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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조제 렌지니 『카뮈의 마지막 날들』

by 답설재 2011. 9. 21.

영 옮김, 『카뮈의 마지막 날들』(뮤진트리, 2

 

 

 

 

 

 

  <카뮈의 담배>

 

알베르 카뮈 지음/김화영 옮김, 『시지프 신화』(책세상, 2010)의 표지

 

 

 

카뮈는 잠시 돌이 되어버린 듯 꿈쩍도 하지 않고 입이 붙어버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침묵은 그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한편 불안하게 했다. 밤마다 화석이 되어버리는 사막, 멈춰버린 모래시계의 침묵 속에 굳어버리는 사막의 밤처럼 한기가 느껴졌다.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또다시 저만치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32~33)

 

카뮈가 손뼉을 쳤다. 골이 들어갈 뻔한 상황에서 루르마랭 팀의 공격수 한 명이 멋지게 막아낸 것이다. 카뮈는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언제나처럼 담배 연기를 최대한 길게 그리고 깊게 들이마셨다. 담배 연기는 찢어진 상처를 달래는 동시에 그 고통을 증가시켰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차가운 외피 속의 강렬한 온기가 주는 묘한 기분을 느껴보려고 했다. 아르스날이나 사블레트 해변에서 뼛속까지 파고들어 기절할 정도로 현기증이 느껴지던 차가운 물속으로 단번에 뛰어들어 수영할 때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부르르 떨리던 그 느낌, 마치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유리별처럼 해변과 모래 언덕에 바람이 불면 입속에 뭔가 가득 들이차고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38)

 

 

  <카뮈의 생김새>

 

"쇼뱅 역에는 카뮈가 완벽하다니까."

카르디날이 흥분해서 말했다.

"외형적으로 잘 맞잖아. 수수께끼 같고 조용한 그런 면은 정말이지 극중 인물에 딱 들어맞는다니까. 그리고 연극을 한 경험도 있어서 다른……"

말을 하다 말고 수화기를 들고는 미슐린 로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방인》의 작가에게 연락해서 그의 의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카뮈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 제안에 매우 기뻐했다.

                                  (28쪽,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영화 배역을 캐스팅하는 장면)

 

 

  <영혼에 대해>

 

쉬잔 아넬리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 카뮈가 감독에게 물색 작업을 위해 암스테르담에서 1~2주 머무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오는 1월초로 할까요?"  카르디날이 물었다.  "아주 좋습니다. 1960년 시작이 좋겠는데요."  "당신이 파리에서 돌아오는 대로 하는 거죠? 잘 될 것 같은데요. 당신 작품에는 영혼이 있으니까."  "뭐가 있다구요?"  "영…… 혼이오."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자기와 같은 알제리 태생인 감독과 헤어지면서 카뮈는 신랄한 목소리로 반박했다.(31쪽)

 

 

  <카뮈의 가족과 집안 형편>

 

카뮈의 가족은 신의 처벌이나 천재지변을 믿지 않았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난하면 그런 역경은 더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신음하거나 우는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천하에 드러내는 것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초라한 행복의 입을 막으면서 끝까지 싸우고 이를 악문 채 계속 앞으로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 헛된 연민 뒤에 갇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던 어머니, 다시 닫히곤 했던 문들이 아직도 알베르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처음으로 엄청난 양의 피를 토했을 때 어머니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물론 걱정은 하셨지만 가족 중에 누가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그저 그런 정도의 걱정을 내비쳤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넌 아직 살아 있잖니. 그게 가장 중요한 거란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뒤돌아서서 웅웅거리는 난청의 삶으로 오그라든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40쪽)

 

 

  <제르맹 선생님과 공부>

 

