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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45

이 현 글·김경희 그림 《귀신백과사전》 김경희 그림·조현설 감수, 『귀신백과사전』(푸른숲주니어, 2010)이 현 글·김경희 그림 《귀신백과사전》푸른숲주니어 2010       # 외손자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녀석은 귀신에 대해 '천착(穿鑿)'하고 있는지 걸핏하면 자다가 깨어 제 아비어미의 잠을 설치게 한단다. 그럴 때마다 물으면 귀신 꿈을 꾸었다는 것이고, 그런 날 낮에는 틀림없이 책에서 귀신이라는 단어라도 본 날이라는 것이다. 해서 지난해 여름 이 책이 나온 것을 봤을 때는 '녀석이 귀신을 잡도록 해주자면 우선 귀신의 정체부터 파악하게 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당장 구입해 두었는데,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녀석에게 전해 주지는 못하게 된 까닭을 기록해 두고자 한다.  # 책을 뒤적뒤적 훑어보다가 '이것 봐라!' 싶게 되었고, 드디어.. 2011. 7. 3.
이성의 처참한 비극 ……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선고받는 위협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이 단 한 가지 우월성만을 인정한다. 즉,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자기가 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무렵의 여러 세기에 걸쳐 가장 모범적인 삶과 사상이 무지(無知)의 당당한 고백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리면서, 우리는 우리의 사내다움을 잊어버렸다. 우리가 택해 온 것들은, 오히려 위대함을 흉내내는 일, 첫째로 알렉산더, 그 다음에는 우리의 교과서 저자들이 더할나위 없는 어떤 비속함으로 우리에게 찬미하도록 가르치는 로마의 정복자들이다. 우리 역시, 정복하고, 국경들을 옮기고, 하늘과 땅을 지배해 왔다. 우리의 이성은 모든 것을 쫓아 버렸다. 마침내, 우리는 혼자서 한 사막을 지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자.. 2011. 7. 1.
아름다움의 추방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방해 왔지만,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무기를 들었다. 이것이 첫 번째 차이이나, 여기에는 어떤 내력이 있다. 그리스 사상은 언제나 한계의 개념 뒤에서 은신처를 구했다. 그리스 사상은, 신적인 것이든 이성적인 것이든 그 어떤 것도 극단으로 이끌고 가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 사상이 신적인 것도 이성적인 것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상은, 그늘과 빛을 조화시켜 가면서 모든 것을 고려에 넣었다. 반면에 우리 유럽은 완전성을 추구하다가 탈이 난 불균형의 자식이다. 유럽은, 자신이 찬양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부정하듯, 아름다움을 부정한다. 그리고 온갖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 유럽은 단 한 가지만을 찬양하는데, 그것은 미래의 이성(理性)의 지배이다. 유럽은 미쳐서 영원한 .. 2011. 6. 29.
번역(飜譯) 우리는 왜 아프게 되는지, 우리는 왜 죽게 되는지,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비명(非命)에 죽는 경우는 자살과 타살의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와 다른 사람이 죽이는 경우. 그런데 그게 애매하기도 합니다. '그는 죽어야겠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일까?' '다른 요인은 없었을까?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다른 사람이 그 이유를 만들어 주거나 최소한 부추긴 것은 아닐까? 오히려 대부분 그런 경우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프니까 그만두겠습니다. 자살에 대해서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자살을 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명쾌한 설명을 찾을 수 있는데, 다만 번역에 차이가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게 어느 쪽이 더.. 2011. 6. 22.
작자 미상 『仁顯王后傳』 Ⅲ 李相寶 敎註 『仁顯王后傳』 을유문화사 1971 인현성모민씨덕행록 화설(話說)1, 조선국 숙종대왕 계비(繼妃)2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의 본은 여흥(驪興)이시니, 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3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둔촌(屯村)4의 여(女)시요, 영의정 송동춘 선생(宋同春先生)5의 외손이시라. 모부인(母夫人) 송씨6기이(奇異)하신 신몽(神夢)을 꾸시고 정미(丁未)7 사월 이십 삼일 탄생하오시니, 집 위에 서기(瑞氣) 일어나고 산실에 향취옹실(香臭擁室)하여 오래 되도록 없어지지 않으니 부모 지기(知機)8하심이 있어 가중(家中)에 말을 내지 못하시게 하시더라. 잠깐 장성(長成)하시매 정정탁월(亭亭卓越)하사 화월(花月)이 부끄리는 듯하시고, 용안이 황홀찬란(惶惚燦爛)하사 백일(白日)이 빛을 잃으니 고금(古今).. 2011. 6. 20.
열상고전연구회 편 『韓國의 序跋』 열상고전연구회 편 『韓國의 序跋』 바른글방, 1993 초판 3쇄 '서발(序跋)'이 뭔가 하면 서문과 발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 옛 책에서 서문과 발문만을 골라 모은 책입니다. 물론 한문으로 된 글은 번역(역주譯註)을 하고 원문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멋진 서문과 발문을 모은 책이므로 당연히 멋진 책입니다. 혹이나 싶어 인터넷 서핑을 해봤더니 역시 '품절'입니다. 그런 책을 소개하려니까, 이런 경우 전에는 좀 고소했는데 이젠 가슴이 좀 아픈 걸 보니까 많이 뉘우친 것 같습니다. 멋진 서문과 발문들이, 시문집(詩文集)·시선(詩選)·문선(文選)·가집(歌集)·문학연구(文學硏究)·역사(歷史)·사상(思想)·어학(語學)·기행문(紀行文)·인물지(人物誌)로 나뉘어 소개되었습니다. 아래에 '역사' 중에서 『징.. 2011. 6. 18.
