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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독서하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아이들

by 답설재 2008. 10. 20.

가끔 도서관에 올라가 책을 읽는 ‘내 아이들’을 둘러보고 오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게 그 행복이란 것인가?’ 그런 느낌을 가지기도 합니다.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 내 논에 물 들어가는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다’는 그 이치일 것입니다.

 

 

 

내 아이 박준성(1-5)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이런 모습들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다른 생각에 골몰한 까닭일 것입니다.

 

내 아이 신민재(2-3) 저는 편안하게 만들어진 서가에 얹어놓은 저 발이 보기에 참 좋습니다.

 

책 속에 파묻힌 한 아이를 보고 다치바나 다카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일본의 뉴저널리스트입니다.『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우주로부터의 귀환』『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21세기 知의 도전』『임사체험』『뇌를 단련하다』『원숭이학의 현재』『뇌사』『거악 vs 언론』등의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이 문제를 파헤쳐보자’ 마음먹으면 관련 서적을 한아름 사다놓고 순식간에 읽어치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공영역도 아닌 그 ‘문제’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입이 벌어지는 글을 써내는 사람입니다. 

 

책의 날개에는 대개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1940년 나가사키 출생. 1964년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기자가 됨. 1966년 퇴사하여 다시 도쿄대학 철학과에 입학. 1974년 수상의 범법행위를 파헤쳐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켰음. 이후 사회적 문제 외에 우주, 뇌를 포함한 과학분야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혀왔음. 고단샤(講談社) 논픽션상, 문예춘추사 기쿠치간상(菊池寬賞), 제1회 시바 료타로상(司馬遼太郞賞) 수상 등.

 

그리 대단한 이력은 아닙니까? 그럼,『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의 뒤표지에서 ‘知의 거인’ 다치바나의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을 소개해볼까요?

①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②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라.

③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④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⑤ 읽다가 그만둔 책이라도 일단 끝까지 넘겨 보라.

⑥ 속독법을 익혀라.

⑦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⑧ 가이드북에 현혹되지 마라.

⑨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⑩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⑪ 새로운 정보는 꼼꼼하게 체크하라.

⑫ 의문이 생기면 원본 자료로 확인하라.

⑬ 난해한 번역서는 오역을 의심하라.

⑭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⑮ 여하튼 젊을 때 많이 읽어라.

 

그것도 대단한 것이 아닙니까? 몇 가지나 체험하셨습니까? 저로 말하면, 제가 발견한 책 중에서 독서에 대해서는 이 책『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다른 어떤 한 권의 책’ 이상의 책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어떤 한 권의 책’은 기회가 되면 소개하겠습니다(

사실은, 저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책을 남에게 이야기해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거듭합니다. 오늘 이 책을 소개하는 것만 해도 제 블로그를 찾아오는 고마운 독자들을 위해 큰맘 먹은 것입니다).『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그 책을 읽으며 세상은 넓어서 대단한 인물이 있구나, 했습니다. 한숨도 나오고 이미 나는 다 ‘틀렸다’ 싶었습니다.

 

내가 본 그 아이는 장차 한국의 다치바나 다카시가 되려는 것일까요? 이름도 멋있는 그 ‘다치바나 다카시’.

 

 

 

내 아이 임승섭(4-6) : 희미하지만 오빠의 허리에 두 다리를 걸치고 저쪽으로 누워있는 여동생도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여동생의 실내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게 보입니까?

 

