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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존 제이 오스본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by 답설재 2011. 2. 9.

존 제이 오스본·구히서 옮김,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일월서각, 1978.12.10. 초판발행, 1980.2.20. 10판 발행)

 

 

 

 

 

옮긴이가 具熙書이니까 구희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교보문고에서 요즘도 이 책이 팔리고 있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졸저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2005, 아침나라)에 실었던 글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책 소개는 아닙니다. 이 책을 보고 생각나는 일들을 적은 글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이 어떤 책인가를 알고 싶어서 들어오신 분은 이쯤에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는 복도를 따라 걸어가며 방문마다 멈춰 서서 안의 동정을 살폈다. 한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아직도 누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마치 쳇바퀴 같은 것이다. 아직 잠을 안 자고 제일 늦게 버티고 있는 학생이거나 아니면 제일 먼저 일어난 학생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포드는 아직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누워 있었다. 법률서적으로 얼굴을 덮고 누워 있는 꼴이 마치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낮잠 자는 멕시코인 같았다.1

 

 

누구나 한때 어떤 일에 미쳐 나날을 보내는 경험을 가지게 되지만, 나는 그러한 시기를 현장 교육 연구 보고서를 쓰는 일에 바쳤다.

 

처음 연구 보고서를 쓴 그 해는, 교사가 된지 7년째 된 해였다. 며칠간 책을 구해 읽고 ‘아, 이거다’ 싶은 주제를 정해 계획서라는 걸 써서 의기양양하게 교육연구원을 찾아갔다. 마감을 하루 앞둔 날이어서 나 말고도 여러 명의 교사들이 담당 연구사에게 지도를 받고 있었다. 그는 그 지방에서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가 여러 교사들의 계획서를 이리저리 넘기면서 무어라 질책하는 말들을 들어보니 내가 생각해도 그리 해서는 안 될 것 같았고, 어떤 교사는 우선 글씨가 그 모양이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물론 아직 컴퓨터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이 세상에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때였다. 나는 얼른 내 차례가 되어 그 연구사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은 초조감을 안고 있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침착하게 기다렸다. 모두들 저 모양이니 아마 내 계획서를 보면 저 연구사는 깜짝 놀라 뒤로 벌떡 넘어지지나 않을까 싶어 한시가 지루하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이제 그의 입에서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평가가 내려지기를 기다리며 그의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가 내 계획서 전반을 검토한 것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잠시-내가 기억하기로는 단 몇 초-내 소중한 계획서를 이리저리 넘겨보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김 선생, 김 선생은 처음이니까 다른 사람의 계획서를 많이 읽어보고 내년에 정식으로 계획서를 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건 말이야, 계획서라기보다는 독서 요약이라고나 할까?”

그 연구사가 그렇게 덧붙인 것은 아무리 단칼에 내친다 해도 내가 쓴 계획서의 수준은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그 짧은 시간에 옳게 살펴본 것일까. 계획서가 아니라 독서 요약이라는 평가에 어이가 없어 어떻게 그것이 독서 요약인지 정신을 차려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아 그대로 일어섰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그 거리를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내 몰골이 어떠했는지는 아내의 반응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내는 다 죽어 가는 사람을 맞이하듯 하였고, 한참 만에 간신히 그 사연을 듣고 나를 달래주었다.

“사내가 그까짓 것 가지고 뭘 그래요. 다시 하면 되지.”

나는 그 길로 쓰러져 잠이 들었고, 첫새벽에 잠이 깨어 일어나 앉았다. 우선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음 순간 ‘그렇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당장 종이를 펼쳐놓고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누워 있긴 했지만 끙끙대는 내 옆에서 아마도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었고, 그런 생활은 그때부터 오래 계속되었다. 그것은 내가 제대로 공부를 하지는 않으면서도 글을 쓰는 데는 욕심을 내어 되지도 않은 글을 쓴다고 수많은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대학원도 다니고 제대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우선 필요한 책만을 정선하여 읽고, 언제나 전공 분야의 격식을 갖춘 글을 쓰겠지만, 나는 항상 이것저것 덤벼들다 마는 꼴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 무슨 생각이 나면 아무 데나 메모를 해두었고, 읽은 책 중에서 ‘이것 봐라’ 싶은 데가 있으면 또 다른 종이에 필사를 해놓고 정리는 하지 않으니 아내는 내가 메모해둔 종이조각이 아무리 시시해 보여도 버리지 않고 정성스레 모아두는 비서 꼴이 되어 살았다.