작자 미상『인현왕후전』Ⅱ 『인현왕후전』 구인환 엮음, 신원문화사, 2003 '인현왕후전'은 조선 시대 숙종 당시의 궁중을 배경으로 인현왕후가 겪은 생애를 소설체로 엮은 작품으로, '한중록' '계축일기'와 더불어 궁중문학의 대표작입니다. '인현왕후전' 예전에 U문고에서 나온 그 '멋진 책', 잃어버린 책을 너무나 그리워해서 그렇지, 그런 마음을 잊고 읽으면 다른 책도 얼마든지 좋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여기에 보여드리는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장정마저도 작품에 나오는 인현왕후의 모습을 닮도록 하려고 했는지 정갈하고 아름답습니다. …(전략)… 점점 장성하시매 정정탁월(亭亭卓越)하사 화월(花月)이 부끄리는 듯하시고 용색(容色)이 찬한 숙녀이시.. 2011. 6. 14.
작자 미상 『인현왕후전』Ⅰ 작자 미상 『인현왕후전』 전규태 주해, 범우사 2006 첫머리입니다.1 인현왕후의 모습을 그리며 읽으면, 기가 막히다는 말 아니고는 달리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책을 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글을 , 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블로그라는 걸 마련해 놓고 날마다 들여다보며 지내는 자신이 처연하고 서글퍼집니다. 조선국 숙종대왕肅宗大王의 계비繼妃2이신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의 본本은 여흥驪興이시니, 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3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둔촌屯村 민공4의 따님이시며, 영의정領議政 동춘同春 송 선생5의 외손이시니라. 모부인母夫人 되시는 송씨가 기이한 태몽胎夢을 꾸시고 정미丁未6 사월 스무사흗날 탄생하오시니 집 위에 서기瑞氣가 일어나고 산실.. 2011. 6. 10.
이기규 지음·이상권 그림 『용튀김 1·2·3』 이기규 지음·이상권 그림 『용튀김 1·2·3』(여우고개, 2011) '신화와 전설을 요리하는 이상한 분식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지요. 옆집에 살고 있던 형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개천 건너편에 있는 하수처리 시설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건너편에 보이는 게 뭔지 알아? 바로 용의 무덤이야." "와! 정말이야?" 저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습니다. 물론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커다란 금속 덩어리가 절대 용의 무덤이 될 수 없다는 것쯤은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왠지 그 순간…… 강둑에서 슬며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아무렇게나 자라난 잡초들이 흔들리며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던 그 순간에.. 2011. 4. 8.
리처드 D. 루이스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 리처드 D. 루이스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 박미준 옮김, 살림 2008 '핀란드는 잘난 체하지 않는 나라다.' 잘난 체하는 사람이 많듯이 잘난 체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핀란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가 혹 그렇게 볼까봐 자제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핀란드는 OECD 국가들을 중심으로 실시되는 국제학력평가연구(PISA)에서 늘 1위를 차지합니다. 그 나라는 우리처럼 사교육에 빠져 있다든가 밤 10시까지 '야자'를 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 나라 학생들은 즐길 건 즐기며 생활합니다. '즐길 건 즐긴다'? 그 표현이 별로 마음이 들지 않는군요. 야비한 것 같고 경망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싸구려 같기도 합니다. 그저 사람답게, 정상적으로 지낸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다른 건 두고라도 .. 2011. 2. 14.
존 제이 오스본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존 제이 오스본·구히서 옮김,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일월서각, 1978.12.10. 초판발행, 1980.2.20. 10판 발행) 옮긴이가 具熙書이니까 구희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교보문고에서 요즘도 이 책이 팔리고 있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졸저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2005, 아침나라)에 실었던 글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책 소개는 아닙니다. 이 책을 보고 생각나는 일들을 적은 글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이 어떤 책인가를 알고 싶어서 들어오신 분은 이쯤에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는 복도를 따라 걸어가며 방문마다 멈춰 서서 안의 동정을 살폈다. 한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아직도 누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마치 쳇바퀴 같은 것이다. 아직 잠을 안 자.. 2011. 2. 9.
피히테 『독일 국민에게 고함』 피히테 《독일 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 Nation황문수 역, 범우사 1994(2판5쇄)                                              Ⅰ  지난 토요일 저녁에는 8시30분부터 세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EBS의 재방송을 봤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베스트셀러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벤담의 공리주의, 공리주의의 문제점, 자유지상주의와 세금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12부작으로 방송 중이니까 겨우 1/4을 시청했고 앞으로 그걸 다 보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강의는 하버드대 학부생 7000명 중 1000명이 수강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강의라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보기 전엔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던데 했지.. 2011.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