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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主演의식과 助演의식(Ⅰ)

by 답설재 2008. 10. 11.

며칠 전 어느 선생님과 주고받은 메일을 ‘주연의식과 조연의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합니다. 그 선생님과 저는 연전(年前)에 주연(교사)과 조연(교장) 관계로 1년 반을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교장이 ‘조연’이라면 별로 설득력이 없는 관계 설정입니까? 아이들이나 학부모, 교육행정기관에서 보면 “그렇다”고 할 텐데요? 굳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면 그럼 교장을 ‘연출(演出)’에 비유하면 될까요? 그게 좋겠다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주연과 조연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교장이 조연을 맡아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께


또 오랜만에 인사 여쭙게 되어 죄송해요.

지난봄에 수업연구를 하고나서 문자 메시지 드렸던 기억이 나요. 그때도 그 허전함과 협의회의 의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연락드렸던 것 같아요.

오늘따라 '존경'이라는 단어가 절실하게 느껴져요. 제가 교장선생님을 존경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지난날을 자꾸 떠올리는 사람은 이미 발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라던데 자꾸 예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에요.

어제는 저희 학교에서 교육청 주최 연수회가 열렸어요. 그 연수회를 추진하기 위한 별도의 지원단이 있는데도, 연수회 장소가 저희 학교라는 이유로 행사와 상관없는 학교 홍보자료를 진열하고, 환경을 점검하고, 젊은 여교사들이 동원되어 안내도 했어요. 그래서 오늘 교감선생님께 메신저로 제 의견을 보내드렸더니 제가 아직 젊어서 불평불만이 많고 부정적인 것 같다는 우려의 답장을 보내셨더라구요. 주변의 좋은 선생님들을 찾아 그 분들을 본받으라는 충고와 함께. 저희 학년 담임 중에는 젊은 사람들도 있어서 학교에 건의사항도 올리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불만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 진심을 잘못 표현하여 오해하시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 학교에 와서 부장도 맡지 않고 학교일에 앞장서지도 않고 하여 저도 모르게 한쪽 면만 보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자책도 했습니다. 제가 ‘부정적’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어봤거든요.

학급별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해마다 달라질 만큼 담임의 영향이 크듯이 학교라는 집단에서 교사들은 리더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교사는 각자 자신의 가치관과 교육관에 따라 판단하고 활동하지만, 집단에는 고유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리더의 경영관에 따른 일관성 있는 추진 또한 교사들에게 영향을 주며, 그러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더 나은 교사로 발전되어 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대규모 학교에서는 교사와 관리자간에 의사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시만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사로서 하는 일이 단순한 업무처리의 의미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직도 ‘교육과정’이라는 큰 틀의 중심이 없이 단지 학교경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교장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면서 교육에 대한 눈높이는 높아졌는데……. 관리자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려운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신규교사들에게 선배교사들이 수업을 보여주자고 담당 부장교사에게 건의하면 다들 귀찮아할 거라며 난색을 표합니다. 그래서 우리 학년 교사들에게 우리끼리라도 수업을 공개하면서 신규교사가 수업기술을 배울 수 있게 하자고 설득하는 중입니다. 그것도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제안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제 수업이라도 보여주려구요. 우선 제게 이익이 되겠지요. 더 고민하며 수업하게 될 테니까요.

무심하게 지내다가 이럴 때만 연락드려 죄송해요. 그렇지만 이럴 때는 교장선생님부터 생각나는 걸 어쩌겠어요.

두서가 없었지요? 언제나 건강하셔야 해요.

M 올림.



M 선생님, 반가웠습니다


위로와 함께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후에 치과에 갔었는데,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그걸 참고, 가을에 들어 6학년 아이들이 담임선생님들을 너무나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선생님들을 불렀습니다. 차 한 잔을 대접하며 요즘 아이들은 예전의 6학년처럼 다루면 유치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 중학생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을 의식하고 있으므로 특별한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홈페이지와 다른 별도의 학급별 미니홈피 개설을 통한 자유발언과 토론을 유도할 수도 있고, 교사 도움 없이 계획하고 연습하여 부모님께 공개하는 학급별 학예발표회, 졸업문집 발간과 앨범 제작 지도하기, 수학여행 준비하기 등 아이들이 ‘마음 둘 곳’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메일에 답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불평불만이 많고 부정적이라니요, 도대체. 혹 그 학교에 가서 많이 변하셨습니까?

M 선생님.

우리는 이른바 ‘관리자’나 교사들이나 멀고 먼 길을 더 가야 할 것입니다.

저와 함께하며 눈높이를 높였다고 하시지만, 저는 우리가 너무 일찍 헤어져서 아무것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하기야 선생님께서는 저와 만난 지 1년 반 만에 떠나셨지만, 저는 3년이나 근무한 그 학교에서 하고 싶은 일의 1/10도 못해보고 떠나온 느낌입니다. 이 말씀은 교장도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했던 ‘인연’으로 부탁드립니다. 우선 혼자 하실 수 있는 일만이라도 해나가십시오.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십시오. 혼자서라도 갈 수 있는지부터 검토하십시오. 절대로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다음으로, 어서 공부 좀 더 하셔서 ‘무엇’이 되십시오. '딴소리' 하지 마시고 그렇게 하십시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교감 교장이 되면 그래도 좀 시도해볼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M 선생님은 공주님 같아서 우선 건강을 잘 지키시는 일도 중요합니다.

제 블로그에 와보셨습니까? http://blog.daum.net/blueletter01, 가끔 이곳에 오셔서 저 좀 만나주세요.

좋은 가을입니다.

추신 : 아직도 교육과정 중심이 아니고 학교경영 중심이라는 말씀이 제 가슴을 칩니다. 차라리 아직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까요?



고맙습니다, 교장 선생님


답장을 읽고 또 읽으며 제가 지금 울고 있습니다.

제가 소심한 성격이어서 지난주 일을 되돌아보며 무거운 주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황금연휴지만, 어제「자연과 평화」를 주제로 한 일본 사진작가의 전시회에 다녀오고는 책만 읽고 있었습니다. 문득문득 학교일이 생각날 때마다 앞으로는 조용히 내가 할 일을 하고, 내가 갈 길을 가야겠구나 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하면서 계셨군요. 당장 블러그에 들어갔는데 가슴이 벅차서 얼른 나왔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들어가려구요.

교장선생님과 지내며 눈높이는 높였는데도 아직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저도 무르익는 이 가을 같은 시간을 가꿀 수 있게 되겠지요.

못난 저를 예뻐해 주신 저의 영원한 교장선생님!

‘그래, 우리 반 아이들이 정답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 속에서 희망을 찾자'는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여러 사람 앞에 서면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 그래서 수업연구발표를 할 때도 불안해하는 일이 별로 없는 의외의 강심장을 가졌으므로 이번에도 며칠 지나면 가라앉고 충분히 이성적일 것입니다. 잘 견디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겠습니다. 자고나면 행복한 아침이 될 것입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