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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영화 『록키』이야기

by 답설재 2010. 12. 27.

 

<DAUM영화>에서

 

 

'저 정도 영화야?' 싶은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록키의 편이 되어, 더구나 '그래, 저렇게 살아야 해!' 싶었고, 함께 보고 앉아 있는 아들에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애도 제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록키」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모을 수 있겠다 싶었으나 영화라면 워낙 일천해서 어쩔 수가 없고, 우선 두 가지만 실어 놓고 더 발견되면 옮기겠습니다.

 

 

 

할리우드가 그나마 가끔은 소외된 자의 왜소한 외침을 대형 스크린에 소박하게 담기도 하던 시절, 「록키」(1976)라는 영화는 자괴감을 극복하고 작은 자기 성취를 이루는 한 무명 권투선수의 일상을 그린다. 가난과 무명의 늪 속, 스파링 파트너로서 도장을 기웃거리거나 빚 독촉이나 대행해주며 일상을 소일하는 주인공에게 우연히 찾아온 것은 분에 넘치는 도전의 기회, 챔피언과의 타이틀 매치였다. 그는 오직 스스로에게 자신의 가치와 잠재력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시작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그의 열정은 흔히 말하는 '인생 역전'이나 과장된 영웅주의에 때 묻지 않은, 소박한 성취감으로 응집된다. 챔피언은 되지 못하지만, 15라운드까지 KO되지 않고 버틴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승자로 남는다. 경기에 패배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패배하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자기 성취다.  그런데 그가 절망의 늪으로부터 희망의 창공으로 건너가는 전환점에는 계단이라는 건축적 장치가 있다. 연습을 갓 시작했을 때 달리다가 지쳐 계단의 맨 밑에 아예 주저앉고 말던 외로운 복서는 거듭된 훈련을 하고 난 후에는 한참을 달리고도 계단이 나타나자 지체 없이 몇 계단씩 건너뛰면서 순식간에 맨 위까지 오르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은 변화는 극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젊은 투사의 힘찬 도약은 음악적 상승을 동반하며 더욱 '고귀'해진다. 이 장면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그의 거침없는 '도약'과 더불어 뇌쇄적으로 '고조'되는 트럼펫과 합창도 기억하시리라. 덕분에 필라델피아미술관의 평범하고 건조한 돌계단은 신성한 아우라를 머금는다. 심지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던 승리의 예감마저 스크린에 감돌기 시작한다. 베트남전쟁의 침울함 속에서 만나는 한줄기 작은 희망이랄까. 앞으로 만들어질 무수한 속편들에서 민망한 국가주의적 슬로건으로 얼룩지게 될지라도, 이 짧은 순간만큼은 인간의 소박한 존엄이 홀연히 빛을 발한다.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의 계단은 인간 승리를 함축한다. 작은 성취를 자축하는 작은 영웅의 작은 존재감은 계단이 담는 거대한 인간 의지의 상징이 된다.
     - 서현석 영화에세이(제3회), 「영화, 계단을 오르다 1」『현대문학』 2010년 5월호, 239~240쪽에서 옮김.*




영화 <록키>는 사건의 연결고리로 볼 때 필연적인 사건보다는 주로 개연적인 사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대부>보다는 느슨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 사건은 꽤 긴밀하게 통일되어 있다. '액션 아이디어'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살펴보자.

"록키는 동네의 건달 노릇을 그만두려고 여러 가지 궁리를 한다. 우연히 그는 권투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건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15회전까지 버티고 싶어한다. 그는 그 시합을 위해 훈련을 거듭하고 마침내 15회전 동안을 버틴다."

권투시합은 록키에게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가 이기면 건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플롯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건달을 벗어나려는 일(그의 궁극적인 목적)과 연관되어 있다.  영화 <록키>는 강력한 플롯을 갖고 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을 움직이는 데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멋진 인물을 만들어냈다. 촘촘한 플롯은 눈에 훤히 보이는 예측 가능한 도미노 줄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플롯을 형성하는 사건들이 서로 개연적인 또는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존재하게 하며, 이야기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록키가 아드리엔과 연애하고, 폴리가 록키의 옷에 광고판을 붙이며, 미키가 록키를 가르치는 이 모든 사건들은 일어날 법하며, 록키를 성장하게 하고, 그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게 한다. 이것이 바로 통일된 극적 행동이 하는 일이다.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는 이런 극적 행동을 통해 그려지며, 이 영화에서 그것은 마지막에 록키가 아폴로 크리드와 권투시합을 하는 것으로 멋지게 마무리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이 아주 긴밀하게 짜여져야 하며, 어떤 사건을 빼면 말 그대로 전체가 무너져야 한다고 말한다.

"(플롯의) 여러 사건은 긴밀하게 짜여 그중 어느 하나라도 옮기거나 바꾸면 전체가 일그러지거나 망가져야 한다. 어떤 사건이 들어 있든 있지 않든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 사건은 전체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니다.(시학 8장)"

우리는 긴밀하게 잘 짜인 플롯을 전개하는 것과 관련해 또다른 중요한 구절을 『시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인이 해야 하는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다시 말해 일어날 법하거나 일어날 수밖에 없는, (우리 삶처럼) 가능한 일 같은 것을 그리는 데 있다.(9장)"

여기서 알리스토텔레스는 플롯행동을 하나로 만들려면 개별적인 사건이 개연적인 또는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플롯 사건의 전체 연결고리' entire chain of plot events는 반드시 '일어날 법한' 또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 마이클 티어노(김윤철 옮김), 『스토리텔링의 비밀』(아우라, 2008), 51~54쪽에서 옮김.

