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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작자 미상 『인현왕후전』Ⅰ

by 답설재 2011. 6. 10.

작자 미상 『인현왕후전』

전규태 주해, 범우사 2006

 

 

 

 

 

 

첫머리입니다.1

인현왕후의 모습을 그리며 읽으면, 기가 막히다는 말 아니고는 달리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글을 <쓴다는 것>, <멋진 글을 써보자고 노력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블로그라는 걸 마련해 놓고 날마다 들여다보며 지내는 자신이 처연하고 서글퍼집니다.

 

조선국 숙종대왕肅宗大王의 계비繼妃2이신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의 본本은 여흥驪興이시니, 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3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둔촌屯村 민공4의 따님이시며, 영의정領議政 동춘同春 송 선생5의 외손이시니라.

모부인母夫人 되시는 송씨가 기이한 태몽胎夢을 꾸시고 정미丁未6 사월 스무사흗날 탄생하오시니 집 위에 서기瑞氣가 일어나고 산실産室 안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은은하여 부모들이 소중히 생각한 나머지 집안 식구들로 하여금 이런 말을 내지 못하게 하시니라.

점점 장성하심에 남달리 재주가 뛰어나시고, 용색容色이 찬란한 숙녀淑女이시며, 고금古今에 비할 데 없으시고 여공女功7과 몸의 거동 하나하나가 민첩하기 이를 데 없어 마치 귀신이 돕는 듯하시되 그런 내색을 하시는 일이 없으시고, 마음쓰심이 언제나 한결같이 변동이 없으시고 숙연肅然8하사 희로喜怒를 타인이 알지 못하며, 무심무념無心無念한 듯하시고 성질이 부드럽고 성덕聖德이 온화하시며, 효성이 남달리 뛰어나시고 마음됨이 겸손하시어 모든 면에서 뛰어난 분이어서, 종일 단정히 앉아 계시는 모습이 위연한 화기和氣 봄볕과 같으시되, 단엄침중端嚴沈重9하신 기상(氣像)이 감히 우러러뵈옵기 어렵고, 맑고 좋은 골격骨格이 설중매雪中梅와 같으시고 높고 곧은 절개는 한천송백寒天松柏 같으시니, 부모와 집안 어른들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원근 친척이 다 기이함에 놀라고 탄복하여, 어릴 적부터 동경치 않는 이 없어 향명香名10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더라.

(후략)

 

 

그런 느낌을 -세상에! 이처럼 간절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있을 수 있는가!- 그 어떤 책보다 강하게 안겨 준 이 책의 첫머리를, 일전에 서점에 가서 다시 읽고 '아! 이 책이 내가 잃어버린 바로 그 책이구나' 하고 당장 구입해 왔습니다.

'잃어버린 책'.

오래 전에 1969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U문고의 《仁顯王后傳》을 읽었습니다. 인현왕후는 숙종의 계비였는데, 그 인현왕후를 모셨던 어느 궁인이 정조 때에 이르러 인현왕후의 생애를 소설체로 엮은 작품이 바로 이 책입니다. 기록을 보면 역사성은 낮다고 되어 있지만, 우아한 그 표현과 글쓴이(未詳)의 애끓는 마음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읽어보려고 그 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정성 들여 읽고 마음에 담아 둔 그 책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서점에도 나와 있지 않아서 출판사에 전화를 했더니 ‘절판된 지 오래’라고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나는 것은, 그 책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주며 자랑했으므로, 그 자랑을 들은 사람들 중의 어느 한 명이 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비교적 얇은 그 책을 주인 몰래 '슬쩍'한 것이지요.

 

 

잃어버린 것, 잃어버린 책에 대한 그리움은 메울 길이 없습니다.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어떤 책을 읽어도 U문고의 《仁顯王后傳》, 그때 그 감흥을 되살려 주지는 못했습니다. 잃어버린 그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질 않았습니다. 그런 채로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다시 다른 출판사의 책을 구입해 읽어보고, 또 다른 출판사의 책을 찾아다녔습니다.

기억 속의 그 느낌을 그리워하며 읽은 책들을 일일이 옮길 수는 없습니다. 무작위로 단 한 권만 골라 첫머리에서 인현왕후의 모습을 그린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냥 ‘이게 인현왕후전이구나’ 하고 읽으면 몰라도, 그 느낌이 얼마나 서로 다르고 세세한 부분의 뜻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인현성모 민씨 덕행록(仁顯聖母閔氏德行錄)』11

 

