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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용산역에서 만난 여인

by 답설재 2008. 11. 11.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여성을 봤습니다. 지난 10월 31일 저녁, 익산 전라북도교원연수원을 다녀오는 길의 용산역에서였습니다.

 

 

 

 

 

 

그곳 서경주 선생이 전화로 강의 요청을 해주었습니다. 그분은 명함 대신에 원광대학교에 근무하는 부군의 작품을 영인(影印)한 그림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 그림의 가을색이 아름다워서 탁자 위에 끼워두었습니다. 만추(晩秋)의 가을꽃과 붉은 열매 저 위 여백에는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김용택,「가을」)로 시작되는 시 한 편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였겠지요. 여정이 정겨웠고, 그 느낌이 돌아오는 역에까지 이어졌습니다. 개찰구를 나오려고 줄을 서 있는데, 길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할아버지~!"

 

아이는 할아버지가 어서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할아버지들이 다 그와 같은 환영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할아버지도 개찰구를 얼른 나설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아이의 바로 뒤에서 미소 짓고 있는 한 여인이 그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을 뿐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남자가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살고 있는지 살펴봤더니 이상도 하지, 그 남편은 볼품없는 남자였습니다. 남자가 복이 많은 건지, 여인이 속은 건지……. 확실한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부인에게 그는 허름한 옷을 입혀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른 그 가족을 다 파악했습니다. 아이와 그 부모, 조부모, 모두 다섯 명이었고, 아이와 그 어머니 말고는 모두들 크고 작은 짐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아빠나 엄마, 할머니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내 할아버지의 한손을 잡고 깡충깡충 리듬을 타며 뛰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보았습니다. 그 여인의 아름다움을 한 번만 더 보려고 했기 때문이었지만, 그 욕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세상에! 다시 쳐다본, 그 얼굴에서 이제 미소가 사라진 그 여인은, 그냥 평범한 여인일 뿐이었습니다. 용산역 같은 곳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이의 외침과 함께한 그 미소, 그 아름다움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 일 이후 열흘 동안 생각한 것은,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의 아름다움은 주로 아이들과 함께할 때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타고난 아름다움에 화장을 곱게 해서 뭇 시선을 모으는 여인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이 아이들의 마음 곁에 있다면, 아이들의 마음과 함께라면, 더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假定)입니다. 시시한 것까지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우리는 이 아이들을 그런 마음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돼지가 제 새끼 키우듯 제 자식 잘 챙겨주란 말은 아닙니다. 그러면 짐승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짐승 같은 부모가 어디 한둘입니까.

 

제가 아이들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된 것은, 전번에 근무한 학교에서 만난 어느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아이들의 아름다움'이라는 결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 결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한없이 떳떳하고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어느 독자가 이야기해준 바로 그 일입니다.*

 

저 쪽에서 그 복도를 사정없이 뛰어오는 한 여자애를 보았습니다. 화장실로 향하던 저는 그 애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섰습니다. 엎어지면 그 차갑고 견고한, 무지막지한 시멘트 바닥에, 고 여린 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아이는 멈추기는커녕 순식간에 제 앞에 이르러 '팔짝' 뛰어오르는 순간 두 팔로는 제 목을 감고 두 다리로는 제 허리를 감았으므로 '우리'는 그만 더없이 다정한 사이가 되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비벼댔습니다. 아이의 따듯함과 포근함이 제 가슴속으로 파도처럼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에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 있고 싶었으나 "조심해. 넘어지면 안 돼?" 귓속말을 하고 내려놓았습니다. 그 애는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나는 지금 바쁘다'는 듯 다시 뛰었습니다. 1학년 아이였습니다.

 

'머리'와 '생각'만으로 살아온 교장은 '가슴'과 '사랑'으로 살아가려는 그 애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교육자'란 이름을 가진 자신의 단순함과 초라함이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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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2008.10.22 09:06

성복에서 1층 복도를 전력질주하는 1학년 꼬맹이를 보고 뛰지말라는 뜻으로 교장선생님께서 두팔을 벌렸더니 교장선생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는 그 전설(?)이 생각납니다
평소에 그 아이의 눈에는 교장 선생님이 푸근하게 느껴져 당연히 안아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한 그 1학년 꼬맹이...
왜 갑자기 그 장면이 연상되는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비가 뿌리는 수요일입니다^*^

 

  파란편지 2008.10.22 09:44


교장인 제가 참 한심한 관리자(?)의 입장만으로 다가갔지만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교장도 사랑밖에 모르는 사람인 줄 알고 사랑만으로 다가와 저에게 안기던 그 기억이, 다시 꺼내어보니까 어제 일 같습니다.
그 아름다운 꼬마아가씨의 가슴은 참 따뜻하고 아늑했으므로 저는 이 나이에 그 아이로부터 '사랑'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아, 사람은 꼴 같지 않은 이성만으로 사는 것보다 보잘 것 없지만 조막만한 사랑이라도 그 사랑으로 사는 것이 더 좋구나.' 어렴풋이 그런 것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서로 부둥켜 안고 착 달라붙어 서로의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 너무나 좋았지만 아직도 저는 정신을 못차리고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었을까요? "조심해. 넘어지면 안 돼? 자, 그만 내려." 했으니까요.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