 

 

 

 

교육도, 영화처럼, 영화 『록키』처럼 뭔가 좀 보여주는 것이면, 저처럼 마치고난 사람이 뭔가 좀 후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재미있는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잘 만든 영화다. 점입가경이네, 하실 것이다. 그러나 역시 사실이다. 재미있는 영화는 잘 만든 영화다(원래 진리는 단순하다). 그러면 대체 잘 만든 영화란 무엇일까. 실베스터 스텔론은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쌍벽을 이룬 액션 스타지만 스크린 밖에서의 삶은 확연하게 명암이 갈린다. 케네디 가문에 장가들어 오스트리아 촌놈의 때를 벗고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까지 오른 슈왈드제네거에 비해 스텔론의 인생 성적표는 초라하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몸매만 훌륭한 모델과 결혼,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그 모멜과 거액의 이혼 소송에 휘말렸으며 그 과정에서 영화 인생도 엉망진창으로 추락했다. 그해 최악의 영화와 배우를 포상하는 <골든 라즈베리 어워즈>에 1985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17년간이나 줄기차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과다하게 맞은 약물주사로 한때 섹스 어필의 대명사였던 입술은 흉하게 실룩거리는 살덩어리로 변하는 수모도 겪었다. 거의 퇴물로 전락했지만 그러나 세계 영화 펜들은 단 한 편의 영화 때문에 스텔론을 결코 홀대하지 않는다. 1976년 개봉한 이 작품, 「록키」 때문이다.  뒷골목 불법 채권추심원이 무패의 복싱 세계 챔피언과 맞붙는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가 절로 나오는 설정이다. 그런데 그게 영화다. 아니, 거기서부터 영화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향해 돌격하는 인간의 이야기, 그것이 관객들이 스크린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라는 것의 실체인 것이다. 잘 만든 영화는 이런 욕망을 제대로 구현한 작품이다. 단순히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 인간의 욕망과 꿈을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은 찾기 어렵다. 「록키」가 현대판 신화로 불리는 이유다. 영화는 뭔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그것을 이루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의 이야기다. 바꿔 말해 어떤 사람이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그 일이 정말 어려워야 그게 진짜 영화다. 그래서 영화적으로 제일 재미없는 이야기가 서울대 나와 삼성전자 들어가는 이야기다.


      - 남정욱, '영화와 문학 사이 제11회' 「영화란 대체 무엇일까」현대문학』 2014년 4월호, 215~216쪽에서 옮김. 
 
「록키」는 스포츠 영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주인공 록키의 권투 시합 장면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스포츠 영화다. 그러나 영화를 꼼꼼히 보면 록키는 복싱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다. 복싱은 단지 매개였을 뿐. 영화 속 대사를 보자. 

 

아폴로가 내 머리를 박살 내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끝까지 가지 못했거든. 내가 그때까지 버티면,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록키는 이기기 위해 링에 오른 게 아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단지 서 있기 위해 링에 올라갔다. 그래서 「록키」는 복싱 영화가 아니다. 그는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서 있기 위한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인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영화를 헌정했다. 혈투에 가까운 시합이 종료된 후 챔피언과 록키가 클린치를 한 채 주고받는 대사는 유쾌하다.


챔프 : 재시합은 없어.  록키 : 나도 싫어. 

 

링 아나운서가 록키와 인터뷰하는 장면에 나오는 대사는 더 유쾌하다. 

 

아나운서 : 팬들이 재시합을……  록키 : 재시합은 안 해요.  아나운서 : 왜죠?  록키 : 오늘 맞은 걸로 충분하니까요. 

 

그러니까 록키, 다시는 지옥 같은 링에 올라가기 싫은 것이다. 사람들은 록키를 통해 인생을 본다. 상처와 통증을 매만지고 싫어 죽겠지만 인생이라는, 삶이라는 링에 다시 오르기 위해. 시리즈물로 전락하면서 「록키」는 빛을 잃는다.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록키」는 람보라는 아이콘을 뒤집어쓰면서 악명은 더 높아간다. 그래서 2006년 개봉한 「록키 발보아」는 소중하다.  "끝나기 전까진 아무것도 끝난 게 아니지." 록키의 대사다. 흔한 말이지만 영화 속에서 록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순간 울림은 커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따로 있다. 상대 선수인 딕슨이 피 흘리는 록키를 보며 "정말 미쳤군"이라고 말하자 록키는 이렇게 대꾸한다.  "너도 늙어봐."  ……록키는 아름다운 영화다.


    - 남정욱의 위의 글 222~224쪽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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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에세이는 '계단은 야망의 공간'이라는 설명으로 시작하여 '록키'에서 존 G. 아빌드센 감독과 촬영팀(특히 스테디캠을 발명한 촬영기사 개릿 브라운)이 택한 방식은 카메라를 들고 배우를 따라 계단을 뛰어오르는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스테디 캠 [steady cam]은,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지 않고 들고 찍기(handheld)로 촬영할 때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 주는 신체 부착용 특수 받침대. 진동을 흡수하는 완충기, 수평 유지대가 부착되어 있다. 스테디 캠은 비정형 카메라 이동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계단이나 골목, 군중 속 추적 장면 등에서 다른 카메라로는 촬영할 수 없는 유연한 카메라 움직임을 만들어낸다(출처 영화사전 : DAUM에서 간접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