노벨상을 받았을 때 어머니 다음으로 생각났던 제르맹 선생님께 자신이 어떤 신세를 졌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선생님이 가르쳤던 것, 교육적으로 요구했던 것, 분명 그의 절대자유주의적 경향에 영향을 미쳤을 본보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 기억에 그는 "빈민가 공장에 버려질 뻔했던 조그만 아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학교에 와서 선생님을 만나 온전하게 발음되지 않는 빈약한 어휘로, "선생님, 졸업반 시험 명단에 알베르 넣어셨어요. 하지만 우리 공부할 돈 없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가 알베르 일하기 원해요."라고 말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내면 장학금을 받아 학업에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어머니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머리를 갸우뚱했다.…(중략)…  그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베르는 알고 있었다. 거실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선생님과 할머니가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었다. 할머니는 "우리집은 가난해요. 졸업장만 따면 읽고 셈하고 생활하는 데 충분하다구요. 그러면 통공장에서 견습생으로 일할 수 있고, 필경 반장이 될 제 삼촌이랑 같이 인부가 될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만 줄창 해댔다. 선생님은 물러서지 않았다. 할머니 역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언성이 전점 높아졌다. 그러자 갑자기 알베르의 어머니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더니 "그 애 학교 갈 거예요!"라고 냅다 소리질렀다. 할머니는 고개를 떨구었다.(80~81쪽)

 

 

  <노벨상 수상>

 

어머니는 분명 상 자체가 갖는 중요성보다 그가 상을 탔다는 것에 더 감동할 것이다. 로블레스와 통화했을 때 그가 말하기를 기자들이 어머니의 반응을 취재하려고 떼로 몰려와서 작은 아파트를 점령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놀라셨단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사람들이 왜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인파와 소란에 어리둥절해하셨다. 잘라 말하자면, 알베르가 이런 소란의 원인이라는 사실에 좀 화가 나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로블레스에게 자기 대신 답변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이 하나같이 아들의 사진을 들고 창문 근처에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는 사진기자들 앞에서 좀더 단정해 보이기 위해 빗질을 하고 블라우스 매무새를 다듬었다.  어느 기자는 감정적으로 비약해서 기사를 거창하게 마무리하기도 했다. "……긴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최연소 프랑스인 노벨상 수상자의 어머니는 침묵 속으로 숨어버렸다. 분명 모든 국민이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이런 영예 앞에서 자신의 기쁨과 자부심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더 이상 찾지 못했던 것이리라. 알제리 내에서 프랑스 문화가 이렇게 인정받게 된 데는 한 사람, 알베르 카뮈가 있었다……"(110~111쪽)

 

 

  <사르트르의 속내>

 

상처받은 카뮈는 비평의 글을 쓴 저자에게 답을 하는 대신 《레 탕 모데른느》 대표인 사르트르에게 사무적인 답신을 보냈는데 이 답신은 그를 격분하게 만들었다. 그 요점은 명확했고 《레 탕 모데른느》의 이름으로 그에게 견주었던 당파 근성을 깨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진실이 우파에 있다는 판단이 들면 난 우파가 될 것입니다." 그는 장송의 글이 자신을 '또 한 번 주변'에 놓고자 한 것이며 《반항하는 인간》을 통해 적어도 지금의 세계에서는 '순수한 반역사가 순수한 절대적 역사주의만큼이나 해로운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음을, 필요하다면 밝힌다고 적었다. "인도차이나인, 알제리인, 마다가스카르인, 그리고 오지의 광부들이든 누구든 간에……"라며 자신을 힐난하는 장송에게 카뮈는 "그가 밥벌이에 이용하는 알제리인들은 전쟁에서까지도 불편한 전투를 나와 함께 싸워준 동료들이었다."라고 응수했다. 어느 순간 그는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무기력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권좌를 얻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검열관들로부터 끊임없이 효율성에 대해 훈계를 듣고 있는 내 자신과, 특히나 한 번도 시대의 투쟁을 거부하지 않았던 노병들이 그런 훈계를 듣고 있는 것을 보니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와 유사한 태도를 전제로 하는 실질적인 결탁이라는 것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무척이나 감동적인 글이었다! 사르트르는 신중함을 벗어던지고 '침울한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옛 친구의 정식 제명을 선언했다. 그 친구의 사회적 출신 성분으로 모든 게 정당화될 수는 없었다. "당신이 가난했을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장송과 나처럼 부르주아입니다. 당신은 뱅상드 폴이나 빈자들을 돕는 수녀와은 꽤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르트르는 거만과 멸시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난 부성애적인 연설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그런 박애주의를 불신한다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불행은 당신에게 뭘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1(144~145쪽)

