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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성의 처참한 비극

by 답설재 2011. 7. 1.

……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선고받는 위협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이 단 한 가지 우월성만을 인정한다. 즉,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자기가 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무렵의 여러 세기에 걸쳐 가장 모범적인 삶과 사상이 무지(無知)의 당당한 고백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리면서, 우리는 우리의 사내다움을 잊어버렸다. 우리가 택해 온 것들은, 오히려 위대함을 흉내내는 일, 첫째로 알렉산더, 그 다음에는 우리의 교과서 저자들이 더할나위 없는 어떤 비속함으로 우리에게 찬미하도록 가르치는 로마의 정복자들이다. 우리 역시, 정복하고, 국경들을 옮기고, 하늘과 땅을 지배해 왔다. 우리의 이성은 모든 것을 쫓아 버렸다. 마침내, 우리는 혼자서 한 사막을 지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자연이 역사·아름다움·덕(德)을 균형잡고, 피의 비극에까지 규칙적인 음악을 적용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그 평형을 위해 우리가 무슨 상상력을 남겨 놓을 수 있었는가? 우리는 자연에 등을 돌리고, 아름다움을 부끄러워한다. 우리의 처참한 비극들은 거기에 달라붙어 있는 사무적인 냄새를 풍기고, 그 비극들에서 방울져 나오는 피는 인쇄 잉크의 빛깔이다.

 

알베르 까뮈, 철학 에세이 「헬레네의 추방」 중에서(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 육문사, 1993, 부록, 233쪽).

 

 

 

 

사진 출처 : 블로그 『강변 이야기』의 「비가 와도 이제는」(201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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