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시답잖은 얘기지만 읽어보십시오. 우리 학교는 추석연휴에 이어 5일간 단기방학을 했습니다. 말이 5일이지 사실은 달랑 5일이 아니고, 추석연휴(9월 13~15일)에 이어 16일(화)부터 20일(토)까지 5일간이 방학이었고, 21일은 일요일이었으므로 다 합치면 9일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여러분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구리남양주교육청 교육장을 만났을 때 그 심정을 얘기했더니 그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방학은 학교장의 재량으로 그 기간을 정합니다. 물론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기는 합니다. 전번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다른 학교야 어떻게 하든 큰맘 먹고 추석연휴 앞뒤로 하루 정도를 더 쉬게 하려고 했더니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몇 분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시면 우리는 난처해요.”
“뭐가 난처하기까지 합니까?”
그것 참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웃으며 마지못해 대답했습니다. 제가 명절을 맞이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저기 가면 방학이니까 더 있다가 가라고 하지 않겠어요?”
올해 학사일정을 볼 때마다 그 기억이 자꾸 떠오르기도 했지만, 학기 초에는 ‘올해부터는 단기방학도 대대적으로 실시되는구나.’ 했을 뿐입니다. 아무리 ‘예시’이고 ‘권장’이라 해도 교육청 공문대로 해서 잘못 되는 경우는 거의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기방학은,
▶가족 간 유대 증진, 가족이나 효도와 관련된 각종 체험활동을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바람직한 인성을 함양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휴업일 운영으로 지역 문화활동 활성화,
▶의미 있는 휴가의 유용한 활용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의 토대 마련 등이 그 목적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또, 이러한 단기방학을,
▷학기 중에 지역 또는 학교별로 필요한 기간 동안 재량 휴업일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지역별로 동일한 시기에 초․중학교, 또는 초․중․고등학교가 연계하여 운영되도록 하며,
▷이러한 연계가 어려운 경우에는 학교별 특성에 맞추어 시기와 기간을 정하는 것이 운영방향이었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도시지역에서는 근로자의 날(5.1) 전․후, 지역문화축제 등, 농․산․어촌에서는 지역특산물축제, 농번기, 풍어기 등을 체험학습 및 토요휴업일과 연계할 수 있고,
○국경일, 기념일, 개교기념일, 지역 기념행사, 명절(설, 추석) 전후의 조상숭배, 효도, 벌초, 지역문화축제, 그리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정의 달 기념행사와 연계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연간 수업일수(230일)는 꼭 확보하도록 하였으므로 단기방학을 하는 만큼 여름․겨울 방학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의사항도 있습니다.
● 단기방학 기간이 확정되면 지역사회에 협조를 요청하고,
● 맞벌이 가정, 저소득층 자녀 및 ‘나홀로’ 학생(이런 용어 좀 쓰지 않으면 안 될까요?), 즉 단기방학 대응이 곤란한 가정 실태를 파악하여 그 기간에 등교할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고,
● 단기방학 직후에 정기학력고사를 실시하지 않아야 하고,
● 학년 초에 학사일정을 학부모들에게 알려야 하고,
● 주5일 수업제를 실시하지 않고 월 2회 등교하는 날을 단기방학으로 하지 않아야 하고,
● 저소득층 학생 중식 지원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 휴업일 조정에 따른 냉․난방비를 조정해야 하고,
● 충분한 의견수렴 및 홍보를 실시해서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서를 검토하고 단기방학을 포함한 2008학년도 학사일정을 만들었고 -어렴풋이 ‘이웃의 다른 학교는 다 방학을 하는데 우리만 등교해도 난처하겠지?’ 그런 생각도 하면서-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3월초 학부모총회 때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단기방학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연초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느낌이었습니다. ‘기나긴 여름방학이 지나고, 짧지만 추석연휴도 있는데, 거기에 다시 단기방학을 붙였구나.’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저녁 TV 뉴스를 보았더니 전국적으로 단기방학에 대한 학부모들의 비판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학사일정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조정하고 바꾸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덜컥 바꾸면 이번에는 그 기간을 위한 계획을 세워놓은 학부모들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다못해 아이들도 그러겠지요. “이랬다 저랬다, 우리 교장은 뭐가 이럴까?”
추석이 다가오자 어느 학부모님께서 교감에게 항의 전화를 하더랍니다. 설명을 했지만, 만족하지 못해서 그분은 시교육청으로도 전화를 했고, 드디어 도교육청 홈페이지에도 글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이럴 때 옛날 같으면 교육감이나 교육장이 “교장들이 뭐하고 있나! 단기방학이고 뭐고 당장 집어치워!” 하면 그만이었겠지요. 저로서는 차라리 그렇게 결정되면 마음이라도 편하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추석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그 추석이 지났는데도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는 이른바 ‘단기방학’에 해당하는 기간이 되자 그 마음은 더욱 불편했습니다. 지난 19일 아침 C일보 독자투고란에는 다음과 같은 글까지 보였습니다.
가을에 놀고 겨울에 공부하라?
