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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리처드 D. 루이스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

by 답설재 2011. 2. 14.

리처드 D. 루이스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

박미준 옮김, 살림 2008

 

 

 

 

 

 

'핀란드는 잘난 체하지 않는 나라다.'

잘난 체하는 사람이 많듯이 잘난 체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핀란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가 혹 그렇게 볼까봐 자제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핀란드는 OECD 국가들을 중심으로 실시되는 국제학력평가연구(PISA)에서 늘 1위를 차지합니다. 그 나라는 우리처럼 사교육에 빠져 있다든가 밤 10시까지 '야자'를 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 나라 학생들은 즐길 건 즐기며 생활합니다. '즐길 건 즐긴다'? 그 표현이 별로 마음이 들지 않는군요. 야비한 것 같고 경망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싸구려 같기도 합니다. 그저 사람답게, 정상적으로 지낸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다른 건 두고라도 그 나라 학생들이 그렇게 생활하는 그게 저에게는 미스테리입니다.

 

핀란드는 우리나라 교육자들에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나라입니다.1 권력을 가졌거나 조건이 맞는 분들은 그 먼 나라를 잘도 다녀옵니다. 저도 그 나라만큼은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가보고 와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정말이지 그건 부러웠습니다. 제가 만약 가보고 왔다면 그동안 핀란드 얘기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참 답답한 것은, 핀란드를 갔다온 사람들의 얘기는 서로 달랐습니다. 정말인지 모르지만 선조 때 일본을 다녀온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 부사 김성일(金誠一)의 보고가 "일본은 우리를 침략할 것" "전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서로 완전히 달랐던 것처첨.

신문에 난 얘기들은 더욱 그랬습니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한 부분을 강조·확대하여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더구나 저 같으면 할 말이 많아서 두고두고 이야기할 것 같은 나라인데, 다녀와서 한번 얘기하고는 대부분 그만인 것 같았습니다. 살아가는 일에 바빠서 이야기할 여가도 없는 것일까요? 선생님들이나 교육행정가들을 만나면 지쳐 있기 일쑤고 얼이 빠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핀란드 얘기조차 못하는 것일까요? 그러려면 뭐하려고 갔다 왔나 싶습니다.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핀란드는 각자 자신의 입장을 살려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하기에 좋은 나라다!'

 

 

 

 

그러다가 책이라도 보자 싶어 찾은 것이 이 책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 : 국가 경쟁력 1위의 비밀』입니다.

  

표지의 책이름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유럽의 변방 국가 핀란드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국가가 되었는가   800년간의 스웨덴 지배, 100년간의 러시아 통치, 독립 후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와의 전쟁 그리고 패배 ……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수백 년에 걸친 시달림을 받고도 끝끝내 자신들의 독특한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을 온전해 보전해 낸 핀란드. 그 핀란드의 독특한 역사와 민족성을 살펴봄으로써 '국가 경쟁력 1위'의 비밀을 살펴본다.

 

덧씌우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핀란드에서는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

- 버스·기차·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한다.

- 핀란드의 우유와 커피 품질은 세계 최고이다.

 

 

 

 

그런 자랑은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입니까? 무엇보다 전자제품 수출 등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그들에 비해 결코 그렇게 뒤지는 것은 아닙니까? 장담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신문엔 눈 얘기가 많았으니까 제쳐두기로 하고, 지난 토요일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보였습니다.2

 

- 고속으로 달렸더라면… 국산 KTX, 광명역 진입중 탈선, 참사 날 뻔   - 수도권 2000만명 먹을 물이 위험하다. 한강 상류 가축 매몰지 32곳 조사 결과 16곳이 침출수 유출·붕괴 위험   - 물가대란 : 저소득층, 성장혜택 못받고 高물가 고통은 제일 먼저 받아. 저소득 가계 식료품 비중 고소득 가계의 4배 달해     "할인혜택 등 지원책 시급"   - 전세대란 : 남은 임대매물 70~80%가 월셋집… 월세로 내몰리는 세입자   - 전세대란 뒤의 더 큰 폭발 : 640만 세입자 가구의 아우성이 내년 총·대선에서 어떻게 표출될지 조목돼   - 낙동강변에 묻힌 트럭 2만대분 쓰레기

 

하필이면 그런 기사가 많이 난 날짜의 신문을 봤기 때문입니까?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   목차입니다.

