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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 불투명하고 낯선 세계

by 답설재 2011. 7. 20.

 

 

 

 

 

사진 출처 : 블로그 『강변 이야기』의 「살다보면 하나둘쯤」(2011.7.7)

 

 

 

  한 걸음만 더 내려서면 낯설음이 스며 들어온다. 세계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한 돌멩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낯선 것이며 달리 뒤바꿔 놓을 수 없는 것인가, 자연 혹은 풍경이 얼마나 강하게 우리를 부정할 수 있는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모든 미(美)의 중심에는 뭔가 비인간적인 것이 놓여 있다. 그리하여 이 언덕들, 하늘의 부드러움도 이 나무들의 윤곽도 바로 이 순간 우리가 그것들에게 부여해 왔던 그 허망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따라서 잃어버린 낙원보다 더 먼 것이 되어 버린다. 수천 년을 가로질러, 태고적부터의 적의가 솟아올라 우리와 맞선다. 잠시 우리는 세계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수 세기 동안 우리가 이 세계 속에서 이해해 온 형상들과 구도들은 오직 우리가 그보다 앞서 이 세계의 것이라고 쳐 왔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며, 이제부터는 우리에겐 그런 재주를 부릴 힘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다시 세계 자신이 되어 버리는 까닭에 우리를 벗어난다. 습관에 의해 가리워졌던 무대 장치가 다시 원상 회복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부터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움추러든다. 낯익은 한 여인의 얼굴에서, 우리가 몇 달 전 혹은 몇 년 전에 사랑했던 그 여자를 낯선 사람으로 보게 되는 날들이 있듯, 어쩌면 우리는 우리를 갑자기 그토록 고독하게 만들어 놓는 어떤 것을 원하게 될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세계의 그 불투명함과 그 낯설음이 부조리라는 점이다.

 

                                                       - 알베르 까뮈/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육문사, 1993), 28~29쪽에서 -

 

 

 

  자연의 생경하고 신비스런 저런 모습을 보면 당연히 그렇지만 - 세상의 저런 모습에 망연자실하게 되지만 -

  세월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도, 그 세월따라 모든 것이 다 변한 것 같은데도,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리하여 나는 이제 곧 떠날 것 같은데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듯, 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에 앉아 있다는 듯, 아니 "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가 없다!"는 걸 선언이라도 하는 듯 저런 표정을 보이는 저 자연 앞에서 망연자실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서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많이 결정한 것 같고, 그런 결정들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 것 같은데, 그런 일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음을 확인합니다.

 

  굳이 꿈, 희망, 기대, 기원, 소원…… 그런 단어들을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무위(無爲)였다 하더라도 그 무위 속에 발버둥 칠 일들을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