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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귀신백과사전』

by 답설재 2011. 7. 3.

 

 

 

 

 

이현 글·김경희 그림·조현설 감수, 『귀신백과사전』(푸른숲주니어, 2010)

 

 

 

 

 

 

 

 

  외손자는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녀석은 귀신에 대해 '천착(穿鑿)'하고 있는지 걸핏하면 자다가 깨어 제 아비어미의 잠을 설치게 한답니다. 그럴 때마다 물으면 귀신 꿈을 꾸었다는 것이고, 그런 날 낮에는 틀림없이 책에서 귀신이라는 단어라도 본 날이라는 것입니다.

 

  해서 지난해 여름 이 책이 나온 것을 봤을 때는 '녀석이 귀신을 잡도록 해주자면 우선 귀신의 정체부터 파악하게 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당장 구입해 두었는데,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녀석에게 전해 주지는 못하게 된 까닭을 기록해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귀신 백과사전』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 책을 뒤적뒤적 훑어보다가 '이것 봐라!' 싶게 되었고, 드디어 '아무래도 녀석이 "알고보니 귀신은 별것 아니네!" 할 것 같지가 않구나' 싶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내용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는 뜻입니다.

 

  우선,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들은 귀신 이야기들이 이 책에 간략하게라도 모두 나와 있으며 그것도 모두 '사실'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의심스럽습니까? 그러면 반문하겠습니다. 귀신 이야기가 허구 혹은 거짓이라는 것이 체계적이거나 과학적으로 판명된 것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필요할 때마다 그냥 말로만 "없다! 귀신은 없다!"고 부정해 왔지 않습니까?

 

  저승 가는 길, 염라국 이야기, 저승사자 이야기, ……

  극락이든 지옥이든 어느 곳에 정착하는 과정도 그리 수월하지도 않습니다. 염라국에 가면 진광대왕전, 초강대왕전, 송제대왕전, 오관대왕전,염라대왕전, 변성대왕전, 태산대왕전, 평등대왕전, 도시대왕전, 전륜대왕전을 다 경유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죽은 지 3년이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거야 원!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을 코믹하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그거야 뭐 이 책을 어른들에게 읽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면서 심각하게 쓴다면 우선 그게 될 법한 일이 아니었겠지요.)

  가령 이런 부분입니다.

 

  막상 영혼이 육체를 떠나 귀신이 되었는데,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정말로 난감한 일이다. 죽은 것도 기가 막힌데 갈 곳조차 알 수 없으니 얼마나 황당할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귀신 관리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염라국에서 초보 귀신을 위해 안내자를 보내 주기 때문이다. 이승에서도 꽤 유명 인사가 된 저승사자가 바로 그 안내자다. 안내자치고는 다소 불친절하지만, 어쨌거나 저승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초보 귀신들은 그저 저승사자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가끔 저승사자 없이 혼자 저승까지 찾아가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저승사자들은 일을 빈틈없이 처리할 것처럼 생겼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엉뚱한 사람을 데려가거나 데려가야 할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데려가야 할 귀신은 많은데 저승사자 수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17~18쪽)

 

  뿐만 아닙니다. 다른 부분을 보면 저승사자들은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딱한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리며, 특히 뇌물에 약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승사자는 다소 불친절하다. 뇌물에 약하다. 어설프게 처신할 때도 있다. …… 딱한 사람에게는 마음이 흔들린다? 그렇다고 내가 딱한 사람으로 보이기는 어렵지 않을까? 세상에는 딱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

  이런 내용들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전혀 코믹하게 느껴지지가 않고 오히려 슬슬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많습니다. 저승 가는 길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승에서 출발할 경우, 1. 나침반으로 서쪽을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2. 산 넘고 물 건너서, 마냥 걷고 또 걷는다. 3. 서쪽으로 한참 가다가 열두 고개를 넘는다. 4. 바리공덕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길값을 내고 황천강을 건넌다. 5. 저승 도착!

 

 

 

 

 

 

  이 책의 내용을 다 소개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도 없이 귀신 이야기라면 일단 무섭습니다. 귀신이 무섭지 않다면 그건 다 거짓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표지의 저 그림만 봐도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마음이 벌써 좀 불편해지고, 뒷표지에 그려진 저 요사스런 뱀들만 봐도 좀 무섭기도 하고 꺼림칙합니다.

  죽어서 귀신이 된다는 이야기는 간단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도 나오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지 않습니까.

 

  외손자에게는 늘 "귀신이 어디 있나! 다 마음이 약하니까 귀신이 생각나는 거지, 용감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다!" 큰소리를 쳤지만, 일은 언제나 '설마 설마' 하다가 당하는 거고, 저로서도 별 수 없이 지내다가 결국은 당하고 나서야 '이렇구나!' 하고 후회하게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그럼 이 책을 외손자에게 주지 않을 거냐 하면, 그럴 수도 없는 일입니다. 아래의 경고를 보십시오. 이 책은 만 18개월 미만 유아에게만 보호자의 독서 지도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책을 언제까지 제가 갖고 있겠습니까.

  다만 '시시한 책'인 줄 알았더니 결코 시시한 책이 아니며, 결국 그리 간단하지가 않은 책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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