독서지도, 하면 “똑바로 앉아라.” “책과 눈과의 거리는 30cm 정도를 유지해아 한다.”는 그 엄격하던 요령부터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정작 독서는 시키지 못하고 세월만 갔습니다. 저는 “시력이 나빠지면 안경 쓰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독서의 가치를 시력보호의 가치 위에 두고 싶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대전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세상을 바꾼다. KAIST, 세계의 중심에서’ KAIST 홈페이지의 그 말이 우리의 희망과 기대를 암시합니다.), 그 대학 총장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미리 준비해 정해진 답을 얘기하는 인재가 아니라,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활동을 한 잠재력이 있는 학생이다.” KAIST에서는 앞으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뽑기 위해 입시전형방식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고 그룹토의, 개별면접, 개인과제 발표 등 3단계로 진행되는 전형과정의 세부 내용을 바꾸기로 했답니다(매일경제,2008.10.1,18면). 이런 기사를 보면 독서가 참 좋은 것이라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저는 앨빈 토플러를 좋아합니다. 오죽하면 지금 쓰고 있는 이 안경이 덜컥 고장 나길 기다리며 다음에는 신문에 크게 실린 그의 얼굴 사진에서 본 그 스타일의 안경을 맞추겠다고 생각해두었겠습니까. 우리나라에는 앨빈 토플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편입니다. 그는 여러 번 방한(訪韓)했습니다. 자신의 강의를 듣고 강의료를 듬뿍 주니까 자주 왔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에게 강의료를 많이 주는 것은,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들어있는, 새로 말하면 우리의 잠재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앨빈 토플러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통째로 바꾸어야 창조적 인간을 기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식(知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앨빈 토플러입니다. 그는『미래 쇼크』(1970), 『제3의 물결』(1980),『권력이동』(1991),『부의 미래』(2006) 등 우리가 깜짝깜짝 놀랄만한 책을 써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했습니까? 저는 500쪽에 가까운『제3의 물결』(주우,1981)을 자랑스레 끼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그 앨빈 토플러가 2006년 연말에 방한(訪韓)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식(통찰력)의 원천은 끝없는 호기심, 독서와 사색, 그리고 신문이다.”(조선일보,2006.12.16,B1면).

 

다른 이야기를 더 할 필요가 있을까요,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좋을 뿐인’ 독서를 초등학교 때 습관화시켜 놓아도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한갓 ‘추억’이 되고 마는 것이 우리의 그 ‘잘난 현실’입니다. 책 한 권 읽지 않아도 ‘죽어라’ 교과서를 읽고 외우는 학생은 교사와 부모를 안심시켜주지만, 자꾸 교과서 외의 책을 찾는 학생은 그 교사와 부모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너, 왜 그래, 응?” 하고 맙니다. 대답의 내용 자체가 유치하지만 그래도 그 학생이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요? “독서는 좋은 것이잖아요!” 그러면 우리의 그 애끓는 교사와 부모는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적당해야지 말이지.” 그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으로 다른 무슨 좋은 말이 있습니까? “적당히 읽어라” “대학 가서 많이 읽어라” 그게 말이나 됩니까? 대학가서 많이 읽어도 좋다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읽으면 더 좋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초등학교 때는 많이 읽고, 중․고등학교 때는 출제의 범위 아니라면 가능한 한 읽지 말고, 다시 대학에 가서는 많이 읽는다? 세상에 우리나라 말고 이런 나라가 단 한 나라라도 있겠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교장이니까 이렇게 질문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교육이 비정상입니까, 중․고등학교 교육이 비정상입니까?” 더 물을 수 있습니다. “둘 중 한 곳은 비정상인 것이 분명한데, 그 비정상을 우리는 왜 그냥 둡니까?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교육자들이,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왜 이처럼 멍청한 것입니까?”

이렇게 결론을 내려도 좋겠습니까? 초등학생이 독서하는 모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러나 중․고등학생이 독서하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추신>

① 제 물음이 잘못된, 다시 말하면, 제가 멍청한 것은 아닙니까?

② 중․고등학교의 독서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하면, “우리 학교는 필독도서를 정해서 그 필독도서는 한꺼번에 수십 권씩 사두고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 읽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교장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작정입니다. “저로 말하면 그걸 더욱 싫어합니다. 학생들이 로봇입니까? 책조차 같은 걸 읽어야 합니까? 그 다음에는 생각조차 같은 걸 하자고 할 겁니까? 그러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됩니까?”(교장선생님, 하찮은 이 말을 마음에 두지는 마십시오. 뜻대로 하십시오.)

② 위의 사진들은 우리 학교 독서사진 콘테스트에 출품된 작품들입니다. 각 학년의 최우수상은 아닙니다. 심지어 상을 받지 못한 작품도 있습니다. 그 콘테스트의 심사관점이 제 감상 방법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③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래 무슨 구호나 표어, 이름붙이기 같은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제대로나 붙이면 좋으련만).  가을이 왜 독서의 계절입니까? 가을은 놀러가기 좋은, 놀러가서 술 마시고, 장소가 좋으면 고스톱도 좀 하면서 자랑스럽게 소리질러서 스트레스 확 풀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노래 부르기 좋은 계절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