 

01 금메달 국가   02 핀란드의 기원   03 핀란드의 지리   04 핀란드의 역사   05 독특한 핀란드 언어

06 핀란드인의 신념과 가치체계

07 핀란드인의 의사소통   08 리더십   09 수오미 쿠바와 까다로운 핀란드인   10 북유럽 내의 핀란드   11 핀란드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   12 핀란드의 남성과 여성   13 시공간 개념   14 유머   15 영원한 담비 - 노키아 이야기   16 핀란드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17 핀란드의 과거, 현재, 미래

 

 

 

 

책 내용을 조금 옮기겠습니다.

 

게다가 문화는 복합적이고, 국민들은 은둔을 즐기며, 지리적으로도 구석에 위치해 있다. 이 3요소에 더해 외부와의 차단막을 더욱 두텁게 하는 것은 바로 원체 숫기가 없고 자기 자랑을 싫어하는 이 민족의 본성이다.(17쪽, '서문'에서)

 

우선 교육부문을 보면 핀란드는 경제개발협력기구가 실시한 읽기·수학·과학 등 기초학력평가에서 유럽 지역 선두이다. 세계적으로도 기초학력에서 핀란드에 필적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20쪽, '금메달 국가'에서)

 

핀란드의 경쟁력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최고이다. 경제적 창의성 지수에서는 공동 1위이고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미국을 훨씬 앞서 스웨덴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자금융 사용률 1위, 인터넷과 휴대전화 보급률 1위, 디지털 광섬유망 보급률 100%일 뿐 아니라 전 유럽의 의료 바이오 기술 관련 산업의 10%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위와 같은 쪽)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핀란드 총리를 지낸 파보 리포넨은 가장 카리스마가 없는 핀란드 정치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과장된 표현과 사교적인 잡담을 꺼리는 그는 대신 자신의 일을 묵묵히, 진지하게 처리하는 쪽을 선호했다. 2003년 4월 총선에서 리포넨에 이어 총리 자리에 오른 아넬리 예텐마키는 국회에서 미심쩍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두 달 만에 사임해야 했다.(22~23쪽, '금메달 국가'에서)

 

무지개 내각이란 1990년대에 리포넨이 최초로 구성한 내각으로서 좌익 성향에서부터 우익 성향까지 모든 정치적 스펙트럼을 포괄하며, 모든 정당이 협력하여 산업계·학계·정부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한다.(25쪽, '금메달 국가'에서)

 

이런 내용을 인용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부록에는 이런 자료도 보입니다. '국가별 올림픽 메달 순위-상위 20위' 핀란드 531개, 인구 100만 명당 메달 수 106.0개(세계 1위)

 

 

 

 

이 책을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지 오래된 것 같았는데, 책을 펴보니까 겨우 2008년에 나온 책입니다. 읽고나서 바로 '이 책을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게 강박관념처럼 된 것 같습니다.   아! 그렇게 좋은 책이냐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핀란드에 관한 책을 찾은 당시에는 이 책이 눈에 띄었을 뿐입니다.    이제 그 비밀, 표지에 빨간 글씨로 쓰인 '핀란드의 국가 경쟁력 1위의 비밀'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리처드 D. 루이스에게는 미안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제가 보기엔 이 책에는 그 비밀이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책을 읽고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은 있습니다.

 

'핀란드는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상식적으로 결정되고 처리되는 나라다.'

사소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덧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핀란드에서는 권한을 휘두르면 살아남지 못한다.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면 되는 나라다.'

 

이런 생각이 편협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핀란드는, 다녀온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떻게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은데 하물며 책 한 권을 읽고 생각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라도 끝까지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핀란드는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상식적으로 결정되고 처리되는 나라다. 그러니까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그 나라는 큰 장애 없이 오랫동안 그 발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에 관한 이 책을 읽고 제가 가지게 된 생각에 비추어 우리 교육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작정입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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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조선일보, 2011.2.12. [본문으로]
  3. 오늘은 점심 때 대전역 앞 식당에서 만나자는 교수들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이 자료를 정리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늦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