체험학습도우미, 독서지도도우미 등 여러 가지 학부모회가 있습니다. 당연히 학교운영위원회도 있고, 컵․걸 스카우트 지원단, 청소년적십자(RCY) 지원단도 있고, 학교교육과정위원회에도 학년별로 한 명씩 학부모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 유치원 학부모회를 빼놓을 뻔했습니다.

 

아홉 가지도 넘어서 뉴스가 될 만도 하지만 벌써 해가 바뀌었으니까 2008학년도에는 신문에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07년에는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교장이 저처럼 여러 가지 학부모단체를 운영하다가 대서특필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단체들이 회비를 거두었고 그 회비가 교장과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몰래 회비를 거두는 분은 저하고 원수지간이 됩니다.” 연초에 그렇게 발표해두었기 때문인지 우리 학교에서는 돈을 거두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학교교육에서 지역사회인사, 특히 학부모들을 교육인적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며 그만큼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물론 직장을 가진 분들이 강제로 동원되는 사례(“우리는 하인노릇을 한다.” “돈을 들여 도우미를 대신 보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오겠지요), 전체 학생을 지도하는 일에 참여해달라고 불렀더니 겨우 자신의 자녀나 챙기는 사례(그런 분은 학교까지 찾아와서 제 자식 망치는 얼빠진 부모라는 걸 왜 모를까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두 ‘교육적’으로는 이래저래 아직 후진국이므로 어쩔 수 없는 부작용들입니다.

 

그런 부작용만 막을 수 있다면 특히 초등학교처럼 활동량이 많고 영역이 넓은 교육에서는 ‘도우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의 ‘도우미’가 바로 ‘명예교사’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학급당 평균인원을 OECD 국가들의 평균인원(25명인가요?) 이하로 떨어뜨리는 일이 요원한 것도 명예교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25명 이하인 나라에서도 명예교사의 활용은 더욱 활성화되어 있으니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명예교사가 필요한 장면은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오스트레일리아에 가보았는데, 그 나라에는 식물원, 동물원 같은 곳에도 별도의 정규교사가 몇 명씩 심지어 10명 안팎씩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나라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선생님 혼자서 그야말로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교과서만 가지고 편안한 수업을 하려는 교사가 많을 수밖에 없고, 학생들은 재미없는 수업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공부를 한다는 일이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선생님만 쳐다보면서 오직 교과서나 펴놓고 읽던 때와 같으려니 생각한다면 명예교사의 필요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전번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우리 학교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에서 학부모 명예교사를 활용했습니다. 때로는 전공분야의 수업도 담당하게 했습니다. 아무런 말썽이 없었습니다. 그 학교에 시찰 온 전국의 교장, 교사들이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이건 계획일 뿐이지 실제로 이렇게 될 리가 없다.” 실제로 그 활동이 잘 이루어진다고 하자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부모들의 생활수준이 높은 ○○초등학교니까 되지 다른 학교에서도 되겠나?” 그분들이 우리 양지초등학교에 와보면 이번에는 뭐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양지초등학교니까 되지 다른 학교에서도 되겠나?” 양지초등학교가 뭐 어떤 학교입니까?

 

학부모들이 학교에 들락날락하면 예상도 하지 못한 부작용도 있습니다. 심지어, 보기에 언짢은 장면에서는 다짜고짜 간섭을 하려들기도 합니다. 큰일 날 일입니다. 교장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상식입니다. “어이, 김 선생, 왜 그래요?” 한다면 그 순간 그 선생님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테니까요. 학교에서는 현행범 이외에는 연행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바로 그 이치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교장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우리 아이들을 꾸중하거나 벌을 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형법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됩니다. 또 소정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자원인사라도 꼭 담임교사 등이 참관하는 가운데 학생들을 지도해야 만약 잘못 지도되는 경우나 수준에 맞지 않는 경우 나중에라도 바로잡아줄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작품심사 결과를 놓고 왈가왈부하기도 합니다. 방학하기 얼마 전에도 누가 “우리는 당연히 ○○이가 1등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심사결과는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는 말을 했다는데, 한마디로 주제넘고 어처구니없는 짓입니다. 교사들이 심사관점을 정해서 심사한 결과에 대해서는 교장도 마음대로 언급할 수 없습니다. 교육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기 때문에 상당한 자격을 가진 교육자가 담당하며, 그것도 모자라서 끊임없는 연수를 받습니다. 그냥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의논하듯 심사해도 좋다면 뭐 하려고 교사 자격증을 주겠습니까.

 

명예교사 활동을 전개할 때는 주의할 점도 있다는 얘기를 하다가 딴 길로 간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학교 명예교사 활동을 지켜보면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2009학년도에는 더 훌륭한 활동이 전개되도록 할 작정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독서지도도무미회에서는 저에게 많이 ‘시달렸습니다’. 다음은 도서 교환전을 마친 회장님이 쓴 보고서입니다.

 

 

책 바꾸기 및 기증 행사 보고서

 

 

<취지>

우리학교 학생들이 읽고 난 책을 다른 친구들과 서로 돌려봄으로서 좋은 책을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는 마음과 더불어 늘 책과 함께하는 습관을 길러줌으로써 책과 친숙해지며 절약정신을 길러주려는 취지에서 실시함.

 

  <일정 및 장소>

* 일 정

 - 2008년 12월 4일(목) 양지가정통신을 통한 행사 안내

 - 12월 8일~12월 10일 책 접수, 교환권 배부

 - 12월 11일 접수된 책 전시 및 학생 관람

 - 12월 12일 교환권을 전시된 책과 교환

* 장 소: 본교 5층 미래관

 

  <결과>

* 들어온 책 수 : 618권

* 바꿔간 책 : 438권

* 남은 책: 180권(도서관에 비치)

 

  <좋은 점>

* 아이들이 책을 바꿔 갈 수 있는 즐거움을 행복해하였음.

* 마음 놓고 자유롭게 스스로 책을 선택해보는 것을 재미있어하였음.

* 책에 대한 애착과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았음.

* 다른 친구들이 본 책들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장르의 책에도 눈을 돌려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았음.

 

  <개선할 점>

   * 전교생은 물론 학부모들도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홍보로 학부모들의 관심을 모으면 더욱 풍성한 행사가 될 것 같았음.

   * 발행연도가 2004년~2008년(5년)인 책만 대상으로 했으나 1년 정도 더 늘려 6년으로 하면 참여하는 학생이 늘어날 것 같았음.

 

                                                                  독서지도도우미회 회장 김병숙

 

 

대한민국 어느 학교 학부모도우미회에서 이런 보고서를 쓰고 있을까요. 저는 이 글의 제목을「사랑하는 김병숙 회장님」이라고 쓸 뻔했습니다.

그러나 “김병숙 회장만 애썼나?”(“예, 독서지도도우미회 회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소개하지 않나?”(“다른 도우미회에서도 똑같이 혹은 더 노력하셨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교장이 학부모를 사랑해도 되나?”(“글쎄요. 저는 교장이 아이들을 사랑하면 모든 게 다 괜찮다는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이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온갖 소리를 할 학부모도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사랑하는 김병숙 회장님」은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맥이 빠진, 재미없는, 유치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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