 

너무나 오랜 세월 단칸 셋방에서 살아오며 무지막지한 나는 방에서도 담배를 피워댔고, 금방 아기를 낳은 아내 옆에서 선풍기를 돌려대며 글을 읽고 써대었으니 아내가 ‘원수 같은 사람’ 혹은 ‘원수’라고 하면 ‘설마’ 하다가도 '정말 나는 저 사람의 원수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을 때가 있지만, ‘저 사람도 나처럼 잊고 살게 되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하며 또 살아왔다.

이튿날은 계획서 제출을 마감하는 날이었다. 내가 다시 나타나자 그 연구사는 일단 놀란 표정이었다. 아마도 항의를 하러 왔거나 부족한 대로 접수해 달라고 때를 쓰러 왔거니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찾아왔으니 헛일 삼아 내 계획서를 다시 읽어보겠다는 표정이던 그는 또 한번 놀랐다.

“언제 썼지요? 이건 무조건 도(道)에 제출하겠습니다.”

 

그 한마디는, 어쩌면 영영 실의에 빠질 뻔한 나를 살렸고, 어쩌면 그 후로 내가 비정상적인(?) 교사 생활을 하는 촉매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이른바 ‘교육 연구’에 미쳐나간 것이었다.

그 해 내내 책과 씨름하였고, 읽은 내용을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적용해보는 일에 그야말로 매진하였다. 본래 그냥 가르쳐도 대충은 따라하는 것이 아이들이므로 책을 읽으며 제법 조직적으로 가르쳤으므로 아이들이 엉망으로 할 이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가당찮게도 ‘내가 연구를 하며 가르치니까 아이들이 미루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하고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책을 사 모으고 읽고 무언가 쓰는 일로 세월을 잊고 지냈다. 그래서 아마도 내 자식들은 사전(辭典)에서 ‘아버지’를 찾아보면 ‘항상 무언가를 읽는 사람, 또는 무언가를 쓰는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었다. 아, 나는 그것을 얼마나 가슴아파해야 할 것인지, 지금에 와서 나는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인지.

 

그 해 가을, 그렇게 실천한 결과를 정리하여 ‘보고서’라는 걸 제출하였는데 얼마 만에 교육청에서 부르더니 군(郡) 교원 단체 회장의 표창장과 교육장 상장을 한꺼번에 주었다. 나는 그 두 장의 표창장과 상장, 기념품을 받아들고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연구사는 입상한 교사들을 모아놓고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잘 정리하여 도 대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내라고 하였다.

나는 도 대회는 또 어떻게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동료 교사들이나 교장, 교감이 걸핏하면 ‘도(道), 도’ 했지만, ‘도’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군(郡)과 어떻게 다른지, 그곳에서는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그냥 얼버무려 아는 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나를 보고 그랬다.

“김 선생은 운(運)이 따른 거야. 첫해에는 군 대회에 입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지.”

 

내 귀에는 그런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그 상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그 운이 다시 한번 따라주었다. 초겨울 어느 날 도 대회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도 대회는 보고서 심사와 함께 면접 심사도 실시하였다. 대회 전날 밤에는 도(道) 교육청 장학사와 무슨 국장이 이튿날 심사장에서 유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심사위원은 두 명이었다. 긴장하여 어떻게 설명했는지도 모른 채 좌석으로 들어오자 심사평을 해주었다.

“이론적 배경은 책을 읽은 내용을 무턱대고 요약하기가 일쑤인데, 이 보고서에서는 해결해야 할 주제를 깊이 있게 파헤쳤다. 또 가설을 추상적으로 진술하여 연구 결과에서 과연 이 가설이 증명되었는지 아리송한 경우가 많은데 이 보고서에서는 가설을 설정한 이유가 명확하게 진술되어 있어서 연구 결과에 대한 해석이 명쾌하다.”

‘김 선생은 운이 좋다’고 한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달리 볼 것이 분명하였다. 그들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뭐, 운? 이것들이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서…….’

