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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우리 학교 불조심 현수막

by 답설재 2008. 11. 5.

우리 학교 교문 위의 불조심 강조기간 현수막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불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불은 세상을 망쳐요!"

 

2학년 허태훈이의 작품입니다.

남양주소방서장께서 보시면 '불조심 현수막의 이단(異端;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이 되겠지요?

사실은 지난달 22일에 소방서로부터 '2008년 불조심 강조의 달 방화환경 조성을 위한 협조의뢰' 공문이 왔습니다. 내용은 "화재발생 빈도가 높은 겨울철을 대비하여 방화환경 조성을 통한 시민의 화재예방 및 안전문화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협조요청하니 안전하고 내실 있는 방화환경 조성 확산에 적극 동참"해 달라는 취지로, 불조심 홍보물 설치, 직장방화점검의 날 운영 등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공문은 플래카드(현수막)를 '불조심 강조의 달'로 할 경우, "2008.11.1~11.30, 2008. 불조심 강조의 달, ○○빌딩"을 석 줄로 배치하고, '방화환경 조성용'으로 할 경우, "2008.11.1~2009.3.31, 화재!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주)○○회사"를 역시 석 줄로 배치할 수 있다는 제작 안까지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또 플래카드 사용 문안 열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 설마하면 큰일날불 조심하면 안전한불

◦ 크고작은 화재사고 알고보니 순간방심

◦ 잘못쓰면 성난 불길 바로쓰면 웃는 불씨

◦ 살핀만큼 안전한불 잊은만큼 위험한불

◦ 행복한 우리가정 알고보니 불조심

◦ 이게설마 큰불될까 그게정말 큰불된다

◦ 우리가족 소방가족 안전한 우리생명

◦ 버릴 것은 설마의식 가꿀 것은 소방의식

◦ 설마한날 화재 있고 조심한날 화재없다

◦ 지켜보면 꺼질불도 돌아서면 살아난다

◦ 이게설마 큰불될까 그게정말 큰불된다(중복 제시)

◦ 화재발생 무서워요 화재예방 참좋아요

◦ 소화전은 어디에? 소화기는 어떻게?

 

 

다 짐작하시겠지만, 공문은 자세하고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키는 대로' 하면 다 될 것입니다. 각 학교, 기관, 업체, 회사, 빌딩 등 여러 곳에서 그대로 실천하면 아무런 문제가 있을 수 없는 '불조심' 매뉴얼이니까요.

 

이게 바로 우리의 문화입니다. 공문을 보내는 곳에서는 가능한 한 풍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친절하게 제시하고, 그 공문을 받는 곳에서는 매뉴얼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되는. 다만 사용문안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자유는 보장되는. 이런 식이라면, 가령 우리 학교에서 운동회를 한다면 그 운동회 포스터도 교육청이나 문화관광체육부에서 보내주는 문안대로 그려 붙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문을 받은 그때 우리 학교는 '학교평가' 대비로 모두들 분주한 시기였지만, 기획부장에게 부탁하여 '교문의 현수막 문안을 공모한다'는 글을 탑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학교에는 예를 들어 '학교폭력 예방' '성폭력 예방' '양성평등 의식 고취' 같은 주제로 학생들의 작품을 공모한다는 여러 가지 공문이 옵니다. 옛날에는 '반공' '6․25' '남북통일' 같은 주제로 글짓기, 포스터 그리기, 웅변대회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주제는 어느 학생이나 선뜻 응모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을하늘' '어머니' '우리 학교'처럼 아무나 쓸 수 있는 주제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런 공문이 오면 선생님들은 고학년에게 숙제를 내주거나 심지어 당번 학급을 정해서 윤번제로 담당시키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그건 공부도 아닌 '동원(動員)'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주제에 별다른 경험이 없거나 소질이 없는 아이들은 재미가 없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강제로 참여하게 하면 우선 불공평합니다. 특별한 경험이 있어 작품을 내고 싶은 아이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하기도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아이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누구나 꼭 해야 하는 공부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되 작품을 내고 싶은 아이만 응모하도록 공모(公募)를 해보자고 하면 당장 반대의견에 부딪칩니다. 그렇게 하면 응모가 없을 경우 작품을 내지 못하는 난처한 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하던 대로' 하면 편할 것입니다. 편하니까 '하던 대로 하는 사람'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그 시스템을 바꾸자고 하면 얼른 위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하던 대로' 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난처한 경우가 생긴다" "지금까지 그렇게 했다" "모두들 그렇게 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바꾸려면' 위험요소가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그 설명을 듣고도 바꾸자고 하기가 게름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육적이지도 않고, 도대체 논리도 없는 터무니없는 일을 수십 년 계속해왔고, 가만두면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지 모릅니다.

저는 '하던 대로' 하는 것이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톱니바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가 몸담은 학교만이라도 바꾸고 싶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현수막에 쓸 불조심 표어 공모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탑재하게 해놓고 참 궁금했지만 참았습니다. 한 아이도 응모하지 않으면 그것은 참 난처한 일이 되고, "그 보라!"고 하면 앞으로 여간해서는 그런 시도를 하지 못할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담당 K 선생님께서 그야말로 ‘장난’ 같은 종이에 쓰인 16편의 표어를 들고 왔습니다. 예심(豫審)을 통과한 작품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메모지에, 또 어떤 아이는 공책을 찢어서 적어냈습니다. 그 16편이 모두 제각각인 종이에 쓰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게 오히려 좋아보였습니다.