초등학생인 아이의 학교에서 9월 11일부터 21일까지 단기방학을 실시하고 있다. 추선 전후로 해서 하루 이틀 더 쉬는 건 모르겠지만 일주일씩이나 쉬게 되면, 맞벌이를 하고 있는 가정은 그 기간 동안 혼자 남을 아이의 점심과 안전 문제, 정서적 쓸쓸함 등 고민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경기도 교육청에 민원을 요청했더니 전체 수업일수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학교운영위원회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형식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지 모르겠으나 이 결정은 단기방학으로 인해 고통받을 ‘절박한 소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처사다. 게다가 단기방학으로 인해 손실된 수업을 보충하기 위해 겨울방학이 짧아진단다. 선선하고 학교 다니기 좋을 때는 놀게 하다가 추운 겨울에 등교시켜 공부시키겠다니 이해가 안 간다.
이미연․회사원․경기 남양주시
이 글로 봐서는 우리 학교보다 더 긴 단기방학을 한 학교도 있구나 싶었지만 그건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 학부모들 중에도 이런 글을 썼거나 쓰고 싶은 분이 많겠지 싶어 더 안절부절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추석이 지났는데도 올해는 기온이 30도를 넘고 있으니 여름방학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
“날씨 좋을 때 야외 체험활동 하고 추운 겨울에는 실내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지 않으냐?”
그렇게 위로 겸 합리화 겸 하는 이야기들도 ‘참 시답잖다’ 싶었습니다.
미국(뉴욕)에서는 2~3학기제로 겨울방학(1주), 봄방학(1주), 여름방학(약 10주)를 하고, 캐나다에서는 초등학교는 3학기제, 고등학교는 2학기제로 겨울방학(약 2~3주), 봄방학(1주), 여름방학(약 10주)을 하며, 영국은 3학기제로 겨울방학(2주), 봄방학(2주), 여름방학(6주) 외에 약 1주일씩 두 번의 휴가를 하고, 프랑스는 3학기제로 성탄절 방학(2주), 스키방학(1주), 부활절 방학(2주), 여름방학(8주), 제성절 방학(1주)을 하며, 일본은 3학기제였지만 최근 2학기제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데 봄방학(약 10일), 여름방학(약 40일), 겨울방학(약 10일)을 하고, 오스트레일리아는 4학기제로 봄방학(4.6~4.22), 여름방학(6.30~7.15), 가을방학(9.29~10.14), 겨울방학(12.22~1.28)을 하며, 중국은 2학기제로 겨울방학(1월하순~2월말), 여름방학(7월말~8월말)을 하고, 러시아는 4학기제로 가을방학(11.2~11.9), 겨울방학(12.24~1.10), 봄방학(3.24~3.31), 여름방학(6.24~8.31)을 한다고 했지만, 우리 문화는 그런 나라와 다르다는 것, 갑자기 그런 문화에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 우리나라 각 지역사회가 어디 그런 나라들처럼 휴일에 아이들끼리 마음놓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마을별 문화․교육 시설을 갖추었느냐는 것도 감안했어야 할 것입니다.
학부모들이 보낸 의견도 찾아보았습니다. 마음속에 담긴 생각이나 의견을 다 썼겠습니까? 교장에게 꼭 하고 싶은 꼴사나운 얘기가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참았겠지요.
“아이가 아주 좋아합니다.”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로운 기간입니다.”
“웃어른,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어 좋습니다.”
“친정 가는 데 부담이 없어 좋아요.”
이처럼 긍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부정적 의견도 많았습니다.
“취지는 좋은 게 틀림없지만, 일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여간 걱정이 아니에요. 아이가 쓸데없이 배회하거나 무료하게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집에 아무도 없어서 할 수 없이 학교에 보낼 것입니다.”
“명절 다 지나고 또 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기간이 너무 기네요.”
“좀 기네요.”
“겨울방학을 길게 하고 좀 줄여주세요.”
“단기방학은 없는 게 좋겠어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안해서 할머니 댁에 아이를 맡겨야 해요. 단기방학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일을 해야 하는 처지여서 아이 점심도 해결이 안 되고 마음이 무거워요. 좋은 기회이지만 난감할 뿐이에요.”
“1주일 이상 쉬면 일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불편해요.”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부탁도 많았습니다.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좋겠어요.”
“모든 프로그램에 다 참여시킬 테니까 시간활용이 잘 되게 해주세요.”
“학교의 프로그램이 좋아서 집에 있는 것보다는 좋겠어요.”
“TV나 볼까봐 학교에 보냅니다.”
“다양한 활동을 체험시켜주실 거죠?”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잘 운영해주세요.”
“다음에는 체육활동도 시켜주세요.”
“외부의 좋은 프로그램도 소개해주세요.”
내년에도 단기방학을 할지, 한다면 올해와 똑같이 할지, 아니면 그 기간을 줄이거나 늘일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올해와 같은 방법으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학교의 특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자존심 상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학교에 나오고 싶어도 자존심 때문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학교에 나오는 것이 자존심 상할 때도 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건 자존심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하겠습니다.
요약하면, 올해의 단기방학에 대해서는 교장으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 다 했는데도 “할 말이 없다"고 표현하고 싶은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결국 ‘경솔했기 때문에 송구스럽게 되었다’면 제 심정을 이해하실까요? 덧붙이면 이건 순전히 교장 책임입니다. 선생님들은 제 결정을 따른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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