 

사람들은 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바로 그 해에 산골 학교에서 시내의 ‘문교부 지정 연구학교’로 옮겨 연구주임교사를 도와 보고서 쓰는 일을 하였고, 전국 공개를 대비한 학교 환경 조성에 온 여름 방학을 다 보냈다. 또 교장 승진을 위해 점수를 모으는 교무주임교사의 종용에 따라 함께 학습 자료도 제작하여 출품하였고, 그 학교의 다른 교사들은 모두 ‘일반 수업’이라는 것을 하였지만 나 혼자서 ‘시범 수업’이라는 걸 하면서도 남몰래 내 보고서를 쓰는 일에도 열중하였으므로 아, 잊지 못할 그 해에 나는 현장 교육 연구 중앙 대회에까지 올라가 영예의 ‘푸른기장’이라는 것까지 받고서 그 일을 마치게 되었다.

 

중앙 대회에 나가 발표하는 날은 다른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누군가 접근하더니 보고서 쓰는 일에 대한 흥정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미 30년 전인 그 옛날이었는데도 일단 중앙 대회에 나갈 만한 보고서를 써주면 50만원, 1등급 ‘푸른기장’을 받게 해주면 1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아직 보고서를 대신 써주는 일 같은 건 상상도 못할 때여서 대가도 그만큼 어마어마했을 것이었다.

나는 그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워낙 단호해서였던지 그 희한한 사람은 당장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고생을, 그리고 그 영광을 어떻게 돈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싶었다.

 

학교로 돌아오자 그러한 사례가 구체화되었다. 돈으로 보고서를 사자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희한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었다. 나는 곧 ‘김 선생은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은 이야기해주지만, 보고서를 써주지는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내 말을 잘 듣고도 실패한 사람이 있어서 무어라 변명할 수 없이 미안한 동료도 있지만, 연구 주제나 연구 방향을 알려주어 점수를 따고 승진하는 사람도 여럿 보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보고서가 입선되기만 하면 나이는 더 적지만 나를 형님으로 모실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지낸 세월을 자주 후회하고 있다. 고스톱으로도 밤을 지새울 수 있는 동료, 낚시를 가서 이튿날 돌아오는 동료, 술집이나 노래방에 들어가면 그만 돌아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 동료, 어떻게 했는지 아파트가 또 한 채 있는 동료, 내가 부러워할 만한 동료 교사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그래서 그런 동료들이 내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하게 되었다.

“아닙니다. 나는 잡문 쓰는 일에 ‘몰입’하였을 뿐입니다. 사람마다 몰입하여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나는 남보다 좀 꼼꼼하여 잡문을 쓰기에 적당할 것입니다. 잡문은 박사 학위 논문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알고 보면 사실은 우스운 사람입니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잡문 쓰는 일에 세월을 보낸 웃기는, 미친 사람입니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성숙한 지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재능의 개발에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정신력을 모을 수 있어야만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이는 음악가가 될 수 있고 수학적 재능을 가진 아이는 공학자나 물리학자가 될 수 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전문가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실력과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략)… 집중력이야말로 모든 사고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2

 

재능이 뭐 별 건가. 어느 일이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발전하는 게 재능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 이 시대에, 가수나 정치가처럼 수천수만 명을 일시에 모을 수 있는 인물 또한 별 사람인가. 한 가지 일에 특별한 재능을 가져 널리 알려지면 영웅 대접을 받고 있지 않은가.

 

순간 어떤 하얀 빛줄기가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몸이 차가워지고 땀이 흘렀다. 난 미쳐 가는 거야. 아니 벌써 미쳐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창가에 앉아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는 것 이게 바로 미친 사람들이 하는 짓, 그대로지 뭐.

그 생각은 그를 허리를 잡고 웃게 만들었다. “맙소사.”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난 정말 미쳤나 봐. 세상은 만사를 꽉꽉 조여서 모두들 개같이 미친 쌍놈의 자식을 만들 거야.” 그는 너무 웃어 눈물이 날 지경이 되자 의자를 잡고 머리를 숙이고 의자 다리를 감고 있는 팔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신음하면서 그렇게 엎드려 있었다. 눈물이 마르자 그의 마음은 규칙적이고 조용한 리듬을 되찾았다. 그는 일어나서 소파 옆에 있는 불을 켰다. 그의 요약 노트는 커피 테이블 위에 있었다. 그는 연필을 주어들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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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 55쪽.
2. 미하이칙센트미하이․이희재 옮김,『몰입의 즐거움(Finding Flow)』(해냄, 1999), 43쪽.
3. 이 책, 2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