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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스승의 날 1 (훈화)

by 답설재 2009. 5. 15.

 

 

 

스승의 날입니다. 무슨 위원회인가 하는 곳에서 우리 교사들의 자동차 트렁크 좀 보자고 오는 거나 아닌가 싶기도 했고, 다른 어떤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교장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며칠 전, 호기롭게, 이 골짜기의 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나도 그냥 있지 않겠다고 했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참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다행히 아침나절에 어느 교사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은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좀 쑥스러워하며 소개합니다).

 

교장선생님.

오늘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고 저의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성남의 모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하신 선생님이 구리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실 때 전 그 옆에 있는 부양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신출내기 교사였습니다.

이웃학교와의 체육대회 때 뵌 담임선생님은 여러 선생님들께 "이 사람이 내 제자다. 이제는 나와 함께 교직에 있다"고 하시며 흐뭇해하셨습니다. 별반 내세울 것도 없는 저였지만 선생님의 눈에는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지난겨울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용신초등학교에서 5학년 때 담임한 아이였는데 인천외고에 합격했다면서 선생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전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 주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아이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쁘던지 올해 맡은 4학년 아이들에게 그 아이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해 주었습니다. 마치 제가 잘 가르쳐서 좋은 학교에 간 것처럼……. 제자의 기쁨이 제 기쁨이고, 제자가 잘된 것이 마치 제 자식이 잘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흐뭇해지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오늘 교장선생님 말씀은 교사들의 그런 마음을 웅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라는 노랫말처럼 제자 잘된 것을 싫어하거나 질투할 교사는 없으니까요.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은 저희들의 인생의 스승, 교직의 스승이십니다. 교장선생님과 같은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오늘날의 저희들이 있음을 감사하며 살지만, 정작 꼭 해드려야 할 말은 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교장선생님이나 퇴임하신 ○○○ 선생님이나 지금 이 학교에 계시는 ◎◎◎ 선생님 같은 선배 선생님의 따뜻한 가르침과 배려를 항상 마음속에 담고 살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표현하지 못하고 삽니다.

직접 찾아뵙고 드려야 할 말씀을 서신으로 대신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 사랑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스승의 날에 K 드림.

 

 

K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오늘 아침 저의 훈화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착하고 성실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몇 사람인가? 건강하고, 지혜롭고, 명랑하고, 용감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몇 사람인가?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몇 사람인가? 그건 누구누구인가? 지금 말해 보라고 하면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을 것 같은가? 많을 것 같다고 짐작만 한다면 착각이다. 실제로 손가락을 꼽아 보면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여러분이 이른바 '성공'했을 때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내내 잘하기를 기원할 사람은 몇 사람인가?

부모와 선생님뿐이다. 다섯 손가락을 꼽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부디 선생님 속상하게 하지 말고 기분 나쁘게 하지 말라. 말씀 계실 때마다 어떤 말씀이거나 간에, 여러분은 아이들이니까 잘못한 일이 있을 때 혹 꾸중을 하시더라도 그 말씀을 다 듣고 나면 꼭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해라. 알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