…(전략)…

점점 자라나면서 자태가 뛰어나 꽃과 달이 부끄러워하는 듯하고 얼굴이 황홀하게 아름다워 태양이 빛을 잃으니, 고금에 비할 데가 없고, 바느질과 길쌈 솜씨가 빠르고 비상하여 온갖 신령이 가르치는 듯했으나,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고 겸손하여 그 깊은 마음을 남이 알지 못했다. 그 마음은 사심이 없고 걱정도 없어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이 곧고 정숙하며 덕행과 예절이 바르고, 효행과 의로움이 뛰어나고 마음이 바르고 위의가 엄숙하고 도량이 넓고 온갖 덕행을 구비하여, 종일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데 온화한 바람과 상서로운 구름이 옥체를 감싸 단정하고 엄숙하며 침착하고 행실이 무거우므로 사람들이 감히 우러러보지 못했다. 맑고 좋은 골격과 높고 곧은 절개는 금옥과 송백 같았으며, 어려서부터 말장난과 사치를 좋아하지 않아 붉은 입술을 늘 단정하게 닫고 있으니, 화려하지 않은 옷을 입어도 자태가 비상하게 돋보이고 단정하여 일백 가지로 빼어났고, 글재주가 여유가 있고 넉넉하여 예로부터 전해오는 모든 역사에 통달하였으나, 심심할 때에도 붓을 들어 함부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부모와 삼촌, 형제들의 사랑이 더할 나위 없었으며, 멀고 가까운 친척들이 놀라고 탄복하니 어려서부터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그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후략)…

 

 

그런데 서점에서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앞 부분을 읽으며 '그때 그 U 출판사의 그 《仁顯王后傳》이 바로 이 책이구나' 하고 '잃어버렸던 책'을 찾은 기쁨을 느끼게 해준 그 책이, 사실은 이미 제게도 있는 범우사의 『인현왕후전』이라는 것을 집에 돌아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같은 책을 장정만 바꾸어 새로 찍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 U 출판사의 그 책을 만나는 일을 단념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릅니다. 범우사의 『인현왕후전』을 읽으며 '그래, 바로 이 책이야!' 했으므로 그 감동이라면 굳이 잃어버린 그 책을 찾지 않아도 좋은 일이며, 설사 찾는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감동을 받기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서점에서도 사실은 잃어버린 그 책을 새로 발견했다고 단정(斷定)했다기보다는 '아마 이 책이 분명할 것'이라고 여기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현왕후 민씨閔氏는 계비로 책봉되어 6년이 지나도록 태기가 없어 근심했는데, 그때 마침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희빈禧嬪 장씨가 아들(경종景宗)을 낳은 후 온갖 권모술수와 오만방자함으로 나라의 기강까지 해이해지게 하다가 급기야 인현왕후를 독살하려 한 사건이 발각되는 등 갖은 패악으로 사약을 받아 죽고 인현왕후가 복위한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다 조선시대 일부 왕들의 문란한 이성 관계로 인한 일들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범우사의 그 『인현왕후전』은 이렇게 끝납니다.

 

복위하시던 날, 상께서 내전에 들어오시어 부원군 작호를 친히 써서 내리시면서 후께 이르시기를,  "전 부부인12 작호는 생각나되, 지금 부부인13 작호는 생각지 못하니 무엇이뇨?"하시니 후께서 아시면서 대답하시어,  "상께서 생각지 못하시니 또한 생각지 못하나이다."  상께서 미소 지으시며'  "후는 태사太라, 어찌 생각지 못하시리요?"하시매, 깊이 생각하시다가 깨달으시고 작호를 써서 조정에 내리시니 후께서 척연히 슬퍼하시나 나타내지 않으시더라. 조정에서 친필로 하교하시는 은영恩榮을 감축하고 흠복할 따름이더라.  민씨 집안의 여러 사람에게 새 벼슬을 주어 부르신대, 황공불감惶恐不敢하므로 사양하고 입조入朝치 않으매, 상께서 여러 번 은혜 형특하신 고로 마지못해 입조하니 충렬忠烈이 새로이 늠연凜然한 고로, 상께서 예우하심을 극진히 하시고 후께 이르시기를,  "평생에 즐겁고 기쁜 일이 없더니, 중궁이 다시 복위하시매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하시더니라.

 

 

  1. 자 미상․전규태 주해,『계축일기․인현왕후전』(범우사, 1994), 155~156쪽. [본문으로]
  2. 임금의 후비後妃, 仁敬王后 김씨가 돌아가신 후 왕비가 됨. [본문으로]
  3. '행'은 관계官階가 관직官職보다 높은 경우에 벼슬 이름 위에 붙이던 말, 부원군으로서 병조판서를 지냄을 뜻함. [본문으로]
  4. 민유중閔維重, 둔촌은 그의 호. [본문으로]
  5. 동춘당同春堂, 즉 송준길宋浚吉. [본문으로]
  6. 현종顯宗 8년(1667). [본문으로]
  7. 여자들의 길쌈 솜씨. [본문으로]
  8. 삼가 두려워하는 모양. [본문으로]
  9. 단정하고 엄숙하며 침착하고 무게가 있음. [본문으로]
  10. 꽃다운 이름. [본문으로]
  11. H문화사(1995)『인현왕후전』, 185쪽. [본문으로]
  12. 숙종의 처음 왕비의 부친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부인. [본문으로]
  13. 인현왕후의 생모 송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