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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엉망진창 학예회

by 답설재 2008. 12. 20.

 

 

 

우리 학교 병설유치원에서는 어제 오후 미래관에서『제2회 양지꿈나무들의 작은축제』를 열었습니다. 프로그램만 봤을 때는 대단할 것 같았습니다.「신명나는 사물놀이」「야, 우리 엄마다!」「노래극」「새론네와 여럿이」「고양이들의 음악여행」「회장네와 총무네」「핸드벨」「검정고무신」「손짓사랑」「탈춤놀이」「동시감상」「가족이 함께해요」「천사들의 합창」「리듬합주」. 그러나 실제로 가보았더니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연습인지 공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첫 프로그램「신명나는 사물놀이」는 한참동안 쿵쾅거리기만 해서 아직 연습인가 했는데, 그 쿵쾅거림에도 순서와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제 끝나는가 생각하면 또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자꾸자꾸 이어졌습니다. 그 무대 위에도 지루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선생님! 그만해요!!!” 이상도 하지, 아무도 웃지 않았는데 원장인 저 혼자서 미소를 지었고, 지휘하는 선생님은 그 쿵쾅거림을 듣지 않으려고 귀마개를 꼽았는지 아예 그 외침을 못 들은 척 그 쿵쾅거림이 끝없이 이어지게 했습니다. 내친김에 다 말하겠습니다. 그걸 지휘한다고 선생님은 정신없이, 그야말로 혼이 나가서 팔을 휘둘러댔고, 엄마들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우- 우-” 하거나 “앵콜! 앵콜!” 해댔습니다. 그걸 다 기록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어떤 아빠는 누구에겐가 전화를 하면서 디카 건전지가 다 되었다고 큰소리로 말했는데, 그 소리가 무대 위에서 얘기하는 아이 소리보다 더 컸습니다.

 

이야기극인지 노래극인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이크 두 대는 폼으로 세워두어서 ‘있으나마나’였고, 그러므로 스토리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율동은 다를까?’ 했더니 웬걸 그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건 철저한 ‘개인별 흉내내기’였고, 그조차 어떤 놈은 그냥 신나는 대로 그 무대를 마구 뛰어다니다가 끝내고 말았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런데도 제 앞에 와서 디카를 들이대던 어떤 엄마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이고 귀여워라!”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내가 아무리 분별없이 감상한다 해도 저건 아직 준비다. 준비 시간이 너무 길다.’ 하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프로그램에서는 볼 일이 없는 한두 아이가 함께 올라가서 서성거렸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본 것이지 벌써 공연이 한참 진행된 뒤였습니다.

 

모자(母子)가 차례로 낭송하기로 한 동시감상 프로그램에서는, 엄마는 칼릴 지브란의 시를 멋있게 낭독했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와 함께 나간 ‘볼 일 없는’ 동생(아직 유치원도 다니지 않는)이 마이크에 입을 대고 자꾸 “아! 아!” 했고, 그 엄마의 큰아들 정운이는 선생님과 엄마가 재촉했지만 동시를 낭독할 마음이 전혀 없어서 뒷머리만 긁적거리다가 내려왔습니다. 엄마가 정운이에게 꿀밤이라도 한 대 주려나 지켜봤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데리고 내려왔고, 사회를 맡다가 지휘를 하다가 정신도 없는 그 선생님께서 “정운이는 연습할 때는 참 잘했다.”고 소개해주었습니다. 하기야, E. 데 아미치스가 지은『쿠오레(사랑의 학교)』를 읽어보면 엔리코네 초등학교 학예회에는 시장님도 참석했는데, 한 아이가 무대에서 내려오다가 나뒹굴기도 했고, 얼굴이 벌개져서 허둥댄 아이도 있었으니 까짓게 뭐 대수겠습니까. 더구나 남양주시장님이나 교육장님이 참석하지도 않은 우리 유치원 학예회니까요. 정운이는 앞으로 그 일을 두고두고 기억할 테니까, 그것만 해도 큰 소득일 것입니다.

 

합주 역시 엉망이었습니다. 처음 해도 그보다는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학교 J 선생님의 아들은 하품만 해대다가 마칠 때 인사는 공손히 했습니다. 저는 그걸 보며 ‘그래도 저걸 보여주겠다고 여러 날 연습은 했겠지. 옷이 아깝고 소품 값이 아깝다.’ 싶었는데, 제 옆에 있던 한 엄마는 “원장님! 저것 좀 보세요!” 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는 합주가 끝나자 예정에 있었던 것처럼 외쳤습니다. “앵콜! 앵콜!” 진행하는 선생님도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마이크에 대고 얘기했습니다. “아이들의 합주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제대로 된 것도 있긴 했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가령 핸드벨을 울리는 아이들 같으면 제때 흔들려고 기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 노력이 제대로 되었다는 얘기이지 결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음향효과도 괜찮았습니다. 기계는 고장이 나지 않았고, CD는 연습 없이도 정상적인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옷도 예뻤고 소품도 좋았기 때문에, 나중에 사진을 보면 뭔가 근사한 발표회를 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행스런 일이 있습니다. 어느 방송국에서 중계방송이나 녹화방송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은 일입니다. 구경꾼이 원장인 저하고 여자 중학생 두 명이었던 것도 다행한 일입니다. 더구나 중학생 두 명은 일찌감치 돌아갔고, 저 혼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제가 왜 끝까지 자리를 지켰는지, 그 공연이 제가 자리를 지켜야 할 만큼 값어치 있는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제 오후에는 거기 그렇게 앉아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만 “엉망이었다”는 소문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날 일도 없고, 우리 유치원 학예회가 그렇게 진행된 것을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저 그 아이들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그야말로 영원히『꿈을 담은 작은축제』로만 기억될 것입니다.

 

이럴 때 사립유치원 혹은 다른 유치원 원장들은 어떤 표정일까요? 저는 요즘 몸과 마음이 무거운 상태인데, 어제 오후 그 시간에는 모처럼 많이 웃었습니다. 어둑한 길을 더듬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을 듣지 않고 모처럼 휘파람도 불었습니다.

 

참, 내년도 우리 유치원 신입생 모집에 신청자가 넘쳤답니다. 아무래도 썩 괜찮은 유치원이라는 소문이 퍼진 모양입니다. 소문을 막기는 어렵습니다우리 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여러 명을 떨어뜨리게 되었다고 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떨어뜨리는 건 언제나 그렇습니다. 이 모양으로 가르치는데 뭐가 좋다고 ‘정원을 초과한 신청’이란 이변이 일어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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