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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11세부턴 꾸중, 뇌 똑똑해진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사

by 답설재 2008. 10. 5.

그 어처구니없는 기사부터 보십시오. 제목이「9세까지는 칭찬․11세부턴 꾸중, ‘뇌’ 똑똑해진다」이고,「연령별로 ‘뇌 활성화’ 차이,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습니다. 여러 신문에 실렸을 것입니다.

 

 

“9세까지는 칭찬하고 11세부터는 꾸짖어라.”

 

9세 아동에게는 “잘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대해주고, 11세 아동에게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대해주는 것이 학습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발달심리학자인 에블린크론(Crone)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난 17일 ‘신경과학저널(The Journal of Neuro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칭찬과 꾸중에 반응하는 뇌 활성 정도가 연령대에 따라 다르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실험참가자들을 8~9세, 11~12세, 18~25세 그룹으로 나누고 이들이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 스캐너에 누워있는 동안 컴퓨터 화면에 나온 문제를 풀게 했다. 문제를 맞히면 ‘잘했어!’, 틀리면 ‘이번엔 틀렸네’라는 말을 듣게 한 후, 이들의 뇌 활성변화를 fMRI로 관찰했다.

8~9세 그룹과 11~12세 그룹에서 같은 실험결과가 나올 것이란 연구팀의 기대와는 달리, 두 그룹의 대뇌피질 부위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인지능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 부위가 8~9세 그룹에서는 칭찬에 강하게 반응하고 지적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반면, 11~12세 그룹과 18~25세 그룹은 지적에 강하게 반응했다. 크론 박사는 “어린이들에게 처벌보다는 보상이 더 효과적인 교육법이라는 게 실험을 통해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8~9세와 11~12세 그룹이 칭찬과 지적에 각각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가 경험 때문인지, 뇌 발달 때문인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크론 박사는 “뇌의 성숙과 경험이 합쳐진 작용”일 것이라고 말했다.

                                                                                                                                                                     C일보,2008.9.27.20면

 

 

C일보 기사에 실린 그림, 이보다 더 잘 그릴 수는 없을 것 같은.

 

 

이 기사가 오보(誤報)라고 한 이유는 기사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 내용은 물론 논문 혹은 네덜란드 언론의 발표를 보고 번역하여 작성된 것이겠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기자가 나름대로 기사의 내용을 간추려 결론부터 말한 첫 부분 “9세까지는 칭찬하고 11세부터는 꾸짖어라.” 외에는 하자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명쾌하게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크론 박사의 과학적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아하, 그렇구나!’ 할 수 있을 뿐 문외한으로서는 달리 무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사의 제목은 아무래도 잘못되었습니다. 핵심은, “어린이들에게 처벌보다는 보상이 더 효과적인 교육(방)법이라는 게 실험을 통해 확인된 것”이라고 말한 크론 박사의 말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기사의 제목도 ‘처벌보다는 보상이 효과적’이라는 내용으로 달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제목으로는 신문기사답지 않다고 하더라도 ‘처벌’ ‘보상’이라는 교육학적 단어들을 두고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칭찬’ ‘꾸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기사의 제목「9세까지는 칭찬, 11세부턴 꾸중, ‘뇌’ 똑똑해진다」는 전혀 엉뚱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 기사 때문에 앞으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처우를 받게 된 우리나라 11세 이상의 아이들은 억울한 아이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11세 이상의 아이들이 ‘억울한 아이들’이 되어버린 이유를 말하면, 이 기사에 대해 피상적으로는 두 가지 걱정을 했다는 것을 밝히겠습니다. 우선 인체에 유해한 멜라민인가 뭔가가 중국에서 수입되는 식품에 첨가되고 있었다는 기사, 미국 경제가 끝내 엉망이 되어 시장경제로 일관하던 미 정부가 드디어 그 시장에 개입하게 되었다는 기사들이 한창 지면을 채우고 있을 때 이 기사가 한쪽 귀퉁이에 났으므로 꼼꼼히 살펴볼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더구나 기사 속에는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이니 발달심리학자 에블린크론(Crone) 박사, 신경과학저널(The Journal of Neuroscience),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 스캐너 등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단어들이 있어서 교육에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꼼꼼히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제목만으로 그 내용을 파악하게 되고 그러면 당연히 제목이 주는 메시지를 강하게 느꼈을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다음 걱정은, 흥미로운 기사의 제목만 전달하는 우리 아파트 전광판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11세부터는 칭찬보다 꾸중이 효과적’이라고 며칠 동안 비춰주고 있었으니 그걸 본 주민들은 ‘알았어. 오늘부터 이놈을 아주 작살을 내버려야지.’ 했거나 ‘그 봐, 내가 꾸중 좀 한다고 아내는 그 야단이더니.’ 했을 것 아닙니까.

 

‘칭찬’이나 ‘꾸중’, ‘보상’, ‘지적’ 등 우리가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반응행위들도 교육적으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상당한 분량의 교육학 서적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교육적, 혹은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그리 간단한 일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9세까지는 ‘칭찬’이 효과적이고, 11세가 되면 돌연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 ‘꾸중’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11세는 무슨 11세입니까. 노인도 비난이나 부정적 반응보다는 칭찬을 더 좋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심지어 고래도 춤을 추게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9세 정도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하네, 잘하네.” 하면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11세(우리 나이 12세)가 되면 우리가 “잘하네, 잘하네.” 하면 당장 ‘이 사람이 지금 나를 놀리나?’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도 알아야 합니다. 11세 정도의 아이들을 우습게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사를 인용하여 말한다면 문제를 맞히면 당연히 “잘했어!” 해야겠지만, 틀렸는데도 “이번엔 틀렸네.” 하지 않고 “잘했어!” 한다면 그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이제 논리적, 분석적으로 ‘칭찬’을 하든지 ‘지적’을 하든지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야 우리를 신뢰하게 되고, 우리가 하는 말을 우리의 의도대로 들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논리이고,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저 사람은 우리를 일관성 있게(논리적, 분석적으로) 상대해주는구나.’(달리 표현하면, ‘이제 나를 사람 취급해주는구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발달심리학자 에블린크론(Crone) 박사는 바로 그것을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학자들은 심정적으로 상식적인 것을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증명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론 박사가 실험을 통해 밝힌 내용은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처벌보다는 보상이 효과적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 보상은 칭찬일 수도 있고, 적절한 지적일 수도 있다. 11세가 되면 대뇌가 거기에 정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과학적으로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꾸중이 효과적인 교육방법이라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 말도 되지 않는 그런 말을 했나. 틀렸을 땐 ‘이번엔 틀렸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꾸중인가. 그건 꾸중이 아니고 ‘지적’이다. 바로 그러한 지적이 일종의 ‘보상’이다. 11세가 되었다는 것은 뇌의 성숙과 경험의 축적으로 보다 적절한 보상(처우, 반응)을 기대할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합니다. 기자(편집자)들은 기사로써 독자의 눈길을 끌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목을 자극적으로 정하려고 할 것입니다. 짧은 제목 속에 그 기사 내용을 넣으려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다보면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제목을 달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위의 기사에는 분명히 ‘처벌보다는 보상이 효과적’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사의 제목은 엉뚱하게도 거의 정반대의 내용이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