더구나 다행인 것은 그 K 선생님의 표정이 진지하고도 밝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방서에서 보낸 문안과 비교하며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불을 가지고 장난치면 불은 세상을 망쳐요 (2, 허태훈)

따스한 불씨가 화나면 우리는 슬퍼요 (2, 송서영)

하나의 불씨는 여러명의 마음을 태웁니다 (2, 임지현)

산에 불이나서 나무가 "아 뜨거" 하면 우리는 어떡하지? (2, 권서현)

불로 인해 재가되고 재가되서 슬픔된다 (6, 이하주)

한 순간의 실수 당신의 행복을 한 줌의 재로 (5, 최빛나)

천년만년 가꾼숲이 불한번에 속수무책 (6, 강철훈)

작은 불씨가 커지면 세상을 망쳐요 (2, 유혜영)

아기 불씨 한개가 큰 나무, 큰 산을 불태운다. 아기 불씨 한개가 (2, 박정윤)

작은 불씨라고 놀리지 마세요. 안 그러면 불씨가 화나 큰불되어 화재 일으켜요 (2, 김소연)

조그마한 붉은 꽃 화나면 번지고 그러면 너무 무서워지는 자그마한 붉은 꽃 (2, 양수빈)

부릅뜬 화재관심 커가는 우리들 안전 (3, 한지웅)

한번더 가스점검 이웃사랑 실천이고 안버린 담배꽁초 나라사랑 실천이다 (4, 이유진)

외출할 때 살펴보고 잠잘 때 살펴보자 (5, 강서현)

관심 없는 담뱃불씨 단한번에 슬픔된다 (6, 김선채)

꺼진 불씨 다시보면 안전생활 첫 걸음 (6, 한은진)

 

 

제가 보기에는 우리 아이들의 작품은 어느 것이나 소방서 문안보다는 좋았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작품이어서 그럴까요?

그런데도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깔보고 얕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부탁하면 다 되는 일도 어른들이 해주지 못해 안달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을 참 가소롭게 여기지만 어른들이니까 말도 못하거나 그냥 봐주고 넘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심을 통과한 그 작품들을 심사할, 말하자면 본심(本審) 위원을 선정하고 다시 심사를 맡겼습니다. 얼마 후 K 선생님이 그 작품 중 몇 편을 들고 왔습니다. 그 몇 편 중에서 최우수 작품 선정을 저에게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 작품들을 들여다봤습니다. ‘이분들이 심사를 다 해놓고 내 생각은 어떤지 알아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것을 최우수작으로 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운율을 살린 작품이 수준 낮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어른들을 흉내 낸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기교(技巧)에 흘렀다" "기교에 치우쳤다"고 합니다.

아이들다운 작품 두어 편을 눈여겨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작품들이 다 최우수작이라고 하면, 그 중에서 어느 것이 최우수냐고 또 묻겠지요?"

학교는 아이들의 학교니까 아이들이 불장난하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교육적이라면 「우리가 불을 가지고 장난치면 불은 세상을 망쳐요」가 좋겠다고 했습니다.

K 선생님은 두말 하지 않고 그 작품들을 거두었습니다. 제 판단이 심사위원들의 생각과 일치한 것일까요? K 선생님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작품을 가리는 안목에 '아!' 하고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K 선생님은 심사위원 S 선생님의 말씀도 전했습니다. "정형화된 표어를 고집할 필요가 있나? 틀을 깰 필요가 있다."

저는 그 전언(傳言)의 내용에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선생님들이 그동안 어떻게 참고 지냈는가 싶었습니다. S 선생님의 관점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공감을 표시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심사에서도 「산에 불이 나서 나무가 "아 뜨거" 하면 우리는 어떡하지?」「우리가 불을 가지고 장난치면 불은 세상을 망쳐요」 두 편이 경합을 벌인 모양이었습니다.

 

K 선생님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조심 표어 게시쯤은 그냥 관례적으로 해도 되니까, 사실 처음엔 조금 귀찮은 생각도 들었는데, 표어 공모하고 아이들이 지어온 표어 읽으면서 조금 보람도 느꼈습니다. 최우수 받은 아이가 자기 작품이 실린 현수막을 바라보며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 많이 흐뭇해집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고, 소중한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바꾸고 싶습니다. 이 상황이, 하루하루가 답답합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다른 학교 선생님들보다 더 피곤하다면 싫습니다. 다만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려니까 아이디어 창출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학자들은 '투자(投資)'는 같은데도 '효과(效果)'가 더 좋아지도록 하는 것을 '연구(硏究)'라고 합니다. 그런 것이 연구라면 가령 미술을 좋아하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미술공부를 더 많이 시키는 것은 연구가 아닙니다.

투자는 같은데 효과가 더 좋도록 하는 것을 "학교교육과정의 수준을 높인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학교교육과정의 수준을 높이는 일'은 참으로 해볼 만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월급을 더 많이 받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더 재미있게 됩니다. 월급만 받으며 답답하게 사는 것보다는 재미도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은 당연합니다.

 

어떤 분은 저의 태도가 답답해 죽겠다는 듯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해라!' 하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그래요."

저는 그게 싫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일방적 지시입니다. 일방적 지시의 효과는 그때뿐입니다. 제가 사라지면 당장 옛날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 학교 구성원들이 그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희한한 것은, 어떤 분은 단 한 번만 만나도 그 기쁨과 즐거움을 당장 경험할 수 있지만, 어떤 분은 여러 번 만나도, 심지어 수십 번 이야기해 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분은 강의료도 받지 않고 자꾸 이야기하는 저 자신이 초라해지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경험한 그 일을 할 때만 그렇게 실천하지만, 어떤 분은 한 가지 일만 그렇게 해보고도 ‘하나를 배우면 열을 통하던’ 옛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다른 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다, 가슴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가슴이든 그 가슴이 무서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