 

 

  <번역본 읽기의 한계>

 

지금 와서 얘기지만 제 평생의 몇 할쯤은 번역본으로 엉뚱하거나 어슴프레한 물이 들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에는 세 명의 뤼시앙이 나옵니다.

1. 그리고 알베르가 태어났다. 얌전하게, 울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벌써 세 살이었던 뤼시앙 다음으로 태어난 사내아이였다.(14쪽, 하 5행)

2. 그냥 좀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포도주 양조가 끝나고 나면 남편 뤼시앙이 올라올 것이고, 직장을 구하면 좀더 큰 아파트로 옮길 수 있게 될 것이다.(15쪽, 하8행)

3. 오래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떄와 오빠 뤼시앙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차례로 떠올랐다.(20쪽, 1행)

 

이런 부분은 도대체 몇 번을 읽었는지, 그런데도 도저히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1. 의사 표현이 좀더 분명했던 피에르 에르베는 카뮈가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편이었다가 배신했음을 용서하지 않고 있으며 그 덕분에 "카뮈는 변절자가 느끼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가 속시원히 인정하지 않는 그 가책은 증오로 변하고 있다. 그에게 행복한 공산주의자란 파렴치한 일인 것이다"라고 비난했다.2 다소 간결한 논거 제시였지만 당시의 시대적 감정을 명백히 반영하고 있었다.(142쪽) 

- 카뮈가 카뮈네 편이었던 공산주의자들의 배신을 용서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2. <르 몽드>지의 비평가인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악의적인 독설을 퍼부었으며 《이방인》에 대한 논평을 실었는데, 과연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이나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요컨대 나는 다른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자신을 감추다가 결국에는 우리가 그를 닮았음을 비난하는, 슬픔에 잠겨 있는 총명한 《전락》의 재판관 이자 고해자'보다는 물에 빠져 표류하는 머리라곤 없는 불쌍한 녀석, 그의 '이방인'이 더 마음에 들었다……"3 1956년 5월 30일(번역본의 주)." height=14 valign="top">

 

3. 앙드레 말로 문화부장관이 카뮈에게 극장을 하나 맡겼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몇 달 전 미슐린 로장과 함께 타이프로 다섯 장이나 되는 글을 작성했었다. '새로운 연극을 위한 이론적 제안'이란 거창한 제목이었다.

 

 

가령 위의 3에서 "그를 설득하기 위해"란 말은 누가 누구를 설득하려는 것이겠습니까? 위 문장으로 봐서는 당연히 "앙드레 말로가 카뮈를 설득하기 위해"로 해석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다음 문장이 "이 글에서 카뮈는 그리스 비극, 프랑스 레퍼토리, 영국 연극과 스페인의 황금 시기의 위대한 고전에 바탕을 둔 현대 연극을 독려하면서 텍스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려야 하는 필요성을 주장했다."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본 읽기의 한계>라는 자조 섞인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정성들여 만든 책이라는 걸 잘 알 수 있습니다.

 

<추신> 따분하거나 속상하거나 참담할 땐 담배나 한 대 피워보면 좋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피워댈 때 더 잘 피울 걸 그랬다 싶습니다.

 

 

  1. 《레 탕 모데른느》, 1952년 8월(번역본의 주). [본문으로]
  2. '라 누벨 크라디크, 1952년 4월, 피에르 에르베, [본문으로]
  3. <르 몽드 [본문으로]</르>