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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학교자율화 단상 Ⅱ

by 답설재 2009. 4. 21.




우리나라 교육행정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가령 학교에 산불조심 관련 공문을 주고받지 않으면 온나라에 산불이 훨씬 더 많이 날 것이라는 듯합니다. 교통사고가 걱정이면 교통사고를 예방하라는 공문을 보내면 되고, 학교폭력이 걱정되면 학교폭력 자진 신고 및 피해 신고 관련 공문을 보내면 된다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긴 합니다. 현장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을 할 때는 안전띠를 꼭 착용하라는 공문이 오면 그걸 전달하여 경각심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공문을 주고받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런 공문까지 주고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살다가보니까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그러다보니까 주의하라는 공문을 보내게 되었고, 이제는 만사(萬事)를 공문으로 처리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사고방식이 공문에 푹 젖어서 어떤 일에나 공문이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한 그런 ‘신세’가 된 것입니다.


교장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무엇을 좀 해보자고 하면 공문에 그런 내용은 없다고 하고, 아주 간단한 일도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으면 당황해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그런 의식은 어제오늘에 형성된 것은 아니어서 일찍이 『국화와 칼』(1946)이라는 문화인류학의 명저(名著)에서 루스 베네딕트는 이렇게 썼습니다(김윤식․오인석 역, 을유문화사, 1994, 31쪽).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정을 얻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아, 일본인들은 그렇구나' 하지 말고 그 자리에 '한국인'을 넣어 읽어보면 어울린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백지(白紙)에 마음대로 작성해도 좋은 문서까지 우선 박스부터 만들고 그 박스에 몇 개의 칸을 그려서 그 양식에 맞추어 문서를 작성해야 제대로 하는 것 같고 안심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으로 서류를 만드는, 말하자면 누가 속박해주지 않으면 스스로라도 스스로를 속박해야 안심하게 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교육자들이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슨 수로 이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길러줄 수 있겠습니까.


공문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그런 공문을 보내지 않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어려운 일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나 교육청 담당자는 그런 공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앉아 있다가 무슨 사고가 나면 당장 윗사람의 불호령을 받기 일쑤일 것입니다. "그런 공문 하나 보내지 않고 그렇게 멍청하게 앉아 있으니 그런 사고가 나지 않느냐!"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육행정은, 앨빈 토플러의 표현처럼 송두리째 다 바뀌어야 합니다("Chop off Your Education System" 2008 대한민국 국회초청 연설에서). 어느 한 부분이 바뀐다고 전체적인 경향이 쉽사리 바뀔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송두리째 바꾸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과감한 시도가 바로 지난 2008년 4월 15일,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자율화 조치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그동안 학생들을 꾸중하거나 좀 때려주는 방법, 하다못해 교복을 사 입히는 방법까지 일일이 다 가르쳐주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앞으로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알아서 교육하라는 조치를 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 조치 후 1년간 우리 교육현장은 좀 변했습니까? 변한 부분이 단 한 가지라도 있습니까? 교육과학기술부의 권한과 간섭을 줄이고 시․도와 시․군․구 교육청의 권한과 책무를 강화하려고 한 것이 그 의도였다면, 왜 ‘학교자율화’란 이름을 붙였습니까?


우리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교원이나 교육행정가도 있을 것입니다. '공문이 내려와야 자율화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 그런 교원, 그런 행정가가 있는 나라라면 우리의 학교자율화는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신기루입니다. 이미 그 징조가 보이지 않습니까? '학교자율화' 조치는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젠 그걸 언급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흐지부지되고 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장은 근무 중 숨을 몇 번 쉬고, 교사들은 대체로 몇 번 정도를 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문을 기다리는 교원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에이, 아무려면…….'입니까? 그렇지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교장은 하루에 순시를 몇 번 하고, 교사들은 대체로 몇 번 정도 순시를 하라.' 그런 공문은 있을 듯합니까?

그것도 농담이어야 합니다. 우리 이제 한번 실제적인 예를